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나는 가족 방문을 위해 한국에 와 있었다. 겨울이었고, 매우 추웠다. 눈은 오지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그럴 것처럼 흐린 날씨였다고 기억한다.
예전에 살던 동네를 한 번 보고 싶은 향수심에 들른 서울은 몰라보도록 달라져 있었다.
어느 곳이든, 회색 아닌 곳이 없었다. 지독하리만치, 정말 색채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최첨단 21세기의 도시. 내가 기억하고 있던 알록달록한 90년대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서울은 이미 지독하리만치 고층 빌딩과 콘크리트의 숲으로 탈바꿈한지 오래였다.
유명한 랜드마크나 도시 자체의 구조, 길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공포스러웠다. 가족이나 친구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믿어버리게 되는 카프그라스 증후군처럼, 도시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을 하고 내게 다가왔다. 나는 잔뜩 질려버린 채 속으로는 경악과 경외감마저 품고 일단 익숙한 길부터 걸음을 옮겼다.
가장 먼저 얼굴을 내민 곳은 초등학생 시절, 거의 매일 출근 도장을 찍곤 했던 대형 서점이었다. 지하에 있었고, 그 근방에선 가장 큰 것으로 유명한 모 문고였지만 막상 가보니 서점은 없어지고 그 자리엔 대신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와 있었다. 그 사실에 나는 가장 먼저 막막함부터 느꼈다. 이제 어디서 공짜로 책을 읽지, 하는. 비록 이젠 그곳에서 당당하게 책을 골라 들어 몇 시간 내내 얼굴에 철판을 깔고 읽을 염치는 없으면서도 (옛날, 나 같은 용돈 없는 꼬마들은 공짜로라도 책을 읽고 싶어 서점의 타일 바닥에 앉아 엉덩이에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앉아서 만화책을 보곤 했었다).
그 곳을 지나가 길을 계속 걸었다. 서점을 지나쳐 고급스러워 보이는 중국 음식점을 끼고 - 천우신조처럼, 그곳은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 오른쪽으로 돌면 내가 다녔던 학교가 나온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학교까지 없어진 건 아니겠지, 하는 얼토당토 않은 두려움마저 들 정도로.
다행히 학교는 그대로였다. 낡은 본 건물도, 운동장까지도. 달라진 점이라면 새 건물이 두어 개 더 생긴 것 정도였달까. 다만 교정 안으로 들어가보려고 하자 나이든 경비 아저씨가 날 막았다. 이것도 새로운 변화였다. 예전엔 경비원이 없었으므로.
“학부모이신가요?”
“아뇨. 여기 옛날 학생인데, 한 번 보고 싶어서요.”
그 말에 아저씨는 정말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 시간대에는 아이를 데리러 온 학부형이 아니면 들어올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잠시 놀랐지만 지금에 와선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당시는 초등생 성범죄 사건으로 전국이 시끄러울 때였으니까.
내가 수긍하며 물러서자, 궁금했는지 아저씨는 재차 질문을 던졌다.
“졸업한지 얼마나 되셨어요?”
“어렸을 때 전학을 갔거든요. 10년 전 4학년까지 다녔었어요.”
학교 외에도, 그 앞에 있던 문방구 중 한 곳은 변함 없이 남아 있었다. 없어진 문구점의 자리엔 대신 셔터가 내려간 철물점이 들어와 있었다. <폐점>이라고 스프레이 페인트로 칠해진 채.
오래 견딘 것은 거의 없다는 사실에 나는 잠시 슬픔을 느꼈다.
십 여 년의 세월을 살아남은 기억 속 장소는 그게 전부였다. 나머지는 전부 바뀌었거나, 사라져 있었다. 주말이면 아빠를 졸라 가곤 했던 비디오 가게도, 동경했던 미술 학원도. 잠깐 동안이지만 내가 다녔던 단촐한 피아노 학원은 아예 건물째 없어졌다. 나는 점점, 뱃속의 긴장이 단단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예전에 살던 집으로 가려면 오르막길을 타야 했다. 그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서, 어렸을 땐 용케도 이 길을 힘 안들이고 다녔구나, 싶었다. 그 때는 모든 게 즐거워서, 등교와 하굣길마저도 뜀박질을 하며 다녔었으니까. 무수한 추억들과 사고의 기억들이 얽힌 길은, 어른이 된 지금에 와선 너무나도 힘겹게 느껴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