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 짧은 만남, 긴 행복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375] 짧은 만남, 긴 행복

0 개 3,026 KoreaTimes
  금년(2008년) 설에 내 가족모임은 멋지게 끝이 났다. 이제 모두 제 자리로 돌아가 본래의 일상으로 살아간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듯....

  참 멀고도 먼 길을 한 걸음에 왔다가 내 생애에 지울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각인시켜놓고 돌아간 그들이 지금도 눈앞에서 투명하게 일렁인다.  

  두고 왔다고 해야하나? 버리고 왔다고 해야하나? 고국에 남겨진 작은딸 내외가 구정의 짧은 연휴를 놓치지 않고 떠나 온 가족들을 만나려고 여기까지 와서 한번도 가질 수 없었던 가족 모임을 만들어 주었다. 내 상상속에서 또는 꿈속에서 수없이 행해지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왔을때 그 자즈러질듯한 행복감을 어이 필설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마 내 여생에 두번 다시 있을 수 없는 금쪽같은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세상 살아가기 바쁜 오늘의 젊은이들! 외국에 나가 있는 손자의 빈 자리가 흠이어서 이 시대에 100% 가족모임이 이렇게나 힘든 것인가를 실감케 했다. 또한 구정을 아랑곳 않는 여기 사람은 여전히 일을 해야만 하기에 감질나게 밤에만 이루어지는 모임이기도 했다. 온 식구가 함께 들썩이다가 잠자리에 드는 밤이면 마치 내가 꿈을 꾸는 듯한 착각을 하면서 그들 생생한 목소리에 깜짝깜짝 놀래며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언제나 먼저 잠이 들곤 했다. 그 귀한 시간을 오래 같이 못하고 주책없이 눈꺼풀이 무거워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니 아쉽고 안타까웠다.

  동생 내외를 위하여 먹거리를 장만하느라 바쁘게 주방을 서성이는 큰 애. 정성보다는 조미료로 맛을 낸 상품화된 매식에 식상한 맞벌이 부부의 입맛에 집 밥이 그립다는 그들을 위해 얌챠다, 스팀보트다, 이것저것 별식을 계획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자그마한 텃밭에 주렁주렁 달린 고추며 깻잎, 방울토마토를 보면서 신기하듯 자랄때의 고향을 떠올리고 그것들을 탐하는 제부를 위해 시골 밥상을 차리기도 한다. 아삭이 고추를 따고 꽈리고추는 가루 묻혀 쪄서 양념장에 무치고 깡된장에 호박잎 쌈까지-- "와- 바로 이 맛이야 이맛-" 경상도 사나이의 투박한 사투리가 애교스럽고 정겨운 가운데 물장수 상으로 비워내는 그릇들을 보면서 얼마나 흐뭇했던지, 외국에 와서 버터에 빵이 주식인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무공해의 순수한 고향음식을 대하니 반갑고 묘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자매가 설거질을 한다고 정답게 움직이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먼 옛날로 타임머신을 타고 떠난다.(이십년 저 뒤편이다. 명절 때만 되면 설거질은 저희들이 한다고 저렇게 둘이서 주방을 꽉 채웠지 종알종알 수다도 떨고 깔깔거리면서) 그 때도 이 어미 마음이 따뜻했었는데 지금은 또 다른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 오르는 것은 나 떠나고 없는 빈 자리에도 그들이 남아서 화목하게 살아 줄  것이다는 확신 때문인 것 같다. 오직 그들 두 자매가 내가 이 세상에 나드리 왔던 흔적 아닌가.

  서로 멀리 있어 몇 번 만날 기회 밖에 없었던 사이임에도 서먹함이 없이 친근한게 보기에 좋았다. 그 짧은 시간에도 무엇인가 할 수있는 일들을 도울게 없을까 집 안팎을 돌아다니며 바지런을 떠는 손님사위. 와 보니 너무 멀어서 다시는 오기 힘들어 왜 이렇게 멀리 오셨느냐고 질책처럼 재롱을 부리다가 그러나 브라질보다는 가까워서 다행이라고 식구들을 웃겼다. 떠나기 전날 갈비 파티하자고 숯불 피워 대느라 수선을 떠는 몫도 그였다. 처형하고 죽이 잘 맞는 제부다. 그러나 황홀한 시간들은 오래 머물러 주지 않고 흘러만 갔다.

  이모 내외를 기쁘게 하려고 솜씨 자랑으로 케익을 굽는 손녀. 그들이 좋아하는 육포 말려 짐에 넣어 주는 큰 딸애. 그런 그림들을 카메라에 담듯 욕심 껏 머리 속에 입력하느라 나는 바빴다.

