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저녁이 참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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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저녁이 참 그리웠다

5 3,710 김영나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요즘, 뒤통수부터 등 허리까지 으스스하다. 이런 날은 순두부나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여 먹는 게 최곤데---. 만약 신김치가 있다면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김치전을 부쳐도 좋겠다. 막걸리를 곁들이면 금상첨화겠지만 와인이면 또 어떠랴. 그런데 찌개는 확실히 뚝배기에 담아야 제 맛이다. 찌개가 너무 뜨거워서 입을 하아- 벌리면, 마음 속에는 울음이 생겨도 얼굴은 웃는 모습이 되질 않던가. ‘못생긴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즐겁다(신경림의 시 ‘파장’ 중)’고 하아-입 벌리고 땀 흘리면서, 못생긴 놈들끼리 바라보며 밥을 먹노라면 괜히 행복하고 신이 난다. 김치전도 뜨거울 때 호호 불면서 손으로 쭉쭉 찢어 누이도 동생도 한 볼탱이씩 먹는다. 조금 남게 되면 쟁탈전을 벌이다가 김치전이 갈갈이 찢어지고, 동작 빠른 놈이 냉큼 큰 덩어리를 집어먹고 나머지는 허무해하면서 빈 젓가락만 빨아댄다. 가끔은, 먹을 것 가지고 싸운다고 무릎 꿇고 손 들고 벌을 서다가 못생긴 놈들끼리 서로 마주보면서 킥킥 웃어대던---, 따뜻한 시절의 풍경이 떠오른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가 퇴근하고 돌아오시면 온 가족이 밥상에 둘러 앉았다. 보온 밥솥이 나온지 오래되었음에도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 밥 주발에 제일 먼저 밥을 솔솔 퍼담으셨다. 그리고 어머니가 수를 놓은 예쁜 보자기로 주발을 꽁꽁 묶어서 이불 속에 넣거나 아랫목에 묻어 놓으셨다. 아버지가 밥상에 앉으시면 이불 속에서 막 나온 밥 주발이 훈장처럼 아버지 앞에 묵직하게 놓였다. 초롱한 눈망울의 자식들과 ‘그리 예쁠 것도 설렐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 (정지용 ‘향수’ 중)’가 된장 뚝배기를 상 가운데 놓으면 식사 시작. 보글보글 찌개의 반주에 맞춰 찌그락짜그락 가족들의 숟가락이 들락날락 하면서 리듬을 주고 받는다. 동생이 아버지 앞에 놓인 생선 토막을 젓가락으로 찌르려다가 어머니 숟가락 방패로 제압당하고, 아버지가 생선살을 크게 떼어내서 밥술에 얹어주면 동생은 어머니 눈치를 보며 증거 인멸하 듯 얼른 입 안에 털어넣는다. 식탐 많은 오빠가 찌개에 밥을 들이붓거나, 맛 있는 반찬에 침을 바르고 혼자 독식하겠다는 선언을 하기도 했다. 그땐 참 어이 없었는데, 지금 나는 열망한다, 그 밥상에 앉고 싶다고. 
 
6월 들어 한국에서는 여,야의 잠룡들이 잇달아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고 나섰다.

우리나라 대통령 문재인, 서민 대통령 김두관, 저녁이 있는 삶 손학규 ---. 특히 손학규의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카피를 나는 오래도록 곱씹었다. 어떤 의미로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헤드 카피를 썼는지는 알 수 없다. 짐작컨대, 잃어버린 저녁을 찾아주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일까? 예전의 저녁을 생각해보라. 그 때는 해가 떨어지면 가족들은 맨 먼저 집을 찾아왔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저녁이 돼도 가족들은 모이지 못하고 있다. 서민층 교민의 생활을 잠시 엿보자.  
 
P씨는 10년째 데어리를 하고 있다. 월요일서부터 일요일까지, 아침 7시부터 밤10시까지 문을 연다. 가족들이 교대해주는 몇 시간은 물건을 떼러 큰 슈퍼마켓을 돌아다녀야 한다. 식사는 한 평 남짓한 카운터 뒤에서 샌드위치나 컵 라면 등으로 대충 때운다. 

또 어떤 젊은 부부는 청소일을 밤 늦게까지 하는데,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 차에 싣고 다닌다. 차가운 도시락이 그들의 성찬이다. 카페를 하는 친구는 아침 6시부터 저녁 11시까지 궁둥이 붙일 틈이 없다. 저녁에 문 닫고 나서도 빵을 만들고 재료 준비도 해야 해서다. 식구들은 저마다 카페에서 팔다 남은 음식들을 데워서 식사를 하곤 한다.    

한국의 서민들도 상황은 마찬가지. 한국에 갔을 때, 택배를 자주 이용하곤 했는데, 어느 날은 택배 기사가 밤 12시가 다되어서 물건을 문 앞에 놓고 갔다. 그는 새벽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아이들은 방과후 수업이나 학원으로 내몰리고, 남편들은 밤늦게까지 잔무에 시달리거나 술자리에 가야 하고, 맞벌이 주부들은 가족들과 엇갈리고, 전업 주부들은 또 혼자 뭘 해먹기도 그렇고 해서 한끼 대충 때운다 . 

온 가족이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하룻동안 있었던 일을 얘기하면서 웃음꽃을 피우는 화기애애한 풍경은 먼 옛날 얘기처럼 되어 버렸다. 무엇 때문에 어디로 내몰리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가족들이 만날 수도 없는 저녁이 계속되고 있다. 시절이 하 수상하지 않은가. 

저녁을 잃어버린 시대, 삶의 온기는 사라지고 사람들은 허기진 위(胃) 속에 모래알처럼 서걱대는 음식을 밀어넣는다. 먼 옛날의 ‘그 저녁’이 그리운 오클랜드 아낙의 마음 뜨락에는 오늘도 겨울비가 희뿌옇게 쏟아지고--- 
 
은하수별
밥그룻 추억 저도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네요. 세월이 흐를수록 이런 기억들이 더 오래가고 소중하니 어쩌죠?  더 많이 최고가 되기 위해  경쟁노동과 경쟁교육에 몰입하는 한
저녁밥상 기억은 이제 더 이상 업을거에요.  국경에 상관없이 서민들의 생활이 점점 고달파지는 요즘입니다.
ygna7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은하수별님이 따뜻한 별 빛을 보내주세요.
요즘, 은하수별님이 자주 찾아와주셔서 여우난골 산 등성이가 아름답게 빛난답니다.
은하수별
우리 아들이  룰 아주 좋아해서 매일 밤 잠자기 전 여우난골을 드나든답니다.
syahn
저녁을 잃어버렸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저도 가족들이 다 모여서 저녁 식사를 하는 날이 별로 없다는 것을 자주 느끼는데요. 이 칼럼을 보고 나니 온 가족이 둘러앉은 식탁이 떠오릅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ygna7
syahn님! 반갑습니다.
여우난골에 자주 놀러 오세요!
여우난골은 인정이 넘치고 따뜻한 마을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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