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 섣달 그믐날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326] 섣달 그믐날

0 개 2,564 koreatimes
  어제까지만 해도 구름이 오가는 변덕날씨에 바람마져 사납더니……, 오늘은 미동도 하지 않는 엷은 레이스의 창문 커텐이 답답할 정도로 무덥다. 볕은 따가워도 그늘에만 들면 서늘한 이 나라 여름이 아니던가. 밖에서 운동하느라 흠씬 흘린 땀도 집안에만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식어 버리더니 오늘은 그냥 앉아 있는데도 땀이 솟아 한국의 여름만큼이나 무섭게 찐다. 별로 써본적 없는 부채를 꺼내 살랑살랑 부쳐보지만 시원치가 않아 콧등이 시릴만큼 매콤하고 싸한 고국의 겨울바람이 그리워진다. 정말로 더워서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늘이 섣달그믐날이다. 그 특별한 분위기 때문에 체감으로 느끼는 더위보다 감정에서 오는 아쉬움에 더더욱 덥다는 느낌을 갖는 것같다. 음력으로 마지막 남은 하루 섣달 그믐날. 하얀 눈밭에 손을 호호불며 추위에 웅숭거릴 날씨가 왜 이리 더운가. 계절 다른 여기보다 내 명절은 벌써 서울에 가 있다. 언니는 지금 무얼하고 계실까? 조상 모실 설음식 장만하느라 힘든 몸을 끌고 수도 없이 서성거리시겠지.“이제 힘들어서 아무 것도 못하겠어.” 제 일 만들어 밖으로만 나도는 며느리 대신으로 맡은 살림이며 손주들 뒷바라지에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도 사시더니 이젠 도저히 몸이 따라 주질 않아 못하겠다고 몇 년전부터 안타까움을 호소하면서도 여전히 그걸 벗어날 수가 없다. 아마 언니 세상 뜨는 날이 해방되는 날일테지. 그 분의 인생이 그런 것을…, 충주에 계신 오빠네는? 그 집도 한창 바쁠 것이다. 시간을 쪼개어 사는 서울 동서들 편하게 오도록 넉넉하게 여유주고 혼자서 동동거리며 음식 장만하는 맏동서다운 우리올케. 쥐방울처럼 몸도 재고 일도 잘하고 음식도 잘하니 오빠는 느긋해서 잔심부름이나 하시나. 집집마다의 바쁜 풍경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동생들은 한시간이면 보통 갈 수 있는 거리를 너 덧시간씩 거북이 걸음으로 움직이는 장사진 차들 틈새에 끼어 부대끼고 있겠지.
  바람에 출렁이는 을씨년스런 검은 나무들과 쓸쓸하게 비어 있는 논밭들. 하얀 페인트 칠속에 풍덩 빠져 있는 마을의 집들. 획일적인 도시의 답답한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회색으로 변한 산들과 헐벗은 자연과의 만남이지만 나는 늘 좋았다. 섣달 그믐날 그 길을 갈때마다….

  서울서 나고 자란 토박이 오빠가 노후를 맡긴 새로운 시골이 고향처럼 흙냄새를 맡게 해줘서 친정 나드리가 정서로 만족하곤 했다. 각박한 도시의 마음을 부드럽게 순화시켜주는 자연과의 속삭임. 마냥 건조해진 머리 속으로 한가닥 상큼한 솔바람이 일어 흐트러진 자신을 추스르는데 더없이 좋았다.

  우람한 산을 병풍삼아 단 두 집이 전부다. 그 산을 오르는 길목에 폐허가 된 집이 거추장스럽게 버티고 서 있다. 그 집 앞마당엔 고목으로 자란 나무가 돌보는이 없어도 지천으로 살구를 열고 익혀 땅에 떨군다. 사촌 동생댁이 눈이 황홀해서 치마폭에 줏어 담아 온 것으로 술을 담았다며 자랑하던 신비스런 눈빛이 지금도 떠올라 절로 웃음이 나온다. 복사 꽃피는 계절이면 핑크빛으로 물드는 과수원 자락. 그 핑크빛 황홀한 세상을 둘이만 즐기기엔 너무 아쉬워 우리들을 빨리 내려 오라고 불러내는 오빠. 그 꽃에 취한 사람처럼 들떠 있는 목소리가 소년처럼 생기 발랄했다. 창문을 열어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한 꽃가지들. 바람에 날아드는 꽃잎이 식탁 위에 사뿐 내려앉아 함께 하자고 보채는 듯하다. 집 곁으로 산에서 흐르는 실개천이 있고 까만 버들치가 숨었다간 나타나 꼬리를 흔든다. 집 앞 큰 개울에서 낚시로 건져 올린 물고기들을 보를 만든 작은 개울에 모았다가 가끔씩 서울 친구들을 불러 천렵을 하신다나. 그래서 늙어가는 친구들 틈에 더욱 인기가 있는 가보다.

