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문화(Cultur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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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문화(Culture)다

0 개 2,017 피터 황


짚신장수와 우산장수 아들을 둔 어미의 엇갈리는 심정처럼 목축농가에 재난을 안겨준 70년 만에 찾아온 건조한 여름날씨가 오히려 와인농가들에게는 30년 만에 대풍년을 선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가을철인 지금 아침저녁으로 서늘하고 낮에는 여전히 뜨거운 날씨가 지속되면서 포도알갱이들은 움 추리고 기지개 펴기를 거듭하며 근육으로 탄탄한 구조를 만들고 맛과 향이 풍부한 최고의 주스를 만들고 있다.



이런 덕분에 일조량이 충분했던 뉴질랜드의 2013년 빈티지 피노누아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3곳의 와인농장이 새로 만들어져 전국에 120개 양조장과 총 484군데가 된 피노누아(Pinot Noir) 생산자들은 전세계에서 밀려드는 선 주문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으며 와인메이커들도 자신의 생애에 한 번 올까말까한 기회라며 최고의 와인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그 동안 최고등급의 피노누아를 만들어 왔던 와인어리들이 주목을 받고 있고, 와인매니아들은 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모를 감동을 기대하며 이미 가슴이 설렌다.


와인을 마시고 그 감동에 눈물을 흘린다고 하면 과장된 호들갑에 설레발치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독일의 유명한 시인이자 와인매니아인 요한 볼프강 괴테에게 기자가 물었다. ‘외딴섬으로 떠나야 할 때, 3가지를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갈 것인가요?’ 그는 ‘시, 아름다운 여자, 최고의 와인’을 골랐다. 재미있어진 기자는 이번엔 2가지만 고르도록 했다. 괴테는 ‘아름다운 여자, 그리고 가뭄에 마실 최고의 와인’을 선택했다. 기자는 시인이 시를 포기하겠다는 말에 놀라면서, ‘그럼 선생님, 만약 여자와 와인 중에서 하나밖에 못 가져간다면 무엇을 두고 가시겠습니까?’ 그러자 괴테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글쎄요. 무엇보다도 가져갈 수 있는 와인이 몇 년산 인가를 먼저 따져봐야겠군요.’


외로운 섬에서 그에겐 한 병의 좋은 와인이 아름다운 여자보다도 더욱 필요하고 소중하단 말이 된다. 당신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겠는가? 대다수의 평범한 사내라면 아름다운 여자를 선택하겠지만 괴테에게는 어떠한 것도 와인과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와인은 그에게는 시적 감성이며 그의 영혼을 노래하는 시를 통해서 이룩해낸 그 만의 문화다.


와인에 인간의 기술력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결국 와인은 자연이 만든다. 그래서 좋은 와인이란 풍년이 든 해에 담은 건강한 와인이다. 이 와인에는 더 많은 천연 항산화제가 들어 있어서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성숙되는 풍미를 즐길 수 있는 이유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와인은 오크통에서 2년 정도의 성숙(Maturation)기간을 거쳐 병 속에서 나이를 먹는다(Aging). 그러므로 와인에 있어서 빈티지(Vintage)란 위스키나 코냑 등의 나이(Age)와는 그 의미가 다르다. 위스키나 코냑은 술을 만들어 오크통안에서 얼마만큼 숙성되었는지의 기간을 말하지만 와인은 포도가 밭에서 수확된 바로 그 해의 연도를 말하는 것이다. 즉 라벨에 1988년 빈티지라고 쓰여 있으면 이 와인은 1988년도에 포도를 수확해서 그 해에 담은 술이라는 의미다.


와인, 그것은 농부들이 자연에 순응하고 때론 싸워 가면서 재배한, 한 방울 한 방울 포도에서 얻어낸 예술품이다. 실로 감탄할 만한 노력의 대가이고 자연에서 고귀하게 얻어진 생명이며 인간의 역사와 함께 오랜 세월 면면히 이어져온 문화다.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진 한 작가가 그간 수집한 미술작품들을 팔아 돈을 마련하면서도 자신이 아끼는 와인만은 남겨두었다. 친구가 답답해서 이유를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인간에게 예술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문화가 없이는 못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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