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미나리 강회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미나리, 미나리 강회

1 2,428 오소영
지겹도록 비가 내려 지루하기만 하던 한 겨울. 그래도 그 비 덕분일까?

통통하게 살이 오른 원 줄기에 마냥 나긋하게 자란 미나리를 만나니 반갑다. 그 것을 보는 순간 버릇처럼 어김없이 떠 오르는 어느 분 얼굴이 있다. ‘테레사’ 형님!. 그 댁의 ‘토마토 하우스’ 밑에 만들어진 미나리 깡에는 토마토가 먹고 흘린 영양소로 맘껏 자란 미나리가 언제나 풍성하게 너울거렸다. 우리가 갈 때마다 긴 장화(長靴)를 신고 낫을 휘두르며 절벅절벅 들어가던 그 분의 남자같이 기운찬 모습이 너무도 인상적이어서 머리속에 깊이 각인 되어있다. 푸짐한 미나리 보따리에 더러 토마토도 찔러 넣어주고 밭에 정성드려 심은 푸성귀도 뜯어다 얹어주던 모습이 딸을 챙기는 친정 어머니처럼 정스러워 그 고마움을 마냥 세월이 지나가도 잊을 수가 없다. 
 
이제 고령 어르신으로 예전같지 않아 자주 만날 기회조차 쉽지가 않다. 수 차례 건강상의 어려운 고비를 물리치고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서시는 모습을 보며 역시 그 분답다고 뜨거운 마음으로 존경을 하게 된다. 아마도 나눈 사랑이 너무 커서 누군가가 베푸는 기도속의 은혜로움을 선물로 받는 것이라고 믿어진다. 다시 씩씩한 옛 모습을 뵈어야 할텐데....

미끈하게 잘 자란 미나리를 그냥 데쳐서 나물로만 먹기엔 아까운 생각이 들어 곁 이파리를 젖혀내고 원 줄기만을 추려 김치를 담을까 하다가 그대로 사알짝 파아랗게 익혀냈다. 짙은 향기. 햇냄새에 갑자기 무디어진 내 미각 신경에 생기가 돌고 군침이 넘어 간다. (그래 그게 있었지 강회!) 모처럼 신경써서 내 먹거리를 준비 한다는 새삼스러움이 너무도 신통하고 괜찮았다. 탱탱하게 고무줄처럼 탄력이 생긴 줄기를 하나씩 정성스럽게 돌돌 말아 접시에 돌려 담으며 먼 옛날 어떤 그림 속으로 추억여행을 달려간다.   

강남 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온다는 ‘삼월삼짇’ 날. 그 날은 친정 어머니의 생일이기도 해서 제비가 우리 집에 반가운 첫 손님인 셈이다. 봄을 안고 돌아 온 제비. 새 봄의 전령처럼 새파아란 ‘미나리 강회’가 그 생일상에 빠지지 않고 올랐었다. 겨우내 묵은김치에 지친 입맛을 산뜻하게 바꿔주는 계절의 별미. 그 날을 시작으로 봄을 타는 아버지 때문에 매일 나물을 다듬어야 했던 어머니의 손톱밑이 늘 새까맣던게 생각난다. 이모. 숙모님. 언니까지 여자들이 부엌 안에 가득해서 나 같은 아이는 들어서지도 못하게 했건만 미나리를 돌돌 말아 만들어 내는게 너무도 재밋어 보여 비집고 들어가 어른들 흉내를 냈는데 그 때부터 그 일은 내게 맡겨진 단골이 되었다. 어린것이 제법 잘 따라 한다는 칭찬에 그만 발이 묶였던 것이다. 무늬 없이 하얗고 큰 접시에 파아란 미나리를 가즈런히 돌려담고 그 가운데 매콤새콤하게 만든 빨강 초고추장을 올리면 그 색스러움만 가지고도 밥상의 분위기가 요리상으로 훌륭했었다.
 
시집가서 식성 까다로운 남편에게 제일 먼저 인정받은 음식도 아마 미나리 강회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어느 나른한 봄날 저녁 식탁에 올린 그 것을 하나 집어먹더니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엄지 손가락을 추켜세우며 좋아하는 그를 위해 맛깔스럽게 볶은 살코기 한 점 겯드린 특제로까지 만드느라 봄마다 내 손톱밑은 늘 칙칙하니 고운 모습을 잃고 살았다. 아버지께서는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는지 나물 자체로만 즐기셨는데 육식체질인 그는 달랐다.   

미나리를 다듬는 날은 옆 집 ‘린티’(강아지 이름)네 아줌마가 신나는 날이기도 했다. 우리 집 앞을 오며 가며 군것질 만난 아이처럼 미나리를 집어다가 입에 물고 질겅질겅 씹고 다닌다. 고혈압 환자에게 미나리가 약이라며 급할 때 미나리 찾는 것도 자주 보아왔기에 이해가 된다. 음식솜씨 좋은 개성 아줌마. “나도 오늘저녁 메뉴는 강회야” 활짝 웃으며 미나리 다발을 흔들어 보일 때면 늘 소녀같다고 생각했었다. 나와 띠 동갑이던 그 분은 아직도 살아계신지? 미나리 김치도 잘 담아서 나눠 주시더니... 
 
