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와인은 색과 향 그리고 맛의 조화로움이 필요하다. 레드와인이 같은 조건에서 색(色)이 짙다는 것은 포도가 농축되어 수분이 적다는 것을 뜻한다. 추운 지방의 경우 밝은 색을 띠고 따뜻한 지방은 색이 진하다. 또한 레드와인은 숙성이 될 수록 색이 옅어지는데 잉크 색, 자주색으로부터 호박색(진한 노란빛의 주황색), 갈색으로 점차 변해간다. 이렇게 잔에 따라놓은 와인의 중심부와 가장자리의 색을 통해 생산지와 숙성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감기에 걸린 사람이 맛을 잘 볼 수 없듯이 우리가 맛을 느낄 때 향(香)은 역시 후각이 중요하다. 품질이 좋은 와인은 매우 풍부한 향을 가지고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엔 향이 평이하다. 향은 포도가 어디에서 재배되었고 얼마나 익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소비뇽블랑의 경우 뉴질랜드산과 프랑스의 상세르지역의 향이 확연하게 다른 것이다. 그리고 면적당 생산되는 양이 많을 수록 향은 옅어지고 기온이 시원한 재배지 일수록 향이 더 상쾌하고 진하다. 양조과정을 통해서 부드러운 유제품과 바닐라 계열의 향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와인은 꽃, 식물, 과일, 광물질, 가죽이나 모피 같은 동물성, 향신료, 말린 과일, 커피와 담배 같은 탄 향기 등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결점이 있는 와인은 화학적인 향기를 갖게 되는데, 변한 사과, 씁쓸한 캐러멜, 시큼한 식초, 매니큐어 액, 그을린 성냥, 썩은 달걀, 타는 고무, 마늘, 양파, 곰팡이 등의 향이 난다.
마지막으로 맛(味)을 볼 때 혀는 신맛, 단맛, 쓴맛, 짠맛, 알코올을 감지한다. 와인을 마실 때 함께 입안으로 들어온 공기는 향을 코 위쪽으로 보내어 풍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입 안에서 느껴지는 질감과 감촉, 산도의 생기발랄함, 과일 맛의 원숙도, 알코올의 무게 감과 뜨겁게 느껴지는 정도, 레드와인의 경우 타닌의 드라이한 정도를 분석하는 것 또한 맛(Tasting)의 영역이다. 가격이 저렴해도 균형이 잘 잡혀있고 와인을 삼킨 후에도 풍미가 입 안에서 기분 좋게 지속된다면 품질이 좋은 와인이다. ‘밋밋하다’. ‘신선하다’는 맛은 산도이며 ‘달다’는 느낌은 와인의 잔여당분이나 알코올에서 오는 풍미다. 쓰다고 느끼는 것이 단지 타닌 때문만은 아니다. 높은 알코올도 쓴맛을 느끼게 한다. 엄밀히 말해 쓴맛은 미감이며 타닌은 촉감에서 오는 느낌이다. ‘거칠다’. ‘무겁다’와 같은 촉감이나 질감은 ‘맛’이 아니지만 와인의 균형에 중요한 작용을 하며 와인의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이렇듯 와인의 풍미인 색과 향은 알코올의 등을 타고 넘실거리며 단맛과 신맛, 쓴맛 외에도 촉감을 전달하고 그 여운을 길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어느 스님이 밴댕이 소갈딱지마냥 속 좁은 제자를 불러 몽둥이를 휘두르며 물었다. ‘네 앞에 있는 이 몽둥이가 있다고 해도 맞을 것이요 없다고 해도 맞을 것이다. 겁이 나서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맞을 것이다. 이 몽둥이는 네놈 앞에 있느냐 없느냐?’ 정신이 번쩍 난 제자, 스님이 그간 공부한 ‘색즉시공, 공즉시색’ 내용을 떠올리며 ‘있는 것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면 있다 와 없다를 반복해 말했으니 네 대를 맞을 것이다. 대체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무조건 맞을 수 밖에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몽둥이에 집착하지 않고 현재로 마음을 연다면 맞지 않을 답은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 여름 내내 긴 가뭄에 목말라하던 대지를 적시는 비를 보며 ‘참 시원하네요.’ 붉게 물들어가는 나무를 가리키며 ‘이제 가을이 오려나 봐요.’ 애교를 부리며 ‘좋은 향이 나는 차를 한잔 올릴까요.’ 몽둥이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난 사람만이 그의 곁에서 펼쳐지고 있는 자연의 쉼 없는 생명활동과 색(色)과 향(香) 그리고 맛(味)을 빚어내는 다채로운 변화와 조화로움을 보고 느낄 수 있다. 몽둥이에 집착하는 이들에겐 가당치도 않겠지만 타는 목마름의 여정 끝에 옷 갈아 입고 우리 곁에 돌아온 형형색색의 성숙한 가을을 벗삼고 향유하라.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