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 마당의 가지치기한 포도나무에 새순이 돋기 시작한다. 살포시 고개를 내밀다 후다닥 팔을 펼치는 모습과 마주하면 경이롭기 그지없다. 이맘때 즈음 농부들은 원기 충만한 포도를 얻기 위해서 지나치게 많이 나온 새순을 잘라내고 나이든 포도나무를 어린 나무로 바꾸고 흙을 갈아엎고 골라주면서 쉼 없이 땅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농부는 단지 자연에 경건하고 겸허하다. 열심을 다해 일구고 가꿀 뿐, 풍요로운 결실은 하늘에 둔다. 만물을 싹 틔우는 새 봄, 새로운 시작의 시점에 초심(初心)을 떠올렸다. 처음에 가졌던 소중하고 겸손한 마음.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온 이민생활 내내 이 글귀는 힘들 때 나를 격려하고 가고 있는 길을 되돌이켜보게 했다.
와인의 시작은 고대 유적을 통해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7000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메소포타미아문명인 소아시아 지역 슈메르인들에 의하여 와인이 생산되었고 이후 페니키아인들이 이집트 그리스 로마에 전달하게 된다. BC 50년경 로마가 지중해와 유럽지역을 지배하게 되면서 지금의 프랑스와 독일 스페인 지역까지 대규모 포도단지가 형성되어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이후 4세기 초에 기독교의 공인으로 미사 성찬용으로 포도주가 사용되고 16세기 이후 유리병과 코르크 마개의 개발과 더불어 가톨릭 선교사들에 의해 전 세계로 전파되기 시작해서 현재는 50여 개국에서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와인은 다른 술과는 달리 제조과정에서 물이 전혀 첨가되지 않는 음료로 알코올의 함량이 적고 유기산과 무기질 등이 파괴되지 않은 채 포도 성분이 그대로 살아있는 술이다. 와인의 성분은 수분이 85% 알코올이 9-13% 정도이고 나머지는 당분과 비타민, 유기산, 각종 미네랄, 폴리페놀 등이다. 와인은 플라톤의 표현처럼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며 발효식품으로 완전한 식품이며 마시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에서 꽃 피운 와인에는 특별한 역사가 있다. 유럽의 포도종자는 프랑스에서 개척의 땅인 미국으로 1840년도쯤에 묘목으로 전해졌다. 그 이후 프랑스는 미국 땅에서 자란 묘목을 조사목적으로 프랑스로 가져와 심었는데, 이때 매미 과에 속하는 필록세라라는 곤충의 알이 함께 들어와 뿌리에 기생하며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의 와인산업을 초토화시키게 된다. 이에 반해 칠레의 경우, 해충 감염전인 1851년에 유럽에서 묘목을 들여왔기 때문에 피해를 면할 수 있었고 유럽 고유의 포도와 고전와인의 맛을 지킬 수 있었다. 칠레의 자연환경은 일교차가 크고 안데스 산맥의 빙하에서 녹아 내리는 청정수와 구리성분이 많아 병균에 강한 토양을 가지고 있어 포도재배에 매우 적합한 환경이다. 더구나 땅값과 노동력이 저렴하여 가격대비 훌륭한 와인을 생산하는 국가다. 결국 1881년 해충에 강한 미국품종의 뿌리에 유럽의 포도 가지를 접붙이는 방법으로 이 해충의 피해가 해결되고 유럽에서 다시 와인이 꽃 피울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이 봄에 다시 나에게 초심을 묻는다. 기억하는가? 관광용 소주 몇 팩을 놓고도 이민생활의 애환을 털어놓을 수 있었고 목표를 만들고 도전과 모험을 강행하던 열정과 배짱으로 가슴 벅차던 그 시절을. 우리가 무엇이 되고 무엇을 이루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할 때다. 우리 인생의 위기는 초심을 상실할 때 찾아온다. 교만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것이며 이때 우리가 점검해야 될 마음이 초심이다. 행복을 내 앞에 내놓으라고 하지 말라. 당신으로부터 멀지 않다. 대신 첫사랑의 마음처럼 초심(初心)을 떠올릴 일이다. 순수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열심으로 열정으로, 새로 맞이하는 눈부신 아침처럼 처음 같은 마음으로 뜨겁게 새 봄을 맞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