생각은 먼 옛날을 헤메는데 손 놀림을 하는 동안 내 접시가 파아랗게 고운 색깔로 덮히기 시작한다. 매콤 새콤 달콤 혀끝에 맛을 보며 초 고추장을 만들어 꽃심처럼 가운데 놓아본다. 역시 보기만으로도 산뜻하다. 돌이켜보니 강회 좋아하던 남편을 위해 정성으로 해 내던 그 이후로는 처음 공드려 만들어 본 나를 위한 성찬인 셈이다. 그런데 그냥 먹기엔 아깝다는 아쉬운 생각이 들어 식탁 앞에서 망서린다. 여자들은 누군가를 먹이기 위해 음식을 만드는데 혼자서의 식탁이 영 낯설어 졌기 때문이다. 음식같이 먹으며 당연한 일이지만 가끔씩은 칭찬도 들으면 그 또한 얼마나 멋진 보람인가. 스스로를 환대하지 못하면서 살아 온 사실이 바로 그런 이유라는게 측은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어쩌랴. 하나 집어서 입안에 넣으니 물먹어 살진 미나리가 툭 터지며 찐한 향기가 입안에 번진다. 맨 밑둥에서 씹히는 독한 향이 조금은 쌉싸름 하기까지 하다. 개운 해진 입맛따라 기분이 좋아진다. 짧은 순간이지만 행복감으로 짜릿 해 진다. 오래 오래 간직하고 싶은 모처럼의 이 감정. 참 별것도 아닌걸 가지고 느껴지는 색다른 감정에 스스로 놀랜다. 나이 먹으니 속물로 변해 가는 것 중에 이런 것도 있구나 싶어 혼자 웃는다. 삶이란 이런 것일까? 사람은 이렇게 변덕쟁이. 수시로 변하며 사는 것인지... 뱃속에 파란물이 들도록 푸성귀로만 채우고서도 그득한 만복감을 느끼기도 참 오랫만이다.

이제부터 나만의 성찬(?)을 준비하는데 좀 더 부지런해 져야겠다. 그래서 자주 행복 해지는 것도 좋지 않을까?.
 
123
맛깔스런 글의 향기가 가슴 속으로 파고 듭니다..
선생님~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여섯번째 상, 세번째 방학

댓글 0 | 조회 1,790 | 2006.09.27
Term 3가 끝나고 방학시작. 이제 2주간 하루종일 아들과 씨름해야 한다 수영장 한번 놀러가고 공원에 한번 가고 바닷가 한번 가고 친구생일파티 한번 가고 그러다… 더보기

9살 유학생의 기도

댓글 0 | 조회 1,608 | 2006.09.27
우리 가족 건강하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2006년 7월 30일 학교에서 생활 잘 하게 해 주세요8월 1일 성경책 잘 읽고 똑똑하게 해 주세요 8월 2일 수영 잘… 더보기

조기유학 : 2년이 적당?

댓글 0 | 조회 2,332 | 2006.09.15
사례 1. A양과 B양은 자매간이다 언니는 초등학교 5학년, 동생은 3학년때 뉴질랜드로 왔다 2년동안 학교에 다녔고 집에서는 꼬박 2년간 개인영어과외도 받았다 언… 더보기

애물단지

댓글 0 | 조회 2,270 | 2006.09.09
3,200불에 차를 샀다 1995년식 일본 토요타였다 원래 매매가격은 3,300불이었다 당연히 아저씨 좀 깍아주세요 라는 말을 했는데 아저씨 왈, 싼 물건에도 한… 더보기

여왕의 서거

댓글 0 | 조회 1,737 | 2006.09.02
2006년 8월, 뉴질랜드 국내 뉴스 중 단연코 1위는 여왕의 죽음이다 영국여왕이 있는 것은 모두가 아는 일이지만 뉴질랜드라는 나라에도 여왕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 더보기

좀도둑

댓글 0 | 조회 1,891 | 2006.08.27
어젯밤 앞집사는 키위여자가 찾아왔다 자기네 잔디밭에 세워둔 차의 바퀴 4개가 모조리 없어졌단다 허걱! 어둠속을 뚫고 보니 차는 있는데 바퀴가 휑하니 없다 뭔가 본… 더보기

다섯번째 상 - Math Superstar

댓글 0 | 조회 1,541 | 2006.08.18
아들이 상장을 쑥 내미는데 상 이름이 참 웃긴다 "Mathematics Superstar Certificate" 요즘 Superman 영화가 뜨더니 상 이름을 시… 더보기

Tooth-brush Day

댓글 0 | 조회 1,761 | 2006.08.09
8월 7일은 뉴질랜드에서 구강의 날인 모양이다 저녁 뉴스를 보니 어느 초등학교의 강당에 아이들을 모아 놓고 양치질의 중요성,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 더보기

해리포터의 결말은 죽음

댓글 0 | 조회 1,764 | 2006.08.08
해리포터 시리즈의 완결편이 지금 집필중이다 작가 J.K.Rowling이 현재 7편을 쓰고 있는데 어떻게 끝을 맺을지 결정했다고 한다 2명의 캐릭터가 죽게 된다고.… 더보기

