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 나누며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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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 나누며 사는 사람들

0 개 2,580 KoreaTimes
  생각보다 무겁고 두툼한 그것을 건네 받으며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앞섰다. "뭣이 이리도 많을꼬?" 금방 자를 것을 깜박하고 이른 아침에 흠뻑 물을 주어 젖어서 무거운거라는 말을 들으며 더욱 미안한 마음이 겹쳤다. 비닐백 안을 드려다 보니 펑 젖은 신문지에 쌓인 부춧잎이 너무도 싱싱하고 푸르게 내 눈을 자극했다. 아침마다 부지런히 물 주고 정성으로 다독여 키운 것을 늘상 덕만 보는 나 자신이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그져 재미로 심은 몇 덩굴에서 딴 가시 따가운 오이며 풋풋한 야채들을 지난해에도, 또 저 지난해에도 어김없이 받아만 먹었다. 햇장 담가 다렸다고 발그스름한 간장 퍼 날라다 준지도 엊그제인데... "번번히 미안하구만" 송구스러운 내 인삿말 뒤에 따라 오는 말. "제가 꼭 드리고 싶은 분에게만 드린다는거 아시쟎아요" 헤프게 아무에게나 나누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더더욱 고맙고 감사하며 그 정겨움이 가슴 속을 파고들어 오래도록 훈훈한 감동 속에 나를 머물게 한다.

  여기는 내가 태어나서 긴 세월 살아온 그런 자리가 아니쟎은가. 낯선 이역에서 새로이 뿌리내리며 서먹하게 만난 서로이기에 뜨겁게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촉촉해진다.

  가끔씩 내 곁에 다가와 뭣인가 꽁꽁 싸서 묶은 것을 남이 볼세라 얼른 내 가방 속으로 밀어 넣으며 눈한번 찔끔 감아 암시를 보내는 형님이 계시다. 먹성 변변찮은 내게 언니처럼 챙겨 주시는 자상함을 오래 전에 알아버린터다. 나는 그 때마다 떠오르는 그림 하나가 있어 가슴이 울렁거린다. 그 옛날 피난살이를 하던 때 우리는 외할머니의 친정 동네에서 머물렀었다. 할머니가 오실 때마다 행주치마 속에 감춰 온 호박고자리며 말린 고구마 등을 받아 먹던 그 맛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때의 외할머니처럼 끈끈한 피붙이의 정 같은 것을 그 형님에게서 늘 느껴 열 네살 소녀로 돌아가는 착각을 하곤 한다.

  누구에게나 후덕한 친정어머니가 되셨던 분이 또 계시다. 텃밭에 어우러진 미나리깡으로 장화신고 저벅저벅 들어가시던 그 형님. 낫으로 휘어쳐 베어 들고 나온 미나리 한 봇따리, 그 위에 토마토며 풋고추, 상추 등을 한 줌씩 얹고 정원 고목에서 수확한 귀한 마카다미아까지, 이젠 심심하신데 친구해 드리지 못해 늘 상 죄송스럽다. 내게 끊임없는 사랑으로 기도해 주시고 가까이 해 주시는 형님들, 세월이 뭐 길래 예전처럼 몸놀림이 편치 않으셔 안타까울 뿐이다.

  "시간 되시면 가계에 잠깐 들러 주세요. 항상 건강하십시요" 지방에서 볼일 보러 올라 올 때마다 집 앞 가까운 샵에다 맛있게 구운 빵이며 수박 같은걸 맡겨 놓고 가는 젊은이 전화 걸어 그 말 한마디로 내 시간을 존중해서 만남의 즐거움까지 뒤로 미루고 마음만 전하고 떠는 사람이었다. 그도 이젠 한국으로 돌아가서 따뜻한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오직 진심한 마음 하나뿐 변변히 나눌 것도 없는 나를 이렇듯 사랑으로 감싸 주시는 분들, 내 삶을 지켜보며 응원 해 주는 그 분들 덕에 외로움을 털어 내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거라고 믿는다.

  전화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아가는 이야기 진솔하게 나누는 팔순 고령의 형님은 제주도에 여행 다녀오시며 치마 입은 어린 곰 인형을 내 손에 쥐어 주신다. 어린애 같은 내 취향을 너무도 잘 읽어 내신 쎈스 최고의 분이시다.

  추운 밤에 이불 잘 덮고 자라는 친구며, 미국의 딸이 보내 온 것이며 커피봉지 전해주는 친구, 때 거르지 말고 맛있는 것 해 먹으라며 손잡이가 야무진 냄비를 보내 주신 형님도 그리고 한국 나드리에 국제전화 걸어 내 허리 사이즈며 좋아하는 컬러 물어 바지 사 들고 온 아우님까지, 따뜻한 마음, 마음들을 진정으로 나눌 줄 아는 복받은 분들, 그 분들은 나누면서 행복해 지는 진리를 진작부터 알고 있는 훌륭한 사람들이다.

  내 인생에 파이팅을 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오늘도 어제같이 내일도 오늘같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변하지 않고 살아가도록 노력할 것이다. 보답으로....

  오늘의 충만한 이 행복감을 그 분들 모두와 함께 나누어 갖고 싶다.

  이제 타이트한 아파트 촌에서의 각박함을 털어 버리고 열린 대지, 시골 농부의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 교민들의 화합도 단단하게 다져질 것이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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