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 고국에서 가을 단풍이…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349] 고국에서 가을 단풍이…

0 개 2,919 KoreaTimes
  해가 바뀌니 내가 원치 않아도 어김없이 또 나이 하나를 보탠다. “형님은 이제 ㅇ십대네요. 나는 아직 ㅇ십대인데…” 세살 아래인 흉허물없는 사이의 어떤 자매님이 짠한 메세지를 띄운게 엊그제만 같은데 벌써 새해의 카렌다를 바꿔 달았다. 서울에서는 육 백년만에 맞는 황금돼지해라나. 덕담이 적힌 카드와 편지들이 날아오고. 이제 나에게 좋은 일이란 그저 매일매일이 오늘처럼 건강하기만을 바랄 뿐 그 이상의 아무 것도 바랄 수 없는 그런 나이가 아닌가.

  편지를 펼쳐드는 순간 우수수 무언가가 발등으로 떨어지는 것이 있었다. 아기손같은 귀여운 빨간 단풍잎들. 지난 가을을 알리고 처연하게 떨어져 사람들 발밑에 채여 사라져 버릴 것들이 용케 행운을 얻어 여기까지 멀리로 날아온 고국의 단풍잎을 보면서 잠시 코끝이 시큰해졌다. 잎이 터서 자라고 파아란 청춘을 지나서 붉게 늙어 한세상 보내고 낙엽되어 떨어진 단풍잎. 그것들을 보며 마치 내 일생을 보는 것같아 마음이 착잡했다.

  “엄마 특별한 생일 그냥 넘기면 안되요. 친구들 모시고 멋진 잔치하세요.”선뜻 달려오지 못하고 안타까움, 송구스러워하며 정성으로 보내 온 값진 돈.(내 인생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이 나이까지 내가 뭘 했다고?) 불황에 벌기 어려운 자식의 귀한 돈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아 어느 ㅇㅇ에 기부해 버리고 입 싹 씻는 것도 어느 일면 내 나이를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은 조용한 오기가 포함되었으리라.

  “오늘 제게 무슨 일이 생길지 저는 모릅니다.”로 시작되는 하느님께 맡기는 기도문이 내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보내준 분의 마음에 감동을 받으며 아직은 시시한 나이타령이나 하기보다는 시월이 한창인 설악산 단풍이나 떠올려 보는 게 나을 것같다. 내 고국 나드리는 단풍철 시월에 할꺼라고 늘 그렇게 생각해 왔는데 정곡을 찌른 데레사님의 마음 고맙기만 하다.

  온 산이 불빛으로 환하게 물드는 설악의 아름다운 가을단풍. 지치도록 사시사철 꽃 속에 묻혀 살아도 내 조국의 그것은 기억속에서 영원히 살아 꿈틀거리기 때문에 잊을 수가 없다. 그 유명한 가을 설악산을 말로만 듣다가 오 십대 첫나드리 때 접했기에 그 때의 흥분이 아직도 식지 않아 가을철만 되면 작은 동요가 일곤 하나보다. 유난스레 잘생긴 고운 빛의 잎새를 찾아 흐르는 계곡물에 내 염원을 담아 조용히 흘려 보내며 그 황홀감에 도취되어 발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빨갛고 노랗고 진하고 연하고 형언할 수 없을만치 다양한 컬러의 조화로움은 그 어느 꽃동산보다 황홀하고 경이로웠다. 이글 이글 마치 불길속을 걷는 것처럼 가다보면 내가 단풍이 되고 단풍이 내가 된 것처럼 홀려 버린다. 투명하게 나풀거리는 붉은 잎들의 군무. 땅에 떨어져 깔린 잎새들은 밟기조차 안쓰럽게 곱디 고운 융단으로 철퍽 주저앉아 질펀하게 놀다 가기를 유혹하기도 한다. 그 오묘한 하느님의 작품을 내 짧은 필력으로 어찌 그려낸단 말인가. 그동안 접고 살았던 고국의 향수를 마냥 불러 일으키는 단풍잎들. 문득 데레사님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앗차!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얼굴모습을 확연히 찾아 낼 수가 없어 미안스럽고 안타깝다. 아주 짧은시간 만났다 헤어진 여인. 그리고 다시 만나지 못한 세월이 얼마인가. 사랑을 직접 실천으로 옮기는 마음씨 예쁜 그 분을 오래 오래 머리속에 각인시켜 두지 못한 내가 부끄럽고 민망스럽다.

  단풍잎을 오래 들고 드려다 보니 사물사물 시야로 들어오는 그림 하나가 또 떠오른다. 양손에 손뜨게로 뜬 장갑을 끼고 열 손가락을 부채살처럼 좍-펴서 든 내 아이의 귀여운 손이 그 단풍잎 위에 오버랩으로 보인다. 앙징스럽게 작은 손에 장갑을 끼워주면 아이는 늘 그런 모습으로 좋아하곤 했다. 귀찮아서 벗어 버리는 아이들이 많은데 그 아이는 유난히 장갑을 좋아해 심심풀이 내 뜨게질을 신나게 부추기곤 했었다. 이제 아이는 그 때의 내 나이보다 더 많은 중년이 되었고 나는 할머니가 되었다.

