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5] 정서라는 양념 하나 더 김치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335] 정서라는 양념 하나 더 김치

0 개 2,682 KoreaTimes
카렌다는 유월에 머물러 있는데 요즈음이 김장철이란다. 아직도 계절이 헷갈려 한국 같으면 지금이 몇월쯤에 해당되나 한 번씩 확인을 해봐야 수긍이 되니 여기 사람이 되기엔 영 틀린 것같다. 육 십년을 살아온 고국의 계절이 머리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데 그 십분의 일 밖에 안된 짧은 세월에 여기 것으로 몽땅 바꾸기엔 과한 욕심임에 틀림없어 그런대로 살 수 밖에…….
  
배추 열다섯포기? 더 많으면 힘들겠지만 까짓거 어디 한번 맛있게 담아보자. 부름을 받고 딸네 집으로 달려가는 밤. 낮시간은 생존을 위해, 건강을 위해 모두가 바쁘니 그 정도의 일은 밤에 해도 될것같다.

농장에서 저려온 배추가 겉만 숨이 죽었지 속은 멀쩡하게 살아 있어 일일이 다시 손보는 것으로부터 내 일은 시작된다. 갓 김치를 담으려다 내친 김에 배추까지 사오게 되었다는 말을 들으며 갓 김치 물리지도 않고 끈질기게 좋아하는구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엄마 갓김치 담을 때마다 준이엄마 생각이 나요. 준이도 벌써 어른되어 장가 갔겠네.”

여수가 친정인 준이엄마, 준이 외할머니가 올라 오실 때마다 담아 온 여수 갓김치 맛을 그때부터 알았는데 상품화되어 시중에 나오기 훨씬 전의 일이다. 매콤하고 톡쏘는 알싸한 그 맛. 들뜬 속을 갈아 앉히는데 그만이다.  

딸애가 이민 온 첫해에 벌써 갓김치가 먹고 싶다며 안달을 해서 철도 아닌 때에 백화점에 가보니 김치 한보시기가 삼만원 정도 했던 걸로 기억된다. 그걸 꽁꽁싸서 인편에 보냈던 일이며 그 다음 번엔 강화갓이 비슷한 게 나오기 시작해 직접 담아 보냈던 일도 있었다.

“갓이 너무 웃자랐다. 뻣뻣해서 어찌 먹겠니?…”

“엄마 그런것 상관안해요. 여기서 그걸  담가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요.”

이제 한국에서 고춧가루 날라오지 않아도 여기 고추가 무공해로 더 좋으니 하나도 걱정될게 없다. 온 식구가 다 같이 김치가 어찌 만들어져 식탁에 오르는지 알아야 한다며 총동원을 해 사실상 힘드는 일은 아이들이 다 했다. 가족이 함께 어우러져 협동의 정서를 이루는 김치 담는 잔치랄까. 애들은 마늘을 까고 애비는 힘찬 손으로 무채를 썰었다. 세살 어린 나이로 온 손녀딸애는 어찌 그리도 토속음식만을 좋아하는지 부추김치까지 챙기는데 그게 없어서 신이 덜 나는 모양이다. 변덕입이 비쭉 나오지 않았을까? 온갖 양념이 어우러져 속이 버무려지는데 미나리를 못넣어 아쉽다는 딸애.

소담스럽게 두툼한 팔뚝에 장갑도 안 낀 맨손으로 벌겋게 속을 버무리고 그 손으로 집어 간 보라고 입에 넣어 주시던 내 어머니의 서늘한 눈매가 눈앞에 계시다.

“엄마 올해도 김치가 맛있어 식구들이 좋아해요.”
“그러냐 에미가 독에 잘 건사한 때문이야”
  
서로 공을 돌리며 모녀간의 정겹던 때를 떠올리며 내가 바로 그 자리에 와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간을 좀 봐야지” 나이들어 미각의 둔화때문에도 그렇거니와 먹을 사람 입맛에 맞추려는 지혜임도 알게 되었다. “와~ 맛있네요.” 속쌈을 하나 먹어야 한다며 노란 배추속잎을 뜯어 빨간 속을 싸서 신랑 입에도 넣어주고 제 입에도 넣으며 맛이 Good이라고 좋아한다. 서서 배추를 날라주던 애비도 맛이 괜찮은 모양이다. “이럴 때 맥주가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딸애가 웬일로 너스레를 떤다. 사회생활 한답시고 밖으로 나돌더니 곧잘 술도 하는 모양이다.

“맥주는 없고요. 와인은 있지. 그거라도 가져올까?” 글래스에 딸아서 나도 한 잔 주며 쌈하고 곁드려 먹어 보란다. “오매 이게 웬 이변?” 쌈을 먼저 입에 물고 와인을 곁드리니 젓갈 들어간 배릿한 냄새와 와인의 맛이 어우러져 기찬 맛으로 하모니를 이룬다나, 그만이란다. 둘이서 북치고 장구치고 맛있다고 연신 홀짝어리며 마셔 대면서 나보고도 그렇게 해 보라고 보챈다. 정말 그럴듯했다.

