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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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현실 사이

0 개 1,989 안진희
‘나도 가지고 놀고 싶은데..’ ‘그래? 그럼 자, 여기. 난 이제 다른걸 가지고 놀아야겠다.’ ‘고마워.’ ‘어머~ 우리 호비가 장난감을 나누어 주었네. 우리 호비 대단해!’ ‘미미도 고마워 하고 말했네. 잘했어 미미야.’

우리 아들이 즐겨보는 한 교육 DVD의 장면이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아이를 10명쯤 키워도 거뜬할 것 같다는 근본 없는 자신감이 마구마구 샘솟게 만드는 장면이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친구가 집에 놀러 온다. 신발을 벗기가 무섭게 아들의 장난감들을 이것저것 탐색한다. 아들은 그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친구 손이 닿는 것마다 자신의 소유를 강하게 주장하며 뺏어댄다. 친구라고 질소냐. 둘이서 한 장난감을 붙들고 서로 밀고 댕기고. 힘으로 안되면 소리 지르기로 맞서고. 엄마들이 나서서 교과서적 말투로 ‘사.이.좋.게’를 강조하며 타일러 보지만 보기 좋게 무시 당하기 일수다. 결국 장난감을 뺏어서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올려놓고 둘 다 못 가지게 해야 상황 종료. 모든 장난감들이 다 식탁위로 치워지고 나서야 집안에 평화가 찾아온다.

‘내가 먼저 타야지.’ ‘아니야, 내가 먼저 탈거야.’ ‘나도 타고 싶다구.’ ‘이런 이런. 미끄럼틀을 탈 때는 차례차례 순서를 지켜서 타야지. 순서를 지켜서 타면 더 재미있을 거야. 자, 우리 모두 차례차례 타볼까?’ ‘차례 차례!’ ‘순서를 지켜서 타니까 너무 재미있어요!’

DVD에 나오는 아이들은 말도 참 잘 듣는다.

반면 우리 집에선…

고만고만한 친구들 셋이 모이면 코딱지만한 미끄럼틀은 분쟁의 씨앗이 되기 일수다.

한 친구가 올라가서 핸들을 돌리고 있으면 어김없이 다른 친구가 비집고 올라가 내려올 차비를 하고. 아들은 언제나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며 내려오는 친구와의 무력 충돌을 서슴지 않는 역할을 맡는다. 엄마들은 ‘차.례.차.례.’를 강조하며 좋게 좋게 타일러보려 하지만 이미 뒤얽혀 서로 밀치고 울고 짜고. 역시나 결국엔 직접 나서서 떼어 놓아야 평화적으로 상황 종료.

‘호비야, 오늘은 마트에 가서 과자를 사지 않겠다고 엄마랑 약속할까?’ ‘네, 엄마. 사랑하는 엄마랑 약속. 오늘은 과자를 안 살 거에요!’ ‘양파도 사고.. 당근이랑..’ ‘어, 과자다! 와 맛있겠다!’ ‘어.. 호비야, 엄마랑 약속한 거 잊었니?’ ‘아, 맞다. 엄마랑 약속했지! 오늘은 과자를 안 살 거에요!’ ‘우리 호비 참 착하네~’

아.. 호비가 내 아들이었으면 좋겠다.

우리 모자가 마트에 가면..

일단은 유모차에 앉아서 잘 시작한다. 그러나 유모차에 잘 앉아서 버틸 수 있는 한계 시간이 극히 짧기 때문에 여유로운 쇼핑은 기대할 수 없다. 무조건 필요한 것을 향해 앞만 보고 돌진 또 돌진. 물론 중간 중간 흥미를 끌어줄 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한번 잃은 참을성은 거의 회복 불가이니까. 봉지에 직접 물건을 넣게도 해주고 신기한걸 만져보게도 해주지만 이제 겨우 야채 코너를 벗어났을 뿐. 갈 길은 아직 멀다. 과자를 보면 과자를 달라, 우유를 보면 우유를 달라. 빵을 보면 빵을 달라. 먹는 건 어찌 그리도 귀신같이 잘 찾아내는지. 다 뜯어서 하나씩 쥐어주고 나서야 겨우겨우 계산대까지 올 수 있으니.. 엄마는 전투 장보기를 하시는데 아들은 피크닉을 나와 룰루랄라 입이 즐겁고 눈이 즐겁네.

책에서 본대로 TV에서 본대로 엄마가 부드럽고 단호하게 ‘이렇게 하도록 하자~’하면 아이가 ‘네, 엄마.’하며 따라올 거라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소리지르며 아이를 혼내는 엄마들을 보며 무식하다 비난의 눈길을 주던 시절이 있었다.

직접 키워보니 현실에선 소리도 질러야 하더라. 공공장소라고 떼쓰는 걸 들어주면 더 큰 화를 불러오더라.

아들아. 우리도 서로 함께 힘을 모아 노력하면 언젠가는 호비랑 호비 엄마처럼 고상하게 지낼 수 있겠지? 그 날을 향해 오늘도 파이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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