  새벽 뒷산을 오르며 철따라 돌아 난 나물들을 한줌씩 들고 내려와 파아랗게 데쳐서 냉동고에 넣었다가 우리가 내려가면 겨울에도 그 상큼한 햇나물에 뿅가는 식단을 마련해준다. 시끌벅적한 가족모임. 설다운 풍경속에 거기 나도 끼어 있다. 게걸스럽게 그런 회상들 속에서 허우적댔더니 어느새 그 짜증스럽게 무덥던 내 여름이 조금 시원해진다. 구정 명절은 추울 때라야 역시 실감이 나는 우리의 정서. 여기서 먹는 떡국은 별 의미가 없는 것만 같다. 추위에 따뜻하게 속을 녹여 주는, 그리고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덕담과 더불어 먹는 떡국을 먹어야 설다운 설이잖은가.

  아~ 이 유치한 상상력으로 귀소본능을 달래는 내 치기는 언제쯤이나 끝나려는지…….

‘세익스피어 파크’에서

댓글 0 | 조회 2,422 | 2015.04.30
이민 보따리를 풀고 한참 지나서 처음 나드리 가 본 곳이 ‘쉑스피어 팍’이었다. 벌써 십년도 더 지났지만 처음 느낀 인상 때문인지 갈 때마다 기분이 좋다. 내가 … 더보기

미나리, 미나리 강회

댓글 1 | 조회 2,442 | 2012.09.25
지겹도록 비가 내려 지루하기만 하던 한 겨울. 그래도 그 비 덕분일까? 통통하게 살이 오른 원 줄기에 마냥 나긋하게 자란 미나리를 만나니 반갑다. 그 것을 보는 … 더보기

[328] 잘못된 친절

댓글 0 | 조회 2,444 | 2006.03.14
“아뿔사 그랬었구나”밤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문득 무언가를 깨닫고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옆의 누군가에게 망신이라도 당한 듯 얼굴이 화끈 달아 올랐다.(바보 못난이… 더보기

그날, 버니(Burnie)에서

댓글 0 | 조회 2,456 | 2012.03.28
크루즈 중에 배에서 내리는 날은 언제나 바쁘다. ‘타스마니아’는 ‘오스트레일리아’ 땅이긴 하지만 육지 밑으로 외떨어진 … 더보기

반갑잖은 손님이 저기 또 오시네

댓글 0 | 조회 2,465 | 2015.12.22
집 앞 길가에 나가서 빨간 신호등을 마냥 켜 둘까? 현관문을 지킬까? 아니면 방 문이라도 잠가 버리면 그 손님은 오지 않을는지?....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세월… 더보기

[294] 베티의 웃음소리

댓글 0 | 조회 2,466 | 2005.09.28
무슨 꽃일까? 부스럼 앓는 나무처럼 꺼칠한 고목나무에서 바람결에 떨어져 내린 손톱같이 가느다란 꽃잎이 온통 바닥에 하얗다. 소복하게 차를 뒤덮은 어느날 아침 긴 … 더보기

[313] 바람이 흘리고 간 티끌이겠지…

댓글 0 | 조회 2,485 | 2005.09.28
친정 어머니가 아마 지금의 내 나이때쯤이라고 생각된다. 어느 날인가, 우리집엘 오셨는데 핸드백 안에서 불쑥 사진 한 장을 꺼내 내게 건네셨다. 모서리가 닳고 색도… 더보기

[325] 청계천을 가보고 싶다

댓글 0 | 조회 2,488 | 2006.01.31
해가 바뀌고 나니까 마음도 바뀌나? 그럭저럭 잘 견디던 향수병이 갑자기 도지나보다. 고국이 그립다. 나 없는 사이 많이도 달라진 서울, 청계천이 다시 살아났단다.… 더보기

마음이 부자이고 싶다

댓글 0 | 조회 2,505 | 2016.07.28
알람소리에 잠이 깼다. 이불속에서 오시시 한기가 느껴진다. 히터와 침대매트에 스윗치를 올리고 바른자세로 다시 눕는다. 몸이 따뜻해져오면서 살폿이 다시 잠이든다 달… 더보기

[358] 서울내기 전원에 살다

댓글 0 | 조회 2,513 | 2007.06.13
숨가쁘게 달리던 차가 여주 "세종대왕 능" 부근에서 한숨 돌리듯 속도를 늦춘다. 엄청 조용하고 아늑했을 명당이련만 지금은 개발의 붐을 타고 근처까지 파헤쳐져 어수… 더보기

[329] 천사들의 합창

댓글 0 | 조회 2,513 | 2006.03.27
어제 비맞은 골프가방이 아직도 포켓마다 입을 벌리고 말려 달라고 보채고 있는데 오늘 아침도 여전히 비가 오락가락 검고 짙은 구름이 해를 삼켜 버렸다. 반나절을 하… 더보기