친절한 오클랜드사람들

댓글 0 | 조회 1,685 | 2006.07.31
가장 친절한 도시 순위 1위: 미국의 뉴욕 2위: 스위스의 쮜리히 3위: 캐나다의 토론토 4위: 독일의 베를린 7위: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15위: 영국의 런던, … 더보기

김윤진

댓글 0 | 조회 1,778 | 2006.07.17
아이들을 재워놓고 Prime TV의 David Letterman쇼를 가끔 보곤 한다 며칠전에 별 생각없이 TV를 틀었더니 마침 guest를 소개하는데 마이클 더글… 더보기

Korean Missile Crisis

댓글 0 | 조회 1,672 | 2006.07.08
2006년 7월 6일자 뉴질랜드신문을 보니 제 1면에 대문짝만한 김정일의 사진이 보인다 서울에서 열린 북한의 미사일발사 규탄 집회에서 김정일의 사진을 불태운 모양… 더보기

캔디

댓글 0 | 조회 1,572 | 2006.06.29
내겐 참 착한 친구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캔디 어찌나 착한지 그 친구에게는 착하다는 수식어외에는 다른 것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다 갈색머리에 갈색눈의 백인으로 그녀… 더보기

[re] 오클랜드 굴욕 사건

댓글 0 | 조회 1,484 | 2006.06.26
>1. 수학문제 > >백의 자리의 숫자가 3인 세자리 수 중에서 347보다 작은 수는 몇개입니까? > >아들녀석이 써 놓은 답을 보니 … 더보기

오클랜드 굴욕 사건

댓글 0 | 조회 1,767 | 2006.06.23
1. 수학문제 백의 자리의 숫자가 3인 세자리 수 중에서 347보다 작은 수는 몇개입니까? 아들녀석이 써 놓은 답을 보니 47. "야, 다시 똑바로 해 봐"냅따 … 더보기

네번째 상 받다

댓글 0 | 조회 1,530 | 2006.06.19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오늘 assembly 했니?" "응,... 참, 근데, 나 상 받았다!" "진짜?와, 추카추카, 근데 무슨 상이야?" "음.… 더보기

몰리 후피 - 시즌 2

댓글 0 | 조회 2,382 | 2006.06.07
옛날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에, 많은 아이들을 기르는 가난한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다 쓰러져가는 방 두칸짜리 오두막에서, 쌀구경을 제대로 못해감자와 옥수수로 근… 더보기

Hairy Women은 용감해야 한다

댓글 0 | 조회 1,814 | 2006.05.31
뉴질랜드에 살면서 한국에 비해 편리한 점 중에 하나는 쉽게 wax제품을 구할 수 있다는 거다 예전 미국의 월마트에서 첨 왁스를 접하고 여자들도 이런 걸 꼭 해야하… 더보기

donation이 너무 많다

댓글 0 | 조회 1,484 | 2006.05.23
아들녀석이 집에 오더니 가방에서 웬 편지를 한 장 내민다 읽어보니 지난학기에 80불 donation을 안 냈으니 이제 100불을 납부하라는 내용이었다 1년에 80… 더보기

global citizen

댓글 0 | 조회 1,557 | 2006.05.10
아들은 이제 3학기째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어느날 부터인가, 내가 시킨 것도 아닌데, 집에서는 간단한 말이나 특히 감탄사등은 모두 영어로 하고 있다 동생이… 더보기

뉴질랜드 운전면허 시험

댓글 0 | 조회 2,303 | 2006.04.21
뉴질랜드에 온지 7개월째다 오프라 윈프리는 단 하루도 9.11 희생자들을 생각하지 않고 지난 날이 없다고 단언했지만, 나는 지난 6개월이상을 운전면허에 항상 가위… 더보기

111 전화해봐야 소용없다?

댓글 0 | 조회 1,845 | 2006.04.09
한국의 119처럼 뉴질랜드에서는 비상시에 111로 전화하면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111로 전화해봤자 너무 늦게 와서 소용없더라는 얘기를 여러번 들어왔다 사실 속으… 더보기

"나도 이렇게 하나님을 만났다"

댓글 0 | 조회 1,832 | 2006.04.03
나는 꽤 바쁘게 살아온 편이다. 항상 무엇인가 목적을 두고 그 달성을 위해 고군분투해 왔었다. 사회적인 성취를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애를 쓴 적도 많았고 그 목표… 더보기

스펠링 대회

댓글 0 | 조회 2,053 | 2006.03.29
2주전쯤에 예고된 스펠링대회를 어제 치루었다 3학년인 아들에게는 총 50개의 예상단어가 주어졌다 단어들은 상당히 쉬운 편이었다 before, make, take,… 더보기

뉴질랜드 아이들은 참 일찍 잔다

댓글 0 | 조회 1,889 | 2006.03.20
앞집의 키위 아줌마가 내게 물었다 아이들을 몇시에 재우냐고?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충 짐작이 갔지만, 얌전히 대답해 주었다 9시 30분쯤 자러들어가서 어쩌고 저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