집에 혼자 있는데도 빨래가 산더미처럼 쌓이곤 한다. 그것도 아주 자주.
이럴 땐 무척 당혹스럽다. 게다가 성미상 미루는 것에도 매우 소질이 없는지라 거의 사나흘에 한 번 꼴로 세탁기를 돌리는데도 밀린다는 점에서 더더욱. 뭐지, 집에 누가 몰래 숨어살다가 슬쩍 자기네 옷을 넣어두기라도 하나? 하는 얼토당토않은 생각마저 들 정도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빨래 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물론 회사에서 세탁기 속 빨래마냥 마구 돌려져(?) 나와서 골수까지 지쳤을 때도 있지만, 그래서 그럴 땐 그저 따뜻한 침대 속에서 녹신녹신 몸을 녹이고 싶은 맘이 굴뚝 같지만, 그래도 나는 의지의 한국인이다. 하고 싶은 건 해야 하고, 해야 하는 것도 하지 않으면 못 배긴다. 앞서 말했듯 난 미루는 것을 못 참기에, 그래서 아무리 피곤해도 정해진 날에는 무조건 빨래를 한다.
빨래에는 목욕과 비슷한 느낌이 있다. 청결과 새로워지는 그 감각 - 영어로는 renewal이라고 표현하면 적절할, 그 감각이 너무나도 좋아서 빨래를 거르지 못한다. 중독 수준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리라. 다른 집안일들은 모두 귀찮아서, 청소는 일주일에 한 번 의무적으로 하고 요리는 귀찮으면 그냥 굶어 버리면서도(!) 빨래만큼은 열성적으로 해치운다.
빨래 과정은 여느 가정 주부들이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배운 대로, 흰 옷과 색깔 있는 옷을 구분해 나눈다. 흰 옷은 소독을 위해 특별한 양동이에 넣은 후 세제와 함께 국처럼 끓이고, 그 다음 찬물로 색깔 빨래와 함께 돌리는 것이다.
소독. 이게 가장 어렵다. 자칫하면 - 언젠가 내가 그랬던 것처럼 - 물이 증발해버려서 옷가지가 양동이 바닥에 눌어붙기 때문이다. 딱 한 번 그랬던 적이 있었는데 처음으로 나 혼자서 빨래를 삶았을 때였다. 그때는 가장 아끼던 흰 옷이 바닥에 누렇게 달라붙어서 떼어내는 데에조차 애를 먹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옷은 결국 눈물을 머금고 버려야 했다).
그래서 가스 레인지 위에 양동이를 올려놓은 다음에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고, 설령 한눈을 팔거나 잠시 다른 일을 하더라도 늘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 곤란한 나 같은 경우에는 아예 핸드폰 등으로 알람을 맞춰놓기도 한다. 이렇게 노력한 결과 그 재앙이었던 첫 시도 이후로는 한 번도 빨래를 망치거나 한 적이 없다.
사소한 일에도 자기 만족과 뿌듯함을 느끼는 게 딱히 나쁘진 않으리라 믿는다.
그렇게 끓여낸 빨래는 거짓말처럼 새하얗다. 보고 있자면 왠지 자랑스럽기까지 한데, 아마도 빨래(=집안일)는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일과 집안일을 동시에 해내자면 무척 힘들고 고되지만 그래도 끝나고 난 후의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므로.
어쩌면 난 무의식 중에 사는 게 힘들고 고되다는 것을 어른과 동음이의어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 돌아간 빨래는 꺼내서 힘껏 털어야 한다. 그냥 어설프게 털럭털럭 흔들기만 하면 팔만 아프고 주름이나 먼지는 떨어지지 않으므로, 정말 있는 힘껏! 바람 피운 애인 뺨을 때리듯 힘껏! 팡팡 소리가 나도록 힘주어 턴다. 그리고 차례차례 넌다. 물론 어떻게 너느냐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옷도 종류별로 나누어서 겉옷이나 평상복은 베란다에, 속옷 같은 것은 방 안 빨랫대에 걸어두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그렇게 하나하나 다 널고 나면 바닥에 떨어진 먼지나 종이 쪼가리들을 - 간혹 주머니에서 메모지 같은 걸 넣어두고 깜빡 잊을 때가 있다 - 주워 버린다. 뒷정리는 중요하다. 뒤처리를 하지 않으면 안 하니만 못 하니까.
빨래 끝. 이제 한숨 돌려도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