  별 것 아닌 지나간 일상들이 문득 견딜 수 없는 추억의 정서로 떠오르는 것을 보면 나도 어쩔 수 없이 늙었음에 틀림없다.
  “주님께서 원하시거나 허락하시는 모든 것을 어려움 중에 참으며 온전히 순종하게 하소서”
    하느님께 맡기는 기도의 끝자락이다. 보내신 데레사님의 뜻을 마음깊이 새기며 열정으로 붉은 단풍을 닮아 열심히 한 해를 살련다.

[363] 제니의 지팡이

댓글 0 | 조회 2,803 | 2007.08.28
"처음에는 네 발로 기어 살다가 두 발로 서고 나중에는 세 발로 걷는 동물 이름이 뭐게?" 어렸을때 수수께끼로 재미있어 했던 놀이였다. 허지만 철없던 시절 사람이… 더보기

[312] 민들레 김치

댓글 0 | 조회 2,815 | 2005.09.28
비가 자주 내리더니 말라 붙었던 잔디가 기승을 부리듯 살아나고 온갖 잡초들이 서로 다투어 키자랑을 하듯 쑥쑥 모습을 드러낸다. 거기 빠질세라 민들레도 한 몫끼어 … 더보기

그 벗꽃 길, 그리움이 있다

댓글 0 | 조회 2,822 | 2011.10.27
엊그제만 해도 죽은듯이 다소곳하던 헐벗은 벗 나무에 뽀오얀 꽃봉오리들이 툭툭 터져 화사한 꽃을 피워 웃고 있다. 아직은 어려 가녀린 몸매지만 버겁도록 무겁게 꽃짐… 더보기

[341] 모든 것의 고마움을

댓글 0 | 조회 2,830 | 2006.09.25
아침 잠에서 깨어나 커튼을 제치니 예사롭지 않은 바람소리가 귓청을 때린다. 아마 태풍의 소용돌이에 깊이 휘말렸나 보다. 따뜻한 이불 속이 너무나 좋아 마냥 게으름… 더보기

[316] 목련이 피었네, 뚝뚝 떨어지네

댓글 0 | 조회 2,831 | 2005.09.28
자두빛 물먹은 목련이 피었네, 분홍색 화사한 벗꽃도 피었네. 소리없이 살금살금 봄이 찾아온 모양인가. 우리는 아직도 추위 속에서 떨고 있는데…. 볕발 좋으면 까짓… 더보기

소통하는 영원한 벗, 한송이 빨간 장미

댓글 0 | 조회 2,831 | 2016.02.24
혼자 밥 먹는게 지루하고 따분할 때. 무심히 놓인 식탁 한켠에 빨간 장미 한 송이가 놓칠세라 내 시선을 붙잡는다. “어머님 식사 맛있게 하세요 그리고 힘내세요.”… 더보기

굴뚝이 있는 집

댓글 0 | 조회 2,834 | 2016.08.25
요즘 새로 짓는 집들은 아예 굴뚝이 없다. 굴뚝이 있는 옛날 집들도 이젠 연기가 나질 않는다.내가 처음 왔을 때 만해도 티티랑이 동네 어귀엔 나무 타는 냄새가 야… 더보기

‘포우투카와’ 꽃잎 날리던 교정

댓글 0 | 조회 2,836 | 2011.08.24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난 일들 가운데 보람있었던 시간들을 추억하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여러가지 자기 하는 일에 성취감이 곧 보람이겠지만 무엇보다 순… 더보기

차 사랑 할아버지

댓글 0 | 조회 2,837 | 2011.07.26
‘허버트’ 노인이 또 차를 바꿨다. 방궤같이 앙징스럽고 예쁜 신 차다. 그는 언제나 같은 스타일의 차들만 타는 취향임이 틀림없다. 주인을 닮은듯한 아담한 모양이 … 더보기

[324] Oh, my God! 雪花 秀

댓글 0 | 조회 2,848 | 2006.01.16
雪花! 그 글씨만 보아도 백옥같은 눈꽃이 눈에 시원하다. 요즈음 한국은 눈꽃 속에 파묻힌 하얀 나라란다. 싸한 바람 속에 소복 단장한 고궁 뒷 뜰을 산책하고 싶다… 더보기

호박잎에 싸 보내는 할머니 마음

댓글 1 | 조회 2,852 | 2011.11.23
얼마 전 점심초대를 받아 어느 식당에 갔었다. 한식에 맞는 깔끔한 기본반찬 서너가지와 작은 뚝배기에 걸죽한 강된장이 함께 식탁에 올라왔다. 웬 강된장? 그것을 보… 더보기

