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것들 중에 레몬 나무가 있다.
물론 빈약한 나무는 안 된다. 적어도 몇 년은 묵어서 완전히 크게 자란 것, 해마다 한 번은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레몬 나무가 있는 집에서 살아보는 게 소원인데, 여태껏 한 번도 그런 집에선 살아보질 못해서 유감이다.
관상적으로 보기 좋다는 것 외에도 레몬 나무는 쓸모가 참 많다. 굳이 시장에 가기 보다는 집에 있는 나무에서 열매를 따서 쓰는 게 경제적이니까. 미적 감각과 실용성을 모두 갖춘 레몬 나무는 모든 집에 한 그루씩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레몬 그 자체도 참 불가사의하고 아름다운 과일이다. 그냥 먹을 순 없지만 - 언젠가 레몬을 그냥 날 것으로 즐겨먹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충격과 공포였다 - 거의 모든 요리와 궁합이 잘 맞는다. 더없이 훌륭한 보조 재료인 셈이다. 더군다나, 씨를 제외하고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껍질로는 잘 손질해서 제스트나 차를 만들 수 있고, 과육은 설탕 절임을 만들 수도 있다. 즙으로는 소스, 과자, 양념, 뭐든지 가능하다.
노란 열매의 통통한 둘레는 촉감만으로도 행복을 가져다 준다. 차갑고, 두 손에 조금 넘치게 꽉 담기면 느껴지는 만족감 (나는 손이 작은 편이다). 그리고 그 냄새야 두말할 필요도 없다. 시중의 레모네이드에서 느껴지는 어정쩡한 인공향과는 차원이 다른, 이것이야말로 자연 그 자체라고 느껴지는 향기. 신선함! 이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사람의 오감 중 가장 예민한 감각은 후각이라고 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 가장 즐거웠던 기억이 레몬과 직결되어 있기에, 레몬 나무는 내게 행복을 상징한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의 제제가 자신의 나무에게 밍기뉴란 이름을 붙여주고 아끼며 추억한 것처럼.
십여 년 전, 무더운 여름날이면 우리 가족은 친척집에 놀러 가곤 했다. 그곳에는 크진 않았지만 아이들 네댓이 놀기에 적당한 수영장이 있었고, 마찬가지로 다 자라진 않았어도 해마다 예닐곱 개의 열매를 맺는 레몬 나무가 있었다. 참 작고 가련해 보이지만 태풍에도 꺾이지 않은 강인한 생명체였다.
차가운 물속에서 한참이나 헤엄을 치며 놀다 보면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파지는 건 자연의 순리인지라, 우리를 수영장에 풀어둔 채 잠깐의 평화를 즐기던 엄마들은 늘 음료수와 간식 거리를 잔뜩 준비해놓곤 했다. 그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그날 따라 음료수가 유독 모자랐던지, 페트병 하나의 음료수는 금방 동이 나고 말았다. 더 마시고 싶은데, 라며 투덜거리던 우리의 눈에 띈 것은 가느다란 가지에 매달린 레몬들이었다. 크진 않아도 완연히 익어서 탱글탱글하고 탐스러운. 말로만 듣던 서양 아이들의 음료수, 레모네이드를 직접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다니! 만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레몬을 반으로 가르고, 손으로 있는 힘껏 과일을 쥐어 즙을 짜낸다. 거기에 양이 충분해질 때까지 물을 넣은 후 입에 맞을 정도로 설탕을 넣고 휘휘 젓는다. 그리곤 나눠 마셨다.
물론 아이들이 레시피도 없이 멋대로 만든 만큼 결과물은 완벽하진 않았다. 대개는 과육 조각들이며 씨까지도 섞여 있었고, 맛은 달기만 하고 밍밍하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셨다. 그래도 우리는 그 레몬향이 희미하게 느껴지는 설탕물을 신이 나서 들이켰다. 조금이라도 더 마시겠다며 서로 싸우기까지 했더랬다. 아마도 한국에선 만들어 먹을 수 없는 엑조틱한 것에 대한 동경과, 집에서 나는 것으로 우리가 직접 만들었다는 뿌듯함 때문이었으리라.
물론 그 후폭풍(?)이 고스란히 남은 부엌 때문에 우리는 또다시 혼나곤 했지만, 그래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맛이었다. 지금은 더 이상 맛볼 수 없기에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