“얘 배추 몇포기 안되는 것 그렇게 먹고 뭐가 남겠니?”

늙은이는 노파심으로 젊은사람 기분같은 것 이해 못하는데 병폐인줄 알면서도 한마디 한다.

“아무 때 먹어도 먹을 것 맛있을 때 먹는 게 최고가 아니겠우”

"얘가 취했나 봐."

말수가 그리 헐렁한 애 아닌데 종알종알 하는게 웃읍다. 응석받이가 핀 애를 바라보며 옛날의 우리가 문득 생각났다. 한 소녀와 젊은 엄마였던 때를…….

냉장고통에 김치를 담으며 차곡차곡 항아리에 담던 정서같은게 그리움으로 닥아온다. 좋은 흙으로 구워만든 항아리에서 배어나는 맛이 따로 있을텐데. 프라스틱통은 그냥 보관하는데만 필요한 멋없는 그릇이 아닌가.

시대가 변하고 어디에 살던지 김치를 먹어야 하는 고집을 버릴 수 없는 게 우리 한국인인가보다.

‘포우투카와’ 꽃잎 날리던 교정

댓글 0 | 조회 2,803 | 2011.08.24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난 일들 가운데 보람있었던 시간들을 추억하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여러가지 자기 하는 일에 성취감이 곧 보람이겠지만 무엇보다 순… 더보기

차 사랑 할아버지

댓글 0 | 조회 2,819 | 2011.07.26
‘허버트’ 노인이 또 차를 바꿨다. 방궤같이 앙징스럽고 예쁜 신 차다. 그는 언제나 같은 스타일의 차들만 타는 취향임이 틀림없다. 주인을 닮은듯한 아담한 모양이 … 더보기

그 남자의 6. 25

댓글 0 | 조회 3,259 | 2011.06.28
시니어클럽 ‘무지개’에 나오시는 분들 가운데 남자 세 분이 참전용사였음을 이번에 알게 되면서 그 타고나신 천운(天運)이 새삼스럽게 놀랍고 부러웠다. 6. 25가 … 더보기

오월의 그 열기처럼

댓글 0 | 조회 2,706 | 2011.05.25
뜨겁게 달아 오르던 ‘제11대 한인회장’ 후보 세 사람의 열기도 이제 가라 앉았다.그 분들을 지켜보며 진정으로 우리 교민을 대표 할 한 사람을 가리느라 설왕설래 … 더보기

나눔의 기쁨

댓글 0 | 조회 2,985 | 2011.04.28
큼직한 상자에 여러 옷가지들과. 먹을 것이 담긴 봉지들이며. 병들을 차곡차곡 담고. 귀퉁이 빈 공간에는. 치약이며. 비누. 작은 일용품들을 빈틈없이 채워간다. 일… 더보기

호평동에서 온 편지

댓글 0 | 조회 3,387 | 2011.03.23
어린 강아지풀과 노오란 민들레꽃이 얌전하게 말려져 진홍의 카드지 안에서 환하게 나를 반긴다.훌쩍 해를 넘긴 작년. 봄의 소식을 알리며 고국의 땅 한 모퉁이 호평동… 더보기

설 명절에 웬 송편을....

댓글 0 | 조회 3,390 | 2011.02.22
‘젊은이는 희망으로 살고 늙은이는 추억으로 산다던가’ 구정을 맞아 귀성길이 막힌다느니 원활하다느니 수만리 밖에서 나와 무관한 사정을 듣고 보며. 그러나 그 곳에 … 더보기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댓글 1 | 조회 3,593 | 2011.01.26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정확히 70년대의 아주 옛날 노래를 요즈음 새삼스럽게 웅얼거리는 입버릇이 된 것은 어쩐 일일까? 별로… 더보기

2010년 11월에는...

댓글 0 | 조회 3,054 | 2010.12.22
수도 없이 바뀌고 반복되는 세월속에서. 내 인생에 십일월만큼 특별한 달은 또다시 없는 것 같다. 눈부시게 흰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행복하게 웃던 십일월 어느날… 더보기

띵호아! 사랑의 도시락

댓글 0 | 조회 4,059 | 2010.11.24
그들이 알고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중국인들은 대개 칙칙하고 깔끔스럽지가 않다고 생각 해 왔다. 그러기에 화사하고 밝은 인상의 남자를 분명 한국인이라고 단정짓고 “안… 더보기

감사합니다

댓글 0 | 조회 3,322 | 2010.10.28
“또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수 있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나이무게가 더해지면서 마치 죽음에서 깨어나듯 다시 시작되는 아침이 늘 새롭고 고마워 저절로 나오는 감사… 더보기

젊음이 흘리고 간 낭만을 줍다

댓글 0 | 조회 3,417 | 2010.09.29
감색 양복에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단추와 띠 장식이며. 거기에 검은차양에 흰 모자까지.... 그 날은 퀸스트리트 거리가. 그들의 멋진 정복의 물결로 그 어느 때 보… 더보기

고목에 피운 무지개꽃을 아시나요?