  여독도 풀리기 전에 십 년 전에 입었던 한복들을 떨쳐입고 어느 작은 비치에서 바람에 치마폭을 날리며 가족사신을 찍던 일들이며 그 사진을 보고 삼모녀가 엄청나게 달라진 모습에 한결같이 경악을 했다. 그게 바로 세월에게 물어 볼 탓이었건만.... 사진이야 어떻든 모두의 건강한 표정이 담긴 함께 한 자리였으니 그야말로 값지고 중요할 뿐이다.

  그런 일들이 벌써 저 멀리 가 버리고 추억이라는 이름만 남았다. 그들이 떠난 사실을 매끈한 체념으로 맞이할 수 있는 지혜도 이젠 생겨났음인가. 공항에서의 이별이 서러워도 굳센척 눈물을 감추어야만 하는 이민 엄마!

  삶이 지치도록 피곤할 때 비장의 카드처럼 꺼내 볼 수 있는 추억이 생겼다는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금년 한 해는 그리움의 갈증을 해소했으니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고맙다 애들아 ----

서울 일기

댓글 0 | 조회 3,264 | 2009.10.27
9월 00일"여보시요 안녕하슈?" "누구?" 어_엉 내가 먼저 하려던 참인데 ...어쩌구.." 그녀 특유의 멘트가 길다. "긴 얘긴 만나서 하자구 이여자야" "어… 더보기

그 남자의 6. 25

댓글 0 | 조회 3,262 | 2011.06.28
시니어클럽 ‘무지개’에 나오시는 분들 가운데 남자 세 분이 참전용사였음을 이번에 알게 되면서 그 타고나신 천운(天運)이 새삼스럽게 놀랍고 부러웠다. 6. 25가 … 더보기

봄이 오는 소리

댓글 1 | 조회 3,182 | 2008.09.24
연일 쏟아지는 비속에서 그토록 안달하며 재촉을 했던가? 연두빛 봄이 찢긴 햇살사이를 비집고 성큼 성큼 한달음으로 다가들고 있다. 양지녘에 앉은뱅이 보랏빛 작은꽃이… 더보기

나의 기쁨조 사람들

댓글 0 | 조회 3,157 | 2008.12.23
이 해도 마지막 달,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살다보면 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여러 가지 기복의 감정들을 경험하게 되지만 될… 더보기

"DOULOS"의 사람들

댓글 0 | 조회 3,129 | 2008.08.13
그 날은 왜 그리도 비바람이 사나웠는지? 춥고 음산했다. 그 폭풍우 속을 해상에 나간다는게 잠시지만 고생을 각오해야겠기에 두툼한 옷으로 무장을 했다. 이 년이라는… 더보기

사람 구경

댓글 0 | 조회 3,123 | 2009.06.23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아름다운 합창의 향연이 한바탕 끝난 한나절, 유리창에 부디치는 소슬한 바람소리뿐. 인적없는 절간같이 고요만이 남는다. 이럴때 아늑하고 마냥 … 더보기

검은 진주 가족의 아름다운 삶

댓글 0 | 조회 3,113 | 2009.01.28
딸 다섯에 막내로 아들 하나, 그 아들을 얻으려고 줄줄이 딸을 낳았을까? 여덟식구 대 가족이 한줄 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앉을 자리가 없는 … 더보기

희망을 주는 사람들

댓글 0 | 조회 3,065 | 2009.03.24
이른아침 산책길에서 만난 이름모를 진보라색 작은 꽃무더기, 그 보라색 꽃을 보면서 문득 가을이 느껴졌다. 그지없이 센치하고 공허해지는 가을을.... 그리고보니 피… 더보기

2010년 11월에는...

댓글 0 | 조회 3,058 | 2010.12.22
수도 없이 바뀌고 반복되는 세월속에서. 내 인생에 십일월만큼 특별한 달은 또다시 없는 것 같다. 눈부시게 흰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행복하게 웃던 십일월 어느날… 더보기

마음밭에 심기운 꽃

댓글 0 | 조회 3,047 | 2010.02.23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 동거한다는 부산의 어느 언덕바지, 일제 강점기 때 묘소였던 자리라던가, 그런 그대로 옹기 종기 집들이 생기고 동네가 되었다. 작은 뜰 한 귀… 더보기

현재 [375] 짧은 만남, 긴 행복

댓글 0 | 조회 3,027 | 2008.02.26
금년(2008년) 설에 내 가족모임은 멋지게 끝이 났다. 이제 모두 제 자리로 돌아가 본래의 일상으로 살아간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듯.... 참 멀고도 먼 길… 더보기

고국의 가을 속으로 달리다(Ⅱ)

댓글 0 | 조회 3,010 | 2010.06.22
진도대교 앞. 자그마한 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목포, 강진, 두륜산을 거쳐 숨가쁘게 달려온 하루였다. 예향의 도시답게 밤바람에 실려 온 묵향이 창 틈으로 스며드는… 더보기

[379] 이 가을에는.....

