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다니면서부터 나는 사회인이 되었고, 사회인이 되면서부터 시작한 것이 있다. 화장이다. 나는 그것에, 마치 낯설고 어려운 동물을 대하듯 다가가고 있다. 조심스럽게, 신중하게. 익숙해질 시간을 두고.
주변에 보이는 여성들은 대부분 화장을 하고 있어서 그것이 실제로 얼마나 어려운 일과인지는 해보기 전까지 나도 알지 못했다. 처음으로 화장을 해 본 날, 새삼스럽게 그 경이를 느꼈다.
뭐든지 그렇지 않은가. 직접 해보기 전까진 그저 쉽게만 보인다.
사실 조금 오기가 들기는 했었다. 뭐 하러 내가 그런 걸 해야 하지?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렇게 보이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 여자는 화장을 하고 밖에 나서는 게 당연한 ‘예의’라던가 하는 소리를 하면 아낌없이 주먹을 날려주겠다고 이를 갈 정도로 나는 화장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여성 억압의 심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그때는 자의에 의한, 자기 만족을 위한 꾸미기와 사회의 눈총에 의해 울며 겨자 먹기로 화장을 해야 하는 것을 혼동했던 모양이다.
지금도 나는 그 구분이 어렵다. 그렇기에 회사에 온 첫날에 물어보았다. 이곳은 꼭 화장을 해야 하는지. 내 직속 상사이자 앞으로 내 선임이 될 선배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해주었다.
“꼭 할 필요는 없어. 다만 자기 피부에 자신이 없으면 대충 가릴 정도만 하는 거지.”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매끌매끌하게 광이 나는 화장이 되어 있었다. 그게 소위 말하는 물광 화장이란 것은 나중에 알았다. 나는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흑백 할리우드 영화에서처럼 높은 곡선을 그리는 눈썹이나, 새빨갛고 흠 없는 입술이나, 전부 보기엔 아름답다. 눈이 즐겁다.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고충은 별로 짐작하고 싶지도,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물론 익숙해지면야 10분만에 모든 과정을 완벽히 마치는 달인들도 있다지만, 사람들 중 몇이나 그 정도 수준에 다다랐을까? 메이크업 또한 기술이자 예술인 것이다.
어찌되었건, 피부에 별로 자신이 있는 편이 아니었던 나는 아무래도 분 정도는 칠해야 할 것 같아 화장품 가게로 나섰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 한 번 넋을 잃고 말았다.
이 엄청난 종류! 버라이어티! 색깔! 원래 시각과 냄새에 약한 내게는 그야말로 천국이자 미궁이었다. 직원들의 이상해하는 시선만 아니었더라면 그야말로 한참을 버티고 앉아 구경했을 테지만, 그런 여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가게 점원들의 추천을 받아 필요한 몇 가지를 골랐다. 내게 설명해주는 그들도 흑과 백과 파스텔 색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화장을 한 채였다. 당연하게도.
왜 남자들이 여자들의 화장과 화장 물품에 아연함을 느끼는지 완벽하게 이해했다. 얼굴에 바르는 거라곤 로션과 선크림만이 아는 전부이던 내게 CC크림이니, 틴트라던가 에센스나 세럼, 앞에 온갖 다양한 수식어와 접두사가 붙은 제품명들은 그야말로 우주적이었달까. 게다가 한 종류의 화장품에도 비슷하지만 다른 제품군이 수두룩했다. 어느 걸 골라야 할까. 무조건 싼 걸 사면 피부에는 좋지 않을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비싼 걸 살 수도 없고, 이럴 줄 알았으면 인터넷 같은 데서 정보를 좀 더 보고 오는 건데……
우여곡절 끝에 사 온 물건더미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작았지만, 더 큰 고난은 그 다음이었다. 나는 이것들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른다! 물론 그냥 바르기만 하면 된다고 설명서에는 써 있었지만, 어느 정도가 설명서에 나온 ‘적당량’인지, 특정 부위엔 혹시 다르게 바르는 방법이 있는지, 정말 사진에 나온 대로 보여지긴 하는지- 의문과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런 복잡하고 귀찮기까지 한 일을 매일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존경심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