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5] 정서라는 양념 하나 더 김치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335] 정서라는 양념 하나 더 김치

0 개 2,702 KoreaTimes
카렌다는 유월에 머물러 있는데 요즈음이 김장철이란다. 아직도 계절이 헷갈려 한국 같으면 지금이 몇월쯤에 해당되나 한 번씩 확인을 해봐야 수긍이 되니 여기 사람이 되기엔 영 틀린 것같다. 육 십년을 살아온 고국의 계절이 머리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데 그 십분의 일 밖에 안된 짧은 세월에 여기 것으로 몽땅 바꾸기엔 과한 욕심임에 틀림없어 그런대로 살 수 밖에…….
  
배추 열다섯포기? 더 많으면 힘들겠지만 까짓거 어디 한번 맛있게 담아보자. 부름을 받고 딸네 집으로 달려가는 밤. 낮시간은 생존을 위해, 건강을 위해 모두가 바쁘니 그 정도의 일은 밤에 해도 될것같다.

농장에서 저려온 배추가 겉만 숨이 죽었지 속은 멀쩡하게 살아 있어 일일이 다시 손보는 것으로부터 내 일은 시작된다. 갓 김치를 담으려다 내친 김에 배추까지 사오게 되었다는 말을 들으며 갓 김치 물리지도 않고 끈질기게 좋아하는구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엄마 갓김치 담을 때마다 준이엄마 생각이 나요. 준이도 벌써 어른되어 장가 갔겠네.”

여수가 친정인 준이엄마, 준이 외할머니가 올라 오실 때마다 담아 온 여수 갓김치 맛을 그때부터 알았는데 상품화되어 시중에 나오기 훨씬 전의 일이다. 매콤하고 톡쏘는 알싸한 그 맛. 들뜬 속을 갈아 앉히는데 그만이다.  

딸애가 이민 온 첫해에 벌써 갓김치가 먹고 싶다며 안달을 해서 철도 아닌 때에 백화점에 가보니 김치 한보시기가 삼만원 정도 했던 걸로 기억된다. 그걸 꽁꽁싸서 인편에 보냈던 일이며 그 다음 번엔 강화갓이 비슷한 게 나오기 시작해 직접 담아 보냈던 일도 있었다.

“갓이 너무 웃자랐다. 뻣뻣해서 어찌 먹겠니?…”

“엄마 그런것 상관안해요. 여기서 그걸  담가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요.”

이제 한국에서 고춧가루 날라오지 않아도 여기 고추가 무공해로 더 좋으니 하나도 걱정될게 없다. 온 식구가 다 같이 김치가 어찌 만들어져 식탁에 오르는지 알아야 한다며 총동원을 해 사실상 힘드는 일은 아이들이 다 했다. 가족이 함께 어우러져 협동의 정서를 이루는 김치 담는 잔치랄까. 애들은 마늘을 까고 애비는 힘찬 손으로 무채를 썰었다. 세살 어린 나이로 온 손녀딸애는 어찌 그리도 토속음식만을 좋아하는지 부추김치까지 챙기는데 그게 없어서 신이 덜 나는 모양이다. 변덕입이 비쭉 나오지 않았을까? 온갖 양념이 어우러져 속이 버무려지는데 미나리를 못넣어 아쉽다는 딸애.

소담스럽게 두툼한 팔뚝에 장갑도 안 낀 맨손으로 벌겋게 속을 버무리고 그 손으로 집어 간 보라고 입에 넣어 주시던 내 어머니의 서늘한 눈매가 눈앞에 계시다.

“엄마 올해도 김치가 맛있어 식구들이 좋아해요.”
“그러냐 에미가 독에 잘 건사한 때문이야”
  
서로 공을 돌리며 모녀간의 정겹던 때를 떠올리며 내가 바로 그 자리에 와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간을 좀 봐야지” 나이들어 미각의 둔화때문에도 그렇거니와 먹을 사람 입맛에 맞추려는 지혜임도 알게 되었다. “와~ 맛있네요.” 속쌈을 하나 먹어야 한다며 노란 배추속잎을 뜯어 빨간 속을 싸서 신랑 입에도 넣어주고 제 입에도 넣으며 맛이 Good이라고 좋아한다. 서서 배추를 날라주던 애비도 맛이 괜찮은 모양이다. “이럴 때 맥주가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딸애가 웬일로 너스레를 떤다. 사회생활 한답시고 밖으로 나돌더니 곧잘 술도 하는 모양이다.

“맥주는 없고요. 와인은 있지. 그거라도 가져올까?” 글래스에 딸아서 나도 한 잔 주며 쌈하고 곁드려 먹어 보란다. “오매 이게 웬 이변?” 쌈을 먼저 입에 물고 와인을 곁드리니 젓갈 들어간 배릿한 냄새와 와인의 맛이 어우러져 기찬 맛으로 하모니를 이룬다나, 그만이란다. 둘이서 북치고 장구치고 맛있다고 연신 홀짝어리며 마셔 대면서 나보고도 그렇게 해 보라고 보챈다. 정말 그럴듯했다.

