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봐 이거 봐.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엄청 무겁다 했어~’
쇼핑몰에 놀러 간 김에 마트에서 체중계를 하나 꺼내 들고 아들의 몸무게를 재봤더니 13kg가 나온다. 돌 이전에는 애가 잘 크고 있는 건지, 내가 잘 먹이고 있는 건지 노심 초사 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정확한 전자 저울로 아들의 몸무게를 10g 단위로 비교분석하고는 했었는데.. 이제는 체중계가 고장 났다는 핑계로 아들의 몸무게를 신경 쓰지 않은 게 벌써 몇 달째다. 평소에 새털같이 가볍다 느꼈던 같이 간 친구는 역시나 12kg가 나온다. 1kg 차이가 무섭다.
13kg인 우리 아들은 안고서 쇼핑몰도 한 바퀴 돌 수 있는데 쌀 10kg은 주차장에서 집까지 옮기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으니. 참으로 희한한 노릇이다.
아들 덕에 달아본 내 몸무게는 더 희한한 노릇이다. 어째 펑퍼짐하다 했다… 아들의 몸무게가 늘면서 내 몸무게도 덩달아 늘고 있는가 보다.
허긴, 내가 힘이 딸리면 아들을 안아야 할 때 제대로 안지 못해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 테니 알아서 자연스럽게 몸무게가 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은 정말이지 끊임없이 진화하고 적응이 빠른 존재인 것 같다.
비위가 약해서 밥 먹을 때 조금만 더러운 이야기를 들어도 숟가락을 못 들곤 했는데, 이젠 애가 싼 똥을 자세히 관찰하고 냄새까지 맞고도 밥을 두 공기는 너끈히 먹을 수 있다. 찝찝한걸 끔찍이도 싫어해서 손에 끈적한 게 묻으면 당장 가서 씻어야 직성이 풀리곤 했는데, 이젠 애가 뭘 먹다가 묻히거나 흘리면 손으로 얼른 닦고는 그 손을 씻는 것도 잊은 채 생활을 계속 할 수도 있다. 혼자서 깔끔 떤다고 신랑이나 다른 사람이 와서 설거지를 해두면 다시 다 꺼내서 뜨거운 물에 빡빡 문질러 씻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밥풀이 눌어 붙어 있어도 긁어 떼내고 밥을 퍼 담을 수 있을 정도로 대범해졌다. 매일 샤워를 안하고 머리를 안 감으면 큰일나는 줄 알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젠 3일은 기본이 된지 오래다. 같은 옷 연달아 두 번 입고 나가는 건 잘나가는 패셔니스트로서 기본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실내복과 외출복의 구분조차 없어졌고 같은 옷을 일주일 내내 입고도 잘 돌아다니는 패션테러리스트가 되어버렸다.
내 몸이 알아서 그렇게 현실에 적응하지 않았다면 아이를 키우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서 견디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매일 똥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데 그걸 다른 사람 누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묻히고 흘리는 게 애들의 일상인데 그걸 못 참으면 애를 따라다니면서 싸잡느라 서로 스트레스를 받을 테고, 애랑 놀아주느라 설거지 할 짬 내기도 힘든 판국에 누구라도 해주면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노릇이고, 느긋하게 세수할 짬도 잘 주지 않고 엄마 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는 아들을 떼놓고 혼자서 샤워를 한답시고 매일 눈물의 이산가족 상봉을 연출하는 것도 안쓰럽고, 하루에도 몇 벌씩 나오는 애 빨래 하기도 바쁜 와중에 나까지 매일 옷을 갈아입어 던질 순 없는 노릇이니 자연스레 적응해준 내 자신에 감사할 따름이다.
덕분에 우리 모자는 크게 스트레스 받는 일없이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눈 맞추며 지내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진화인가!
예전에 친정엄마가 ‘나도 너 놓기 전엔 안 그랬다.’라는 말씀을 한번씩 하시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곤 했는데, 정말이지 엄마라는 자리는 아름다운 진화를 계속해 나가는 자리인가보다. 아줌마로 변해버린 내 자신을 한탄하고 슬퍼하는 게 아니라 현실에 적응할 수 있는 상태로 되었으니 감사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들아. 엄마도 너 놓기 전엔.. 안 그랬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