댓글 0 | 조회 2,994 | 2008.04.23
강산이 변한다는 십 년 세월에도 나를 잊지 않고 찾아 주는 고국의 친구들, "지금 꽃철이 한참인데 놀러 오지 않고 거기서 뭘 하느냐?"는 화사한 유혹이 번거롭다 … 더보기

쌀밥에 뉘

댓글 0 | 조회 2,990 | 2008.10.30
주차장 옆, 시커먼 고목나무 팔 벌린 가쟁이에 장난치듯 길다란 밧줄을 던지고 있는 노인, 사람 키를 훨씬 넘는 위치에 여러 차례 던져 보지만 잘 걸리지 않는다. … 더보기

나눔의 기쁨

댓글 0 | 조회 2,989 | 2011.04.28
큼직한 상자에 여러 옷가지들과. 먹을 것이 담긴 봉지들이며. 병들을 차곡차곡 담고. 귀퉁이 빈 공간에는. 치약이며. 비누. 작은 일용품들을 빈틈없이 채워간다. 일… 더보기

[299] 사랑하는 나의 진정한 친구 K에게

댓글 0 | 조회 2,972 | 2005.09.28
해도 마지막 저무는 달이 다가왔군요. 달랑 한장 남은 카레다 앞에서 선뜻 그 마지막 한 장을넘기기가 아쉬워 마냥 그대로 두어 보지만 결국 시간은 흘러가고 아무 의… 더보기

[327] 캔노인과 인삼차

댓글 0 | 조회 2,958 | 2006.02.27
휘휘익~ 가느다랗게 금속성으로 울리는 휘파람을 불며 뒷걸음으로 집에서 나오는 캔 노인, 그리고 짤랑짤랑 방울소리를 내며 종종걸음으로 따라 나오는 회색 고양이. 언… 더보기

[314] 새 우 깡

댓글 0 | 조회 2,920 | 2005.09.28
새우 먹겠다고 바쁘게 달려온 세시간여의 여행, 그게 목적은 아니었지만 서울에서 모처럼 여행온 딸애를 위한 관광코스 중에 하나였기에 안내를 맡은 큰사위가 점심때를 … 더보기

꿈나무 동산

댓글 0 | 조회 2,916 | 2009.05.26
거기는 활기차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어린 꿈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찬 아름다운 꽃동산이었다. 영어가 아닌 우리말로 맘껏 소리치고 노해라고 공부하면서 조국의 문화를 익… 더보기

[383] 일탈(逸脫)의 쾌감

댓글 0 | 조회 2,907 | 2008.06.25
길고 긴 여름 가뭄에 늦더위가 기승이더니 모처럼 귀한 비가 밤새 제법 많이 내린 어느 날이다. 메말랐던 세상이 한껏 물끼를 머금고 생동감으로 넘치는데 그쳤는가 했… 더보기

[347] 나 홀로 밥상

댓글 0 | 조회 2,904 | 2006.12.22
나를 먼저 사랑해야 다른 사람도 사랑하게 된다는데 나는 사랑이 없는 사람일까? 살아가는데 먹는 일만큼 중요한게 없는데 왜 나는 그 일에 그리 소홀하고 성의가 없을… 더보기

[349] 고국에서 가을 단풍이…

댓글 0 | 조회 2,896 | 2007.01.30
해가 바뀌니 내가 원치 않아도 어김없이 또 나이 하나를 보탠다. “형님은 이제 ㅇ십대네요. 나는 아직 ㅇ십대인데…” 세살 아래인 흉허물없는 사이의 어떤 자매님이 … 더보기

주부(主婦) 실종시대

댓글 0 | 조회 2,876 | 2014.04.24
정신없이 흐려지는 시각을 거역이라도 하듯. 사물을 보고 느끼는 진정성은 더더욱 뚜렷해 지고 있으니 이것이 늙어가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리라. 늘상 보던 주변의 물… 더보기

[288] 영정 사진을 찍으며

댓글 0 | 조회 2,875 | 2005.09.28
아직은 아니에요. 10년쯤 후에나 찍으세요” 누군가가 던진 달콤한 위로의 말에 귀에 솔깃했던 순간을 생각하며 씁쓸하게 웃어본다. 어느 포토 샵에서 영정 사진을 찍… 더보기

[371] 예술처럼 늙고 싶다

댓글 0 | 조회 2,868 | 2007.12.20
"이제 늙고 볼품없어 제대로 보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옷인들 신경 써서 입으면 뭘하나 츄리닝이나 걸치고 헐렁하게 살아야지" 그 누구보다 자기 관리에 충실해서 한결같…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