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알게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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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알게되는 것들

0 개 2,830 안진희
참으로 오랜만에 세 식구가 함께 제대로 된 레스토랑에 가서 근사한 브런치를 시켜먹는데, 딸려 나온 소스를 맛보던 신랑이 대뜸 묻는다. 
 
‘이거.. 사우전드 아일랜드 드레싱이가?’

헉.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도 알라나 싶은 모태 경상도 단순 토종이던 우리 신랑이 사우전드 아일랜드 드레싱을 콕 찝어 맞춘다. 8년여를 살다 보니 이제 신랑도 서양 음식 이름들이 입에 익나 보다. 제법이다. 
 
친정 엄마는 음식 솜씨가 좋아서 무슨 음식이든 맛깔나게 뚝딱 만들어주시곤 했다. 결혼하고 3일만에 뉴질랜드로 넘어온 터라 결혼 초에는 뻔질나게 엄마한테 국제 전화를 해대며 이 요리는 어찌하는지 저 요리는 어찌하는지 물어보곤 했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엄마의 대답은 ‘엉~ 설탕 조금, 간장 조금, 소금 조금 넣고 맛있게 해봐~’였다. 
 
도대체 조금이 얼만큼인지… 뭘 맨날 조금만 넣으래.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는 계량법이었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블로그가 활성화 되지 않았던 때인데다 이 곳의 인터넷 환경조차 무척이나 열악했기 때문에 조리법을 인터넷에서 찾아볼 엄두는 내지도 못했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치고 삼시세끼 밥 해먹는 게 어느덧 중요한 하루의 일과가 되어버린 8년 차 주부가 되고 나니 어느새 나도 대충대충 넣어서 뚝딱뚝딱 만들어도 그럴듯한 요리가 만들어지는 경지에 이르게 되더라. 살다 보니 다 되는 것을..
 
애를 놓기 전까지만 해도 5년여를 함께 살면서도 그렇게 신랑이 꼴보기 싫다고 느껴본 적이 크게 없을 정도로 나름 알콩달콩 살았었기 때문에 선배 엄마 분들이 종종 말씀하시는 ‘신랑 꼴보기 싫다’는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그런데 애를 놓고 키우다 보니 ‘신랑 꼴보기 싫다’의 그 ‘꼴’이 어떤 꼴인지를 잘 알겠더라. 남은 일도 하고 살림도 하고 밥도 하고 애도 보는데 일만 하는 신랑은 집에 오면 피곤하다면서 차려주는 밥 먹고는 바로 쇼파와 한 몸이 되어 TV만을 열심히 시청하신다. 나는 졸려 죽겠는데 안 자고 더 놀겠다는 아들놈을 갖은 노력을 다해 겨우 재워놓고 나와서 TV며 불이며 난로며 모든걸 그대로 다 켜놓은 채 퍼질러 자고 있는 남편을 볼 때면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그 ‘꼴’이 바로 이런 꼴이구나 싶어진다. 역시 연륜은 경험이 쌓이는 것이다.
 
한 산모가 애를 놓고는 바로 ‘설명서는?’ 하고 요구하던 TV 선전이 있었다. 정말이지 아들을 놓고는 그 설명서를 구하려고 뻔질나게 네이버를 드나들었다. 젖을 먹일 때에도, 우유를 먹일 때에도, 애가 아프거나, 발달 상황이 궁금하거나, 먹을 것, 입을 것, 그 모든 궁금증들이 있을 때 우리의 ‘네’ 선생님은 친절하고 다양한 답변을 쏟아 내주었다. 다른 애들은 이렇게 하면 된다는데, 다른 애들은 이쯤 되면 뭘 한다는데.. 넘치는 정보들을 검색하고 적용하면서 다른 애들처럼 안될 때면 무슨 문제가 있나 걱정하고 고민하고 스트레스 받고.. 그러던 시간들이 2년 넘게 쌓이고 나니 이젠 어느덧 검색의 도움 없이도 아들과 둘이 잘 해나간다. 
 
이걸 먹여도 되는 건가, 혹시 너무 조금 먹이고 있는 건 아닌가, 아니면 너무 많이 먹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정말이지 단순하지만 최대의 고민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이러다 혹시 굶어 죽는 건 아닐지, 먹고 어떻게 되는 건 아닌지 머리에 핏대를 세우며 다른 아이들은 무엇을 얼만큼씩 먹는지를 조사했었건만.. 이제는 아들과의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어느새 이만큼 키웠는지..
 
아들아. 너도 커나가면서 많은 것들을 알게 되고 배우게 되겠지? 그럴 때마다 먼저 그 길을 지나가고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선배님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겠니? 연륜이란 그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지식이라는걸 기억하고 자만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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