“얘 배추 몇포기 안되는 것 그렇게 먹고 뭐가 남겠니?”

늙은이는 노파심으로 젊은사람 기분같은 것 이해 못하는데 병폐인줄 알면서도 한마디 한다.

“아무 때 먹어도 먹을 것 맛있을 때 먹는 게 최고가 아니겠우”

"얘가 취했나 봐."

말수가 그리 헐렁한 애 아닌데 종알종알 하는게 웃읍다. 응석받이가 핀 애를 바라보며 옛날의 우리가 문득 생각났다. 한 소녀와 젊은 엄마였던 때를…….

냉장고통에 김치를 담으며 차곡차곡 항아리에 담던 정서같은게 그리움으로 닥아온다. 좋은 흙으로 구워만든 항아리에서 배어나는 맛이 따로 있을텐데. 프라스틱통은 그냥 보관하는데만 필요한 멋없는 그릇이 아닌가.

시대가 변하고 어디에 살던지 김치를 먹어야 하는 고집을 버릴 수 없는 게 우리 한국인인가보다.

[369] 나누며 사는 사람들

댓글 0 | 조회 2,600 | 2007.11.28
생각보다 무겁고 두툼한 그것을 건네 받으며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앞섰다. "뭣이 이리도 많을꼬?" 금방 자를 것을 깜박하고 이른 아침에 흠뻑 물을 주어 젖어서 무거… 더보기

[330] 그 사람 “프레드”

댓글 0 | 조회 2,626 | 2006.04.10
그사람을 또 만났다. 수영장엘 가면 만나게 되는 사람이지만 내가 자주 가질 않으니 오래간만에 만난 “프레드”다. 그의 곁에는 항상 동양 여자들이 같이 있어 이야기… 더보기

여자는 예뻐지고 싶다

댓글 0 | 조회 2,628 | 2012.08.28
몸에 탄력을 잃으니 윤끼도 사라지고. 머리카락도 변변찮아 매만져봐야 그렇고 그런 모양새. 미용실 가야할 의욕도 잃은지 오래되었다. 어느날 오래 벼르던 끝에 찾아간… 더보기

[304] City의 밤 풍경

댓글 0 | 조회 2,634 | 2005.09.28
참 오래간만에 City에 나와 밤 거리를 걸어본다. 기승을 부리던 낮 더위가 먼 나라 이야기인양 살갗에 닿는 바람이 마냥 시원해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민다. 낮의… 더보기

[345] 젊음의 바다에 풍덩 빠져 버리다

댓글 0 | 조회 2,636 | 2006.11.27
어느 날씨 좋은 일요일 늦은 오후, 차나 마시러 나가자는 친구의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아주 사소한 일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지금 나이테가 적잖은 우리가 누릴 수… 더보기

[319] 서른여섯의 눈동자

댓글 0 | 조회 2,639 | 2005.10.25
혼자 사는게 심심하지 않느냐고 간혹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아마 외롭지 않느냐고 묻는 말이리라. 곁에 사람이 있어도 외로울 수 있는 것이 인생인 것을…. 전자 매… 더보기

[323] “크리스마스 페스티벌 와이카토”

댓글 0 | 조회 2,654 | 2005.12.23
남반구인 이곳 뉴질랜드의 크리스마스는 내려쬐는 태양볕 아래 정열적으로 피어나는 포후투카화 꽃 속에서 맞이한다. 바람을 잔뜩 넣어 부풀려 만든 풍선 눈사람에 줏대없… 더보기

이름에 대하여

댓글 0 | 조회 2,671 | 2016.09.28
선영. 세영. 은영. 한결같이 고운 여자들의 이름이다. 하지만 그 이름의 주인들은 모두 남자들. 내 남자 형제들의 이름이다.그 중에 진영이 있다. 남자 이름같은데… 더보기

[310] 어떤 스케치

댓글 0 | 조회 2,686 | 2005.09.28
여기 문화에 익숙해질만큼은 살았는데 아직도 수영복 차림으로 남자들 앞에 다가서기가 민망스럽다. 평일의 오전에는 특히 호젓해서 남자들 세상 같아 더욱 어설프다. 쭈… 더보기

[309] 낙엽따라 떠난 갈색의 낭만

댓글 0 | 조회 2,699 | 2005.09.28
죽이 잘 맞는 자매님 내외와 흣날리는 낙엽따라 가을 여행을 떠난다.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이 쓸쓸한 계절에 갑자기 들뜬 낭만으로 가슴이 설레인다. 계획없이 이루어… 더보기

‘시드니’ 그리고 ‘다이아나’

