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과시적 고통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과시적 고통

0 개 1,101 한얼
약 두 달 전부터 허리가 아팠다. 처음엔 그저 욱신거리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평소에도 지끈거린다. 특히 앉았다 일어날 때. 으으윽! 그 짜릿한 통증이라니.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첫 시작은 어머니의 김장 프로젝트를 도우면서였다. 그 때는 그저 허리를 피면서 아야, 하는 정도였지만 아무래도 추위 때문에 바닥에서 잤던 것이 상태를 악화시켰던 것 같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나고 나니 지금의 고통이 완성되었다.

허리 아프다고 감히 말도 못한 것은 아마도 주변인들의 반응이 두려워서였을 것이다. 아, 안 들어도 선하다. 거봐 내가 뭐랬어, 그렇게 오래 앉아 있지 말랬지, 살 좀 빼랬잖아, 넌 나이도 어린 애가 뭐 벌써부터…… 으으. 차라리 그냥 아프고 말지.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견딜 만할 때까지지, 마음대로 앉았다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결국 나는 어머니께 그 사실을 알렸고, 결국 예상대로 된소리를 실컷 들으며 병원으로 향해야 했다. 거봐 내가 뭐랬어, 그렇게 오래 앉아 있지 말랬지, 살 좀 빼랬잖아, 넌 나이도 어린 애가 뭐 벌써부터…… 이하 생략.

병원에 가면서도 사실 나는 그렇게 큰 문제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께서는 나를 앞뒤로 허리를 숙였다 굽혔다 하게 한 후 등을 꾹꾹 눌러보고는 말씀하셨다.

“디스크 같네요.”

“디, 디스크요?”

디스크란 나이든 회사원들이나 걸리는 줄 알았던 내겐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으아니 의사양반! 그게 무슨 소리요! 내가 디스크라니! 내가 디스크라니!

그런 내 속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의사 선생님은 싱글싱글 웃으며 말을 이으셨다.

“한국 분들은 대개 디스크라고 하면 바로 병원 가서 째야 되는 걸로 생각하는데요, 사실 그건 디스크가 찢어졌거나 했을 때 그렇게 심각한 거고요. 오히려 살짝 부었거나 튀어나오기만 했는데 섣불리 수술을 해버리면 그건 근육도 약화되고 나중에 재발할 확률이 더 커요. 지금 환자분 경우엔요……”

설명이 더 이어졌지만 지금 내 기억에 남아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난 디스크라는 단어가 준 충격에서 헤어나오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으윽, 이럴 줄 알았으면 운동을 좀 더 열심히 하는 건데. 그래서 난 항의하듯 이렇게 더듬더듬 변명했다.

“그, 그렇지만 전 운동도 꼬박꼬박 하는데요?”

“무슨 운동을 하시는데요?”

“거…… 걷기하고 요가나 에어로빅……”

“흠, 그렇군요. 그런데 지금 봐서는 유연성은 굉장히 좋으신데, 근육이 없어요. 허리 근육이. 그래서 더 아픈 거고요.”

찍. 더 할 말이 없었다.

허리 곳곳을 지압하듯 꾹꾹 누르고 조이고 압박하는 의사 선생님의 손길은 과연 전문가다웠지만, 그 손길 아래에 엎드린 나는 고통 때문에 까무러칠 뻔했다. 근육이 눌릴 때마다 민망하고 희한한 비명을 내지르는 것은 기본이요, 팔다리가 간헐적으로 경련을 일으켜댔다. 아마도 옆에서 보는 사람은 꽤나 웃겼겠지만 불행히도 엎드려 있는 당사자였던 내게는 하나도 유쾌하지 못했다. 만약 의사 선생님 또한 그 상황을 우스꽝스럽게 느끼셨다면, 그분은 과연 프로페셔널답게 전혀 티 내지 않으셨다.

“자, 다 됐습니다.”

거의 고문에 가깝던 세션이 끝난 후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자, 의사 선생님은 다시금 허리를 앞뒤로 구부려 보라는 지시를 내리셨다. 반쯤 의심스러워하면서도 나는 충실히 그 지시를 따랐고, 곧이어 매우 놀랐다.

“우와? 훨씬 덜 아파요!”

이럴 수가. 그 순간 의사 선생님은 내 머릿속에서 바로 의느님으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의느님은 여전히 사람 좋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디스크에 좋은 운동을 가르쳐 드릴게요, 집에 가서 꼬박꼬박 하세요.”

아무렴요, 누구 말씀이신데.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한결 가벼워진 허리 덕에 난 그날 희희낙락하며 집에 돌아왔다.

생일 - 이정표, 기념일, 생존기

댓글 0 | 조회 1,290 | 2015.04.15
생일이 지났다. 해가 갈 수록 나이를 먹는 것이 점점 빠르게 체감되어 안타까웠다. 어렸을 적엔 생일이 아주 즐겁고, 매년 손꼽아 기다리곤 하는 연중 하이라이트였는… 더보기

바뀌지 말았으면 하는 것들

댓글 0 | 조회 1,285 | 2013.08.28
누구에게나 삶의 패턴은 있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규칙, 루틴, 어겨선 안 될 불문율, (이런 조잡한 표현을 사용해도 좋다면) 징크스. 나는 두 말 할 것도 없고,… 더보기

무하전

댓글 0 | 조회 1,278 | 2013.07.23
정말 좋아하는 화가의 전시전이 있어 다녀왔다. 화가의 이름은 들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로, 대표작으로는 <… 더보기