[307] 진이의 유학일기

댓글 0 | 조회 2,854 | 2005.09.28
아주 가끔씩 나는 진이와 현이 남매가 생각난다. 그들은 지금 한국에서 어찌 지내고 있을까? 학교는 제대로 다니고 있는지, 아니면 돈 번다고 정말로 우유배달을 하고… 더보기

[337] 비 속의 요정들! 겨울꽃

댓글 0 | 조회 2,854 | 2006.07.24
춥고 축축하고 구질구질한 매일 매일의 겨울날씨. 제습기가 빨아 먹고 쏟아 내는 엄청난 물의 양에 놀래면서 내가 마치 물 속에서 사는 듯 후줄근해져 이 겨울이 지루… 더보기

잃은 것과 남은 것

댓글 0 | 조회 2,855 | 2020.08.25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발걸음이 달라지는 것은 마음자세 때문일까요?편한 옷차림에 운동화를 신으면 몸도 마음도 한결 가볍습니다. 차도를 따라 10분쯤 걸으면 운동장 … 더보기

[381] 멋쟁이 멋쟁이! (황혼에 피는 아름다운 꽃이어라)

댓글 0 | 조회 2,858 | 2008.05.28
요즈음같이 살벌하고 각박한 세상에 한줄기 밝은 빛으로 모든 사람들 가슴속에 훈훈한 감동을 심어준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 지난 4월 어느날, 아침 방송 뉴스시간에 … 더보기

[306] 다알리아 아줌마

댓글 0 | 조회 2,858 | 2005.09.28
소담스럽게 핀 다알리아꽃이 방긋방긋 웃으며 휀스넘어로 윙크를 보내오는 그 집. 유난스럽게 키가 크고 잘 생긴 갖가지 색깔의 꽃들을 보며 길을 지날 때마다 그 집 … 더보기

[365] 오빠와 취나물

댓글 0 | 조회 2,863 | 2007.09.26
이 나이에도 친정 식구들을 떠올리면 그냥 그때의 아이로 돌아 가는 게 그리 좋다. 언니가 보고싶어 목소리라도 들어야 한다며 전화를 주실 때, 외국생활 힘들지 않느… 더보기

[373] 그 나무님!

댓글 0 | 조회 2,864 | 2008.01.30
티티랑이 언덕길 위에 우뚝 서 있는 기품있게 잘 생긴 한 그루의 고목. 아무리 나무가 잘 자라주는 이 나라라고 해도 백 년은 훌쩍 넘었음직한 위용을 갖추어 지체 … 더보기

[333] 핑크빛 골프장갑

댓글 0 | 조회 2,872 | 2006.05.22
오래전부터 내 옷장서랍 한 견에는 작은 비닐백에 들은 임자 잃은 골프장갑이 얌전히 자리잡고 있었다.“나는 언제 주인님 손에 끼워져 바깥세상 구경을 하나요?”서랍을… 더보기

지붕위의 여자

댓글 0 | 조회 2,879 | 2016.10.26
뒷집에 새로 이사와 살고 있는 여자가 있다. 항상 후두로 머리를 덮은 파커차림이다. 뒷모습 말고는 얼굴을 본 적이없어 나이를 가늠조차 할 수가 없다. 남자처럼 키… 더보기

[371] 예술처럼 늙고 싶다

댓글 0 | 조회 2,885 | 2007.12.20
"이제 늙고 볼품없어 제대로 보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옷인들 신경 써서 입으면 뭘하나 츄리닝이나 걸치고 헐렁하게 살아야지" 그 누구보다 자기 관리에 충실해서 한결같… 더보기

주부(主婦) 실종시대

댓글 0 | 조회 2,886 | 2014.04.24
정신없이 흐려지는 시각을 거역이라도 하듯. 사물을 보고 느끼는 진정성은 더더욱 뚜렷해 지고 있으니 이것이 늙어가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리라. 늘상 보던 주변의 물… 더보기

[288] 영정 사진을 찍으며

댓글 0 | 조회 2,900 | 2005.09.28
아직은 아니에요. 10년쯤 후에나 찍으세요” 누군가가 던진 달콤한 위로의 말에 귀에 솔깃했던 순간을 생각하며 씁쓸하게 웃어본다. 어느 포토 샵에서 영정 사진을 찍… 더보기

현재 [349] 고국에서 가을 단풍이…

댓글 0 | 조회 2,920 | 2007.01.30
해가 바뀌니 내가 원치 않아도 어김없이 또 나이 하나를 보탠다. “형님은 이제 ㅇ십대네요. 나는 아직 ㅇ십대인데…” 세살 아래인 흉허물없는 사이의 어떤 자매님이 … 더보기

[383] 일탈(逸脫)의 쾌감

댓글 0 | 조회 2,923 | 2008.06.25
길고 긴 여름 가뭄에 늦더위가 기승이더니 모처럼 귀한 비가 밤새 제법 많이 내린 어느 날이다. 메말랐던 세상이 한껏 물끼를 머금고 생동감으로 넘치는데 그쳤는가 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