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 서울내기 전원에 살다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358] 서울내기 전원에 살다

0 개 2,497 KoreaTimes
  숨가쁘게 달리던 차가 여주 "세종대왕 능" 부근에서 한숨 돌리듯 속도를 늦춘다. 엄청 조용하고 아늑했을 명당이련만 지금은 개발의 붐을 타고 근처까지 파헤쳐져 어수선했다. 그 능을 뒤로 하고  한참을 달려가니 낡고 볼품없는 기와집들이 금방이라도 쓸어질 듯 위태롭고 을씨년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도시로 떠난 사람들이 버리고 간 빈 집들인지?

  마을을 벗어나 못자리 논들이 반듯반듯하게 자리잡은 외줄 흙 길을 따라 얼마간 더 들어가니 낮은 산이 길을 가로 막듯 버티어 있고 그 산을 병풍처럼 산뜻한 새 양옥집 하나가 당당하지만 외롭게 홀로 서 있다. 바로 그 집인가 보다. 마당 안으로 차가 들어서는 순간 어디서 뛰쳐나왔는지 흰 강아지 한 마리가 캥캥 짖어 대는데 서울 개처럼 그악스럽지 않아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을 오히려 반기는 것처럼 싱거워 귀엽기만 했다. 개도 시골 인심을 닮는 걸까? 무겁게 닫힌 현관문이 열리면서 뛰어나오는 사촌 동생과 눈 마주칠 사이도 없이 찐하게 뉴질랜드 식으로 끌어안은 인사를 하고 보니 그가 참 많이도 낯설었다. 헐렁한 개량한복 차림에 이마에 굵게 패인 주름이며 반백의 중노인이 된 얼굴의 남자.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주일 미사를 보고 방금 도착해서 옷을 갈아 입는 중이었다며 서둘러 일상복으로 갈아 입은 옷은 더더욱 낯선 농부 차림이었다. 긴 장화까지 신고 무엇을 하려는지 바쁘게 서두르는 모습이 영낙 없는 농사꾼을 닮아 있다. 처음 밟아 보는 흙냄새에 술에 취한 듯 허둥대 보지만 아직도 뭐가 뭔지 땅과 친해지기엔 멀었단다.  꾀꼬리처럼 예쁜 목소리로 노래 잘하는, 새내기 농촌 아낙이 된 동생댁의 농산물 비싸다는 말 못하겠다는 엄살로 한몫을 거든다.

  정년 퇴직을 하고 낯선 시골 살림을 시작한 그들, 넓직 넓직 한 방이며 재미있는 다락방까지.... 거실문 하나를 사이에 이 쪽은 어른들이. 저 쪽은 딸 내외가 아이들과 같이 더불어 사는 이상형의 사대(四代)가정이다. 시집 갈 때도 보지 못한 조카딸이 벌써 아이들 둘이나 낳았다는데 마침 시댁 어른들 뵈러 서울 나드리를 가고 없어서 만나 보지 못한 게 못 내 섭섭했다. 넓은 흙 마당에서 마음놓고 뛰노는 어린것들의 그림이 한 폭의 풍경화로 눈앞에 그려진다. 앞마당에 올망졸망 알을 품었을 감자 잎이 미풍에 나풀거리고 고구마도 몇 두렁 심어 봤다나, 연두 빛으로 새로움이 넘실대는 고국 산천의 봄나물에 게걸들린 먼 나라에서 온 이 누나를 위해 뒷동산으로 뛰어올라 두릅을 따오며 이런 맛에 여기 산다고 자랑이 한창이다. 쌉싸름하고 향긋한 풋나물 맛에 잊어 가던 옛 입맛이 되살아 난다. 어서 많이 먹으라고 옆에서 챙겨 주시는 팔순의 숙모님이 무척이나 어른이신 줄 알았는데 지금은 나와 같이 있음에 세월의 무상함을 깨닫는다. 이 끈끈한 혈육의 정을 몇 년만에 느껴 보는 것일까? 울컥 가슴이 답답해진다.

  땅과 친해지는 틈틈이 목공예로 배워 거실의 가구로 예쁘게 다듬어 배치해 놓고 그 곳이 도자기의 고을 가까운 곳이 아니랄까 봐 흙도 빚어 손수 구웠다며 도공의 흉내를 낸 소품들을 자랑하는데 제법 그럴듯했다. 새의 형상을 구상해 만들었다는 작가다운 설명까지 곁 드리며 귀여운 연적 하나를 내 손에 쥐여 준다. "이걸 보시면서 이 동생을 생각해 주시라구요" 젊었을 때의 익살은 여전히 변함이 없어 반가웠다.

  아무데도 거친데 없이 바로 내려 쪼이는 양지녁에 조르륵 놓인 장독대, 바람에 펄럭이는 빨래조차 윤기 나게 보이는 것은 풀 나무가 신선하게 뿜어내는 파란 물이 들어서일까?

