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
아들은 아빠랑 치카를 하고 나면 나름 잘 했다는 표시로 항상 내 앞에 와서 입을 한껏 벌리고는 보여주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럴 때면 치카맨으로 변신하는 호비 아빠가 그러듯이 한껏 오바해가며 ‘우어어~ 너무너무 반짝거려서 눈을 뜰 수가 없네~’라고 맞장구 좀 쳐주면 씨익 웃으며 돌아선다.
‘아아악~~~! 이게 뭐야!’
신나서 달려온 아들은 엄마가 괴성을 지르자 한껏 주눅이 들어버렸다.
어떻게 방금 이를 닦았는데 어금니에는 김가루가 그대로 묻어있나… 아빠는 도대체 애 치카를 어찌 시켜주는 건지 이것도 참 대단한 기술이다. 원래도 대충 후다닥 닦이는걸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마감에 쫓겨서 허덕거릴 때면 안 하는 것 보다는 아빠가 도와줘서 대충 치약이라도 묻히는 게 조금이라도 낫지 않을까 싶어서 그냥 뒀었건만 이건 좀 너무하지 않는가. 아빤 너무 관대하다.
아들 픽업을 갔더니 선생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진지한 얼굴로 물어본다. ‘오늘 도시락 안 싸줬던데 무슨 일 있어?’ 허걱. 이건 또 왠 날벼락인고. 일주일에 딱 하루, 금요일에만 도시락을 싸 가는데 눈비비고 일어나서 고기 꼬치에 끼우고 튀김 튀기고 생쑈를 해서 바리바리 싸 보냈건만 도시락을 안 싸오다니.
아침 픽업을 담당한 아빠에게 부리나케 어찌된 일인가 물어봤더니 돌아온 대답은.. ‘아, 맞다!’
이런… 깜빡 까먹고 뒷자리에 둔 채로 그냥 애만 들여보냈단다. 그러고 보니 차 뒷자리에 도시락 통이 그대로 놓여있다. 어린 것이 그거 안 싸 보내면 쫄딱 굶어야 할 수도 있는 것을 어찌 그걸 까먹을 수 있을고… 아빤 참 대단하다.
아빠가 오후에 시간이 되는 날 아들의 픽업을 부탁해보면 꼭 아들을 잠든 채로 안고 온다. 유치원에서 오는데 기껏해야 10여분 남짓 걸리는 거리인데 그 시간에 아들이 잠들 수 있다는 게 놀라워서 물어봤다. ‘올 때 둘이 얘기 안 해?’ 내가 데리고 올 때면 오늘은 유치원에서 누구랑 놀았는지 뭘 하고 놀았는지, 친구 누구는 오늘 왔는지, 집에 가서 뭐하고 놀 건지 등등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는데, 아빠는 말 한마디 안하고 앞만 보고 온단다. 친구 이름 맨날 얘기해줘도 까먹고 만화 캐릭터 이름도 맨날 그게 누군데 라며 반문하니 아들 넘도 별로 할 말이 없겠지. 아빠는 운전에 열중하니 피곤한 아들이 금새 잠이 들 수 밖에. 아빤 참.. 상남자다.
저녁 시간에 일 좀 하려고 아빠보고 아들이랑 책 좀 보면서 놀아주라고 맡기면 흔쾌히 걱정 말라고 한다. 조금 있다가 조용해서 나가보면 어느새 책은 바닥에 널부러져 있고 두 남자가 쇼파에 느긋이 기대서 애플사 열혈 서포터즈로 빙의해 각자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붙들고 몰입중이다. 피곤도 하고 귀찮기도 하니 대충 글자를 읽어주는데 중점을 두다 보니 금새 듣는 재미가 없어진 아들이 먼저 아이패드를 찾고 그럼 아빠도 더 이상 책을 읽어줄 필요가 없으니까 아이폰을 가져다 각자의 볼거리에 심취하는 것이다. 스티브잡스가 보면 얼마나 흐뭇해할고... 아빤 참.. 쿨하다.
엄마의 눈에서 보면 아빠의 육아는 참 저질 육아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수준인데. 그래도 아빤 그 덕에 아들과 눈 높이를 맞추며 친구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같이 어지르고 놀고, 하기 싫은 건 같이 대충하고, 가끔 빼먹기도 하고 잊어먹기도 하니 인간적이고.
그래서 아들은 아빠가 차암 좋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아들! 엄마는 맨날 혼만 내고 규칙만 내세워서 미안해. 엄마도 관대해지도록 노력할게. 나중에 커서도 엄마랑 친구처럼 재미있게 지낼 수 있게끔 말야. 약소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