빨강 구두 아줌마

댓글 0 | 조회 2,521 | 2017.07.25
밖은 비 바람이 사납다. 오늘같은 날, 밖에 볼 일이 없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둠침침한 집안에서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옷을 두둑히 입고 앉아 있는데 있을수록… 더보기

[322] 쌍둥이 아빠 고마워요

댓글 0 | 조회 2,522 | 2005.12.12
지치도록 피곤하게 운동하고 돌아와 막 현관문에 키를 꽂는 순간이다. 마치 내가 돌아왔음을 보고나 있듯이 안에서 요란스럽게 전화벨이 울려댄다. 누가 그리 때를 잘 … 더보기

[320] 그 비취에 가면.....

댓글 0 | 조회 2,529 | 2005.11.11
처음에 그 곳을 찾았을 땐 단순히 집에서 가깝다는 지리적인것 말고 달리 갈만한 그럴 듯한 곳을 찾지 못해서였는데 이제는 정이 들대로 들어서 헤어질 수 없는 친구처… 더보기

Happy new year

댓글 0 | 조회 2,530 | 2012.01.31
2012년. 첫날 새 아침. 현관문을 열고 나서려는데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 “happy new year_” 언제나처… 더보기

[317] 솔잎 향기 그윽한 추석을 맞다

댓글 0 | 조회 2,531 | 2005.09.28
바람 몹씨 사납던 지난 주말, 추석을 이틀 앞둔 날이다. 그 바람 속에서 악전고투로 공을 날려야만 하는 막힌 데 없는 골프장. 거의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그럭… 더보기

북유럽 여행기 (스웨덴)편

댓글 0 | 조회 2,554 | 2013.01.31
실야라인(silja line) 크루즈의 선상 뷔페식사 분위기가 더 없이 푸근하고 즐거워 피곤한 여정에 달콤한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낯선 음식을 맘껏 두루 맛보는… 더보기

현재 [326] 섣달 그믐날

댓글 0 | 조회 2,565 | 2006.02.13
어제까지만 해도 구름이 오가는 변덕날씨에 바람마져 사납더니……, 오늘은 미동도 하지 않는 엷은 레이스의 창문 커텐이 답답할 정도로 무덥다. 볕은 따가워도 그늘에만… 더보기

[332] 9988ㆍ1234

댓글 0 | 조회 2,573 | 2006.05.08
적당히 잘쓰면 좋지만 잘못쓰면 남에게 혐오감을 주는게 향수(香水)라고 늘 생각해 왔다. “아우님 내가 향수를 좀 썼는데 괜찮은지 모르겠네요.” 너무 진한 향수냄새… 더보기

[361] 바보가 되어가는 이야기 하나

댓글 0 | 조회 2,581 | 2007.07.23
"여기 우산 떨어졌는데요" 등 뒤에서 들려 오는 말에 흘낏 돌아보니 어떤 젊은이가 내 우산을 집어서 작은 돌담에 얌전히 걸쳐 놓고 간다.(어머나 큰일 날 뻔 했네… 더보기

피붙이의 힘

댓글 0 | 조회 2,582 | 2013.12.24
불을 끄고 마악 첫잠이 들려는 찰나. 어둠의 정적을 깨고 갑자기 전화 벨소리가 무섭게 울려댄다. (이 밤에 누구야 오늘밤 잠은 다 틀렸네) 보통의 상식을 깬 이런… 더보기

‘피죠아’의 계절에

댓글 0 | 조회 2,585 | 2013.05.28
머리 다듬기를 관심마져 져버린듯 ‘미용실’ 가기까지 꽤나 망서려지는 게으름. 그 과정의 시간들. 기다리는 무료함이 짜증나서 늘 모자속에 가두… 더보기

[303] 아름다운 세상

댓글 0 | 조회 2,587 | 2005.09.28
며칠 전 내 편지함에 낯선 편지 한 통이 꽂혀 있었다. 복조리가 사진으로 찍혀 있는 근하신년 대한민국 우체국 카드였으니 분명 한국에서 보내 온 내 것이 틀림없었다… 더보기

[315] 골프장에서

댓글 0 | 조회 2,588 | 2005.09.28
참 변덕 많은 날씨가 뉴질랜드 날씨다. 나도 여기 살면서 날씨 닮아 그리 변덕스러워지면 어쩌나 슬며시 걱정도 된다. 파아란 하늘을 보며 기분좋게 달려가는 길인데 … 더보기

[354] "실수였다" 구요.

댓글 0 | 조회 2,594 | 2007.04.12
한입 덥석 깨물면 상큼한 향기를 뿜으며 입안으로 들어오는 신선한 사과, 건강한 치아를 가졌을 때의 그 맛을 이젠 잊어버린지도 오래다. 더구나 지금은 그런 계절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