요리 - 피할 수 없는 사소함

댓글 0 | 조회 1,265 | 2015.09.24
먹고 살기 위해 필수적인 것 하나: 요리. 요리를 잘 하냐고 묻느냐면 그저 그렇다고 답한다.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굳이 소질이 있지는 않아… 더보기

Piano - about music

댓글 0 | 조회 1,241 | 2013.03.13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거의 이십 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렇게 잘 치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 듣는 노래도 악보를 두고 꾸준히 연습하면 썩 들… 더보기

동물들 - 우리의 친구

댓글 0 | 조회 1,236 | 2013.01.16
동물 애호 사상이 강한 서양권 국가에 살고 있는 만큼, 거리를 걷다 보면 동물을 데리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자주 띈다. 주로 개나 고양이들이다. 크고 작고, 털이… 더보기

일터 - 첫번째 이야기

댓글 0 | 조회 1,210 | 2015.06.10
내가 일하는 곳은 만물상이다. 적당한 크기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물건들이 한가득 쌓여 있고, 찾아오는 손님들은 어린 아이들에서부터 나이든 할아버지까지 다양하다. 찾… 더보기

스마트폰 - 디지탈과 아날로그

댓글 0 | 조회 1,189 | 2013.01.31
디지털의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변화를 거부하고 ‘전화는 통화와 메시지만 보낼 수 있으면 장땡’이라고 여기던 내게, 얼마 전 커다란 변화가 일어… 더보기

놀이터

댓글 0 | 조회 1,185 | 2014.05.28
어른이 되었어도, 놀이터를 지나칠 때마다 뛰어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사실 10대 후반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어린아이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그네를 타고 … 더보기

Going Out

댓글 0 | 조회 1,159 | 2012.12.24
나는 바깥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즐기지 않는다. 내향성인 것이다. 여러모로 훌륭한 히키코모리의 기질을 타고 났다며 빈정거릴 지도… 더보기

차근차근, 우주적으로

댓글 0 | 조회 1,152 | 2013.05.14
주말에 시간이 남아, 모처럼 브라우니를 만들기로 했다. 나는 아주 신이 났다. 계란과 버터는 미리 꺼내두어 냉기를 제거해 두고, 양철 그릇과 주방용 저울과 재료들… 더보기

일터 - 두번째 이야기

댓글 0 | 조회 1,149 | 2015.06.24
전 연재분의 마지막을 손님 이야기를 하며 마쳤으니, 이번에도 손님들 이야기로 시작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가장 대하기 어려운 류의 손님이랄까, 제일 꺼리는 방문객… 더보기

Scars, scars into stars

댓글 0 | 조회 1,144 | 2013.06.26
덜렁거려서인지 또는 둔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자주 다치는 편이다. 하다못해 계단을 올라갈 때도 발을 헛디뎌서 미끄러지거나, 책을 읽으면서 모퉁이를 돌다가 허… 더보기

Tea - the drink of my heart

댓글 0 | 조회 1,133 | 2013.03.26
매일매일 즐기는 날마다의 일과 중에 차를 마시는 것이 있다. 다도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거창하거나 엄숙한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티타임&rsquo… 더보기

현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과시적 고통

댓글 0 | 조회 1,102 | 2013.05.28
약 두 달 전부터 허리가 아팠다. 처음엔 그저 욱신거리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평소에도 지끈거린다. 특히 앉았다 일어날 때. 으으윽! 그 짜릿한 통증이라니. 이루 말… 더보기

회색 도시 - 향수(Ⅰ)

댓글 0 | 조회 1,101 | 2012.11.28
2008년, 나는 가족 방문을 위해 한국에 와 있었다. 겨울이었고, 매우 추웠다. 눈은 오지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그럴 것처럼 흐린 날씨였다고 기억한다. 예전에 살… 더보기

우정과 허망 사이

댓글 0 | 조회 1,082 | 2013.04.23
가끔 생각하곤 한다. 이십 대를 갓 넘긴 주제에 사람 관계가 하루살이의 하루만큼이나 덧없다는 사실을 아는 건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그렇다고 해서 물론 내가 … 더보기

회색 도시 - 향수(Ⅱ)

댓글 0 | 조회 1,072 | 2012.12.11
그렇게 안간힘을 다해 겨우 오르막길을 올라왔건만, 그 위에 있던 풍경은 나를 허탈케 했다. 언덕 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잠시 내가 잘못 찾은 건 아닌가 싶었다… 더보기

시네마 - 은막의 마력

댓글 0 | 조회 1,027 | 2013.02.12
언제 가도 즐거운 장소 중엔 영화관이 있다. 동네의 비교적 작은 영화관도, 시골 구석의 박물관 같은 시네마도, 최신형 기계들과 대형 스크린을 갖춘 번화가의 영화관… 더보기

조용한 크리스마스

댓글 0 | 조회 1,001 | 2015.01.14
크리스마스는 새해와 함께 별 일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다행스럽게도. 행사들을 싫어하는 편이고, 기념일은 매번 잊어버리는 유형의 사람인지라 솔직히 말하자면, 내게… 더보기

즐거운 자기 재확인

댓글 0 | 조회 998 | 2013.11.12
쇼핑을 좋아한다. 옷을 사거나 책을 사는 등의, 좋아하는 물건들을 사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일상 생활에 필요한 식료품이나 생필품을 사러 가는 일도 모두 즐… 더보기

종이에 대고 외치기

댓글 0 | 조회 981 | 2013.04.10
코리아 포스트에 450자짜리 수필을 연재하기 시작한 것도 벌써 10개월이 지난 것 같다. 1년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시간 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