댓글 1 | 조회 2,701 | 2012.02.29
잠에서 깨일 때마다 이층침대 머리맡 창밖을 내다보면 시커먼 바다. 그 검푸른 물결을 가르고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속을 달리기만 하는 배. 항상 늦잠이 달아 잠뽀인 … 더보기

현재 [335] 정서라는 양념 하나 더 김치

댓글 0 | 조회 2,703 | 2006.06.26
카렌다는 유월에 머물러 있는데 요즈음이 김장철이란다. 아직도 계절이 헷갈려 한국 같으면 지금이 몇월쯤에 해당되나 한 번씩 확인을 해봐야 수긍이 되니 여기 사람이 … 더보기

[305] 추억의 손수건

댓글 0 | 조회 2,719 | 2005.09.28
"엄마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꼭 건강하셔야 해요.” 보통 때와 다르게 은근하고 진지한 목소리가 갈증나게 내 귀를 간지럽힌다. “지금 어디시여?” 늘상 알면서도 … 더보기

[343] 안녕하세요?

댓글 0 | 조회 2,722 | 2006.10.24
마감을 거의 앞둔 바쁜 시간에 허둥거리며 뛰어 들어간 우체국. 아무도 없는 빈 홀 안에 정리를 서두르는 직원들만 카운터 앞에서 서성거린다. “헬로! 쏘리”로 다가… 더보기

오월의 그 열기처럼

댓글 0 | 조회 2,724 | 2011.05.25
뜨겁게 달아 오르던 ‘제11대 한인회장’ 후보 세 사람의 열기도 이제 가라 앉았다.그 분들을 지켜보며 진정으로 우리 교민을 대표 할 한 사람을 가리느라 설왕설래 … 더보기

투표하러 가던 날

댓글 0 | 조회 2,740 | 2009.07.28
오늘은 아침부터 참 기분이 좋다. 어린애처럼 마음이 둥둥떠서 괜스레 콧노래도 흥얼거리고 사뿐사뿐 몸도 가볍다. "투표하러 가는 날". 이 나라에 와서 처음도 아닌… 더보기

12월의 노래

댓글 0 | 조회 2,744 | 2011.12.23
‘하늘을 쳐다보며 사-뿐 귀에다 손을 대보라 구름이 방긋 웃는 소리 고요하게 들린다.’ 밝고 맑은 꿈을 꾸던 어린시절. 푸른풀밭에 누워 드넓… 더보기

[339] 아름다운 고별

댓글 0 | 조회 2,748 | 2006.08.21
건강이 그리 양호한 편은 아니었지만 아직 병석에 눕지는 않으신 어느 어른의 갑작스런 부음을 듣는다. 밤새 안녕이라는 말의 실감에 전율이 온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 더보기

[321] 보자기의 예술(보자기 전시회를 다녀와서)

댓글 0 | 조회 2,753 | 2005.11.21
“현대 문명이 우리 여성들의 조신한 정서를 몽땅 탈취해갔구나” 해밀톤 시립 와이카토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보자기 전시회'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더보기

[275] 언니가 오셨네

댓글 0 | 조회 2,754 | 2005.09.28
요즈음 제법 살맛이 난다. 사람은 더불어 사는 사람이 있을 때 행복하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면서…. 언니가 오셨다. 인생살이가 그렇듯이 한지붕 밑에서 철없을 때 … 더보기

[367] 무지개를 따라서

댓글 0 | 조회 2,777 | 2007.10.24
무슨 사연인지 묻지는 못했지만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어느 중년의 여인. 아쉬움 속에 마지막 라운딩을 우리와 함께 하던 날이었다. 십칠홀을 끝내고 라스트 … 더보기

양귀비꽃 하루

댓글 0 | 조회 2,785 | 2008.11.26
찌프린 하늘이 회색으로 어둡다. 그 침침함 속에 문득 시야를 밝혀 오는 화사한 다홍색 물결, 두리번거리는 낯선이의 발길을 유혹하는 곳은 잘 정돈된 넓직한 파크였다… 더보기

[301] 쨈돌이 파이팅!

댓글 0 | 조회 2,789 | 2005.09.28
“주님 오늘도 그 아이에게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어 어렵지 않은 하루로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해 주소서” 요즈음 내 기도는 그렇게 시작되고 끝이 난다. 일곱살… 더보기

[351] 순아! 잘 다녀 와

댓글 0 | 조회 2,793 | 2007.02.26
아이의 나이는 그 때 세살이었다. 그 애가 집 마당에 나서면 휀스 저쪽으로 옆집 제 또래의 아이가 우연히 이 쪽을 바라보며 서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다. 그 때마다… 더보기

[311] 엄마 마음=딸의 마음

댓글 0 | 조회 2,793 | 2005.09.28
한국에서 딸을 보러 오셨다는 내 또래의 어머니와 그의 딸이 함께 그룹이 되어 골프를 치던 날이다. 마흔을 한참이나 지난 중년의 딸이 대학 다 닐 때에 같이 배웠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