  바뀐 환경에서 잘 적응해 가려고 노력하는 서울내기를, 아파트에서는 상상도 못할 편안함과 넉넉함이 물어나 심성이 푸근하고 따뜻해져 가는 것 같다. 빨간 흙이 그대로 남아 있는 빈터는 도자기 굽는 가마터로 남겨 두었다며 그가 진짜 꿈꾸는 미래는 멋진 도공이 아닐까?

  언제인가 다시 찾아올 때는, 그 가마에서 나도 손수 빚은 흙을 구워 볼 수 있을런지...
  마당가에 지천으로 깔린 나물을 뜯는다고 풀섶에 나앉은 내 사랑하는 딸 내외의 등으로 오월의 햇살이 유난히 눈부시다. 자연을 탐닉하는 젊은 부부의 다정하고 여유로운 모처럼의 휴식이 아름다운 그림처럼 내 보기에 좋다. 나의 빈 자리를 대신해 외가와 친해져 가는 그들이 늘 고맙고 대견하다.

  이 엄마를 위해 황금같은 주말에 여기까지 달려와 준 그들과 오늘의 전원일기는 오래 오래 내 기억 속에 담아두리라.

[361] 바보가 되어가는 이야기 하나

댓글 0 | 조회 2,571 | 2007.07.23
"여기 우산 떨어졌는데요" 등 뒤에서 들려 오는 말에 흘낏 돌아보니 어떤 젊은이가 내 우산을 집어서 작은 돌담에 얌전히 걸쳐 놓고 간다.(어머나 큰일 날 뻔 했네… 더보기

[332] 9988ㆍ1234

댓글 0 | 조회 2,561 | 2006.05.08
적당히 잘쓰면 좋지만 잘못쓰면 남에게 혐오감을 주는게 향수(香水)라고 늘 생각해 왔다. “아우님 내가 향수를 좀 썼는데 괜찮은지 모르겠네요.” 너무 진한 향수냄새… 더보기

[326] 섣달 그믐날

댓글 0 | 조회 2,549 | 2006.02.13
어제까지만 해도 구름이 오가는 변덕날씨에 바람마져 사납더니……, 오늘은 미동도 하지 않는 엷은 레이스의 창문 커텐이 답답할 정도로 무덥다. 볕은 따가워도 그늘에만… 더보기

북유럽 여행기 (스웨덴)편

댓글 0 | 조회 2,546 | 2013.01.31
실야라인(silja line) 크루즈의 선상 뷔페식사 분위기가 더 없이 푸근하고 즐거워 피곤한 여정에 달콤한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낯선 음식을 맘껏 두루 맛보는… 더보기

Happy new year

댓글 0 | 조회 2,521 | 2012.01.31
2012년. 첫날 새 아침. 현관문을 열고 나서려는데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 “happy new year_” 언제나처… 더보기

[317] 솔잎 향기 그윽한 추석을 맞다

댓글 0 | 조회 2,518 | 2005.09.28
바람 몹씨 사납던 지난 주말, 추석을 이틀 앞둔 날이다. 그 바람 속에서 악전고투로 공을 날려야만 하는 막힌 데 없는 골프장. 거의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그럭… 더보기

[320] 그 비취에 가면.....

댓글 0 | 조회 2,515 | 2005.11.11
처음에 그 곳을 찾았을 땐 단순히 집에서 가깝다는 지리적인것 말고 달리 갈만한 그럴 듯한 곳을 찾지 못해서였는데 이제는 정이 들대로 들어서 헤어질 수 없는 친구처… 더보기

빨강 구두 아줌마

댓글 0 | 조회 2,512 | 2017.07.25
밖은 비 바람이 사납다. 오늘같은 날, 밖에 볼 일이 없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둠침침한 집안에서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옷을 두둑히 입고 앉아 있는데 있을수록… 더보기

[322] 쌍둥이 아빠 고마워요

댓글 0 | 조회 2,509 | 2005.12.12
지치도록 피곤하게 운동하고 돌아와 막 현관문에 키를 꽂는 순간이다. 마치 내가 돌아왔음을 보고나 있듯이 안에서 요란스럽게 전화벨이 울려댄다. 누가 그리 때를 잘 … 더보기

현재 [358] 서울내기 전원에 살다

댓글 0 | 조회 2,498 | 2007.06.13
숨가쁘게 달리던 차가 여주 "세종대왕 능" 부근에서 한숨 돌리듯 속도를 늦춘다. 엄청 조용하고 아늑했을 명당이련만 지금은 개발의 붐을 타고 근처까지 파헤쳐져 어수… 더보기

[329] 천사들의 합창

댓글 0 | 조회 2,498 | 2006.03.27
어제 비맞은 골프가방이 아직도 포켓마다 입을 벌리고 말려 달라고 보채고 있는데 오늘 아침도 여전히 비가 오락가락 검고 짙은 구름이 해를 삼켜 버렸다. 반나절을 하… 더보기

