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과 허망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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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과 허망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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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생각하곤 한다. 이십 대를 갓 넘긴 주제에 사람 관계가 하루살이의 하루만큼이나 덧없다는 사실을 아는 건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그렇다고 해서 물론 내가 왕따이거나 한 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자발적인 아웃사이더에 가깝겠지만, 내게도 아는 사람은 꽤 많이 있다. 그러나 그 중 가까운 관계 내지는 친구로 여기는 사람은 두 세 명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얼굴이나 이름만 알고 있거나, 아주 힘들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얼마나 알고 지냈던, 상관없이.

어쩌면 인식 기능에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라는 존재들이 너무나 불안정하기에 애초에 그다지 중요성을 많이 두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모순이다. 불안정해서 중요하게 여기지 않거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에 불안정하거나.

예를 들자면, 이곳에 갓 왔을 때 최초로 사귄 S와 D. 둘은 내 또래의 여자아이들이었고, 영어 공부를 한 적이 없기에 키위들과 어울리는 것을 다소 주저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당시 그나마 쌓아둔 기본이 있어 회화는 막힘 없이 할 줄 알았던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들의 통역사 겸 친구가 되었다.

물론 그것도 1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그 나이의 사춘기 전 시기를 지나가는 애들이라면 누구나 겪을만한 드라마들이 끊임없이 일어난 덕에 (시험, 배신, 화해, 삼각 관계 등등, 가히 한 편의 드라마를 연상시키는 해프닝들) 둘은 내 기억에 상당히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이듬해에 나는 학교를 옮겼다. S는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떠났고, D는 북쪽인지 남쪽인지로 이사를 갔다. 나는 그들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다시 친구라고 부를만한 인맥이 생긴 건 5년 후였다. 이번엔 고등학교에서였고, 상대는 무려 세 명이었다. K와 P와 S’. 우연찮게도 S’는 S와 똑같이 목사님의 딸이었지만 다른 두 사람의 부모님이 어떤 일을 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어쩌면 말해줬는데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미리 말했잖은가, 사람에 관한 한 내 기억력은 그다지 좋지 않다고). 어찌 되었건 우리는 아주 좋은 패거리였다. 어렸을 때 겪었던 것과 같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우정의 위기 따윈 없었다. 우린 서로 즐겁게 어울리면서도 각자의 문제는 각자가 알아서 해결했다. 그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유지되었으니, 그 우정은 꽤 길었음이 분명할 것이다. 그나마도 P와 S’는 한국으로 돌아가버려 보기 힘들게 되었지만, 가장 친했던 K와는 아직까지 연락이 닿고 있다. 비록 그녀 또한 유학을 떠났던 탓에 그다지 자주 보진 못했어도.

대학생이 된 후, 친구라 할 만한 대상이 두 명 더 생겼다. 그럭저럭 오래 알아는 왔지만 진짜로 서로를 ‘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기 때문에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워간다는 느낌이 강했다 (각자 이름과 얼굴만 간신히 외우고 있었던 지난 3년은 무효다). D’와 J는 동급생이지만, J는 외국에서 유학 중이었고 D’와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마주치는 사이이기 때문에 - 적어도 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 다시 고등학교 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농도 옅고, 필요 이상의 이야기는 나누지 않지만 그럼에도, 또는 그렇기에, 편안한.

가끔, 그들을 머릿속에서 되살리곤 한다. 공주 같았던 D와 서글서글했던 S. 한없이 착했던 S’. 늘 모두에게서 좋은 점만을 보곤 하던 P. 나와 취미가 일맥상통하는 K. 차분하지만 가끔은 독특한 D’, 그리고 나와 D’사이에서 이성적인 중재자 역할을 맡곤 하던 J.

변치 않는 것은, 그들은 내게서,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서 먼 곳에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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