댓글 0 | 조회 3,435 | 2010.08.25
“푸 -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고국의 향수를 물씬 자아내는 멋드러진 화음에 찐한 감동과 함께 온몸으로 짜릿한 전율이 온다. 곱고 화사한 한… 더보기

고국의 가을 속으로 달리다(Ⅲ)

댓글 0 | 조회 3,535 | 2010.07.28
조(鳥)도를 구경하고 다시 ‘진도’로 돌아왔을 때. ‘진도’의 자랑꺼리로 너무도 유명한 토속주 ‘홍주’를 한병 샀다. 조선시대 ‘지초주(芝草酒)’라 하여 최고 진… 더보기

고국의 가을 속으로 달리다(Ⅱ)

댓글 0 | 조회 3,007 | 2010.06.22
진도대교 앞. 자그마한 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목포, 강진, 두륜산을 거쳐 숨가쁘게 달려온 하루였다. 예향의 도시답게 밤바람에 실려 온 묵향이 창 틈으로 스며드는… 더보기

고국의 가을 속으로 달리다(Ⅰ)

댓글 1 | 조회 3,369 | 2010.05.25
낙엽 구르는 바람 소리에 잠을 잃은밤, 고국은 지금 꽃 잔치로 한창 법석을 떠는 계절이잖은가, 하지만 이 밤. 나는 지난 가을 그 곳에서 보낸 시간들 속에서 특별… 더보기

여기는 지금 해 질 무렵의 오클랜드 시티

댓글 0 | 조회 3,635 | 2010.04.27
무공해 초록 나라에 사는 내가 부러워 배 아파 죽겠다는 친구, 당신에게 또 충격을 드려 미안합니다. 주체할 수 없는 이 감동을 혼자 하기엔 가슴이 터질 것 같아 … 더보기

부자(富子)가 싫다는 사람도 있네

댓글 0 | 조회 3,498 | 2010.03.23
"돈은 역 효과를 낳는다. 행복이 오는 것을 막는다." 부(富)가 불행의 근원이라며 억만장자 전 재산을 기부한 사람이 있다. 마흔 일곱 살의 오스트리아 남자, 죽… 더보기

마음밭에 심기운 꽃

댓글 0 | 조회 3,045 | 2010.02.23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 동거한다는 부산의 어느 언덕바지, 일제 강점기 때 묘소였던 자리라던가, 그런 그대로 옹기 종기 집들이 생기고 동네가 되었다. 작은 뜰 한 귀… 더보기

빛 바랜 도화지에 행복 그리기

댓글 0 | 조회 3,549 | 2010.01.27
새 카렌다를 바꿔 걸었으니 어김없이 나이 하나를 더 먹은게 틀림없다.음식은 먹으면 줄어 드는게 이치에 맞는데 떡국을 먹으면 보태지는게 나이가 아닌가. 나이는 숫자… 더보기

실수야 떠나라

댓글 0 | 조회 3,347 | 2009.12.22
12월 마지막 달, 싫어도 또 하나 나이를 보태야 한다. 세월따라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게 두렵다. 이제 기억력도 전같지 않은데 곧잘 건망증까지, 몇년전에 … 더보기

“A”시에서

댓글 0 | 조회 3,671 | 2009.11.25
내가 살던 A시가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였던가 새삼 놀랜다. 시 중심부인 중앙동에서 바라 보이는 시청 양옆 너른 보도엔 중년에 이른 나무들이 갈색 고운 빛으로 질서… 더보기

서울 일기

댓글 0 | 조회 3,261 | 2009.10.27
9월 00일"여보시요 안녕하슈?" "누구?" 어_엉 내가 먼저 하려던 참인데 ...어쩌구.." 그녀 특유의 멘트가 길다. "긴 얘긴 만나서 하자구 이여자야" "어… 더보기

딸이 좋아

댓글 0 | 조회 3,540 | 2009.09.22
딸하나, 또하나! 이 딸딸이 엄마를 한없이 부러워하는 고국의 친구들. 딸 덕에 자연 좋은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내가 배 아프게 부럽단다. 허기사 내 힘으로는 죽었… 더보기

메밀묵 사려∼∼

댓글 0 | 조회 3,737 | 2009.08.25
동지가 지나 열흘쯤 되면 그 짧던 해도 노루꼬리만큼 길어진다고 했다. 엊그제 입춘도 지난 모양이니 낮이 제법 길어지고 계절은 벌써 봄으로 접어든 것 같다. 하지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