마음이 부자이고 싶다

댓글 0 | 조회 2,498 | 2016.07.28
알람소리에 잠이 깼다. 이불속에서 오시시 한기가 느껴진다. 히터와 침대매트에 스윗치를 올리고 바른자세로 다시 눕는다. 몸이 따뜻해져오면서 살폿이 다시 잠이든다 달… 더보기

[325] 청계천을 가보고 싶다

댓글 0 | 조회 2,476 | 2006.01.31
해가 바뀌고 나니까 마음도 바뀌나? 그럭저럭 잘 견디던 향수병이 갑자기 도지나보다. 고국이 그립다. 나 없는 사이 많이도 달라진 서울, 청계천이 다시 살아났단다.… 더보기

[313] 바람이 흘리고 간 티끌이겠지…

댓글 0 | 조회 2,473 | 2005.09.28
친정 어머니가 아마 지금의 내 나이때쯤이라고 생각된다. 어느 날인가, 우리집엘 오셨는데 핸드백 안에서 불쑥 사진 한 장을 꺼내 내게 건네셨다. 모서리가 닳고 색도… 더보기

반갑잖은 손님이 저기 또 오시네

댓글 0 | 조회 2,459 | 2015.12.22
집 앞 길가에 나가서 빨간 신호등을 마냥 켜 둘까? 현관문을 지킬까? 아니면 방 문이라도 잠가 버리면 그 손님은 오지 않을는지?....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세월… 더보기

[294] 베티의 웃음소리

댓글 0 | 조회 2,452 | 2005.09.28
무슨 꽃일까? 부스럼 앓는 나무처럼 꺼칠한 고목나무에서 바람결에 떨어져 내린 손톱같이 가느다란 꽃잎이 온통 바닥에 하얗다. 소복하게 차를 뒤덮은 어느날 아침 긴 … 더보기

그날, 버니(Burnie)에서

댓글 0 | 조회 2,448 | 2012.03.28
크루즈 중에 배에서 내리는 날은 언제나 바쁘다. ‘타스마니아’는 ‘오스트레일리아’ 땅이긴 하지만 육지 밑으로 외떨어진 … 더보기

미나리, 미나리 강회

댓글 1 | 조회 2,432 | 2012.09.25
지겹도록 비가 내려 지루하기만 하던 한 겨울. 그래도 그 비 덕분일까? 통통하게 살이 오른 원 줄기에 마냥 나긋하게 자란 미나리를 만나니 반갑다. 그 것을 보는 … 더보기

[328] 잘못된 친절

댓글 0 | 조회 2,427 | 2006.03.14
“아뿔사 그랬었구나”밤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문득 무언가를 깨닫고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옆의 누군가에게 망신이라도 당한 듯 얼굴이 화끈 달아 올랐다.(바보 못난이… 더보기

‘세익스피어 파크’에서

댓글 0 | 조회 2,413 | 2015.04.30
이민 보따리를 풀고 한참 지나서 처음 나드리 가 본 곳이 ‘쉑스피어 팍’이었다. 벌써 십년도 더 지났지만 처음 느낀 인상 때문인지 갈 때마다 기분이 좋다. 내가 … 더보기

꽁트 한마당(공선생의 하루)

댓글 0 | 조회 2,398 | 2014.03.26
베란다에 들어오는 햇볕이 눈이 시리도록 밝고 화창한 날이었다. 할 일 없는 ‘공명수’씨는 흔들 의자에 기대앉아 가볍게 눈을 감았다. “공선생님은 아직도 젊으셔요 … 더보기

부녀 별곡 (父女 別曲)

댓글 0 | 조회 2,358 | 2016.03.24
이제 여기 여름도 한국처럼 덥다고 느끼며 무더위 속에서 한 여름을 보냈다.뙤약볕에 불화로처럼 달아오른 어느 일요일 오후. 서늘한 바람 그늘이 그리워 고목으로 울창… 더보기

행복의 유람선, 크루즈 여행

댓글 0 | 조회 2,339 | 2019.04.23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머리속에 지워지지 않는 TV 영상이 하나있다.‘사랑의 유람선’...그 시간을 맞추려고 저녁시간을 서둘러야 했다. 물 묻은 손을 털고 TV … 더보기

그러시면 안돼죠

댓글 0 | 조회 2,328 | 2012.04.26
“엄마, 이모한테 전화 좀 드려보세요.” 언제나 장난끼 넘치는 응석조로 전화 해 오던 한국의 딸아이 목소리가 오늘은 영 아니었다. (무슨일이… 더보기

살다보니 이런일이...

댓글 0 | 조회 2,282 | 2022.01.26
온종일 정신없이 일을 해 냈으니 몸이 젖은 솜뭉치처럼 무거웠다. 오랫동안 쓰지않던 근육들이 놀랐는지 뻐근하고 아팠다.여름날 긴 긴 하루가 번개처럼 지나갔다.긴장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