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 속 女子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항아리 속 女子

4 3,031 김영나
#1. 한국의 전통 장(醬)들은 오래 묵으면 약이 된다. 위장병엔 묵은 간장이, 외상이나 화상에는 된장이, 감기나 어혈 푸는 데는 고추장이 특효라고 한다. 어느 종가집에는 3백년 내려오는 씨간장이 있다. 장독을 열면 검은 필름 같은 간장 위에 하늘과 구름과 여인의 상(像)이 맺힌다. 그 장면을 TV에서 보는 순간 숨이 멎었다. 3백년이라니---
 
#2. 왜 뉴질랜드로 이민 오셨어요? 교육 문제 때문에, 한국 정치에 신물나서, 조용히 살고 싶어서--- 표면적인 이유는 입을 맞춘 듯 비슷하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고향을 떠난 이유는 치유되지 않는 상처 때문이었다. 생각만 해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서러운 일을 당해서였다. 

<청춘을 바쳐 일하던 직장에서 무 잘리 듯 단칼에 잘렸어요. 사업을 하다가 쫄딱 망했죠. 한국 교육 풍토에서 애들을 키울 자신이 없었어요. 장애아가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찾아 왔죠. 돌싱이 된 후로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죠. 새 사랑을 만났어요.>

달콤한 인생이었다면 떠날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시고 떨떠름해서, 뭔가 명치 끝에 돌덩이가 매달린 듯 더부룩해서 떠났던 것이다. 반면, 아무런 문제도 상처도 없었지만 뉴질랜드의 자연과 느린 삶을 좋아해서 이민 온 이들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불치병 중 하나라는 이민병에 걸려 결국 뉴질랜드로 왔다. 한국을 떠나올 무렵, 사람들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 사람만 믿지 마!” 

뉴질랜드는 전 세계 교민 사회 중 가장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얘기도 여러 차례 들었다. 

“같은 민족끼리 믿지 못하면 누굴 믿나, 객지에서. 게다가 지적 수준도 높다는데---설마?”   

오클랜드에 12년 살면서 내가 ‘설마?’의심했던 일들이 속속 벌어졌다. 이민 사회의 특성상 소규모 비지니스 창업이 많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온 가족이 매달려 일하는 생계형 업소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바로 옆에 똑같은 업종의 가게를 당당히 열고 옆 가게를 망하게 만들고야 말겠다고 작심하고 달려드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았다. 이민 새내기들을 등쳐서 바가지를 씌우거나 돈을 떼어먹고 도망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노예계약으로 종업원을 부리는 업주들, 제 눈에 들보는 안보이고 남의 눈에 티끌을 트집잡으며 송사를 일삼는 자들---
 
게다가 교민 사회에서 방귀 꽤나 뀐다는 이들이 맑은 시냇물에 먹물을 떨어뜨리는 심각한 일을 자행한다. 물이 더러워지면 정화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할 사람들이 더 나서서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이민 2세들이 무얼 배울까? 

한국에 갔을 때, 급한 일이 있어 짧은 거리를 택시를 이용한 적이 있었다. 중년의 택시 기사님은 흥분하셔서 한국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열변을 토하셨다. 

“영어, 수학 조금 더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는 인성 교육만 시키면 됩니다. 사람 만든 후에 영어 수학 가르쳐도 늦지 않아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도리, 체면, 양심, 타인에 대한 배려, 질서 등등의 덕목을 모르는 인간이 지적 수준이 높다한들 인간 사회에 도움이 될 리가 없지 않은가. 도(道)와 의(義)가 없는 인간들이 함께 살아가는 집단에 무슨 고귀함과 행복과 감동, 희망이 있겠는가.

로버트 풀검의 말대로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는데---’
 
“무엇이든 나누어 가져라. 정정당당하게 행동하라. 남을 때리지 마라. 남의 맘을 상하게 했을 때는 미안하다고 말하라. 차조심 하고 손을 꼭 잡고 의지하라. 밥 먹기 전에는 손을 꼭 씻어라. 균형잡힌 생활을 하라-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놀기도 하고 일도 하라. 네가 어지럽힌 것은 네가 꼭 치워라 등등.” 

#3. 장이 익어가는 장독대 풍경이 그립다. 할머니가 반질반질 닦아놓은 항아리 위로 햇살이 댕강댕강 부딪치고, 감나무의 황금빛 감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장이 잘 익나 궁금해 하고. 나는 큰 항아리를 속에 들어 앉아서 만화책을 읽곤 했다. 항아리 안은 아늑하고 나는 행복했다. 좋은 장처럼 나도 좋은 사람으로 익어가는 기분이랄까. 요즘, 그 속에 들어앉고 싶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격정의 시간을 견디고, 절망과 눈물에서 희망을 방울방울 걸러내고, 불순한 의도를 사랑으로 발효시키면서, 오래 묵은 장처럼 그렇게. 철 들지 않은 사람들 모두 오시요, 빈 항아리로. 
 
은하수별
유치원에서 배운 대로만 살아도 행복이 넘칠텐데. 그 이상 배우고 살아가려 하니 삶이 슬퍼지고 불행해지나 봐요/ 나도 기회가 되면 우리 아들 큰 항아리 준비해줘야겠네요.
ygna7
오랜만이시네요, 은하수별님!
옛날에는 큰 항아리들이 참 많았는데요, 전 기회가 되면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장독대가 갖고 싶어요.
은하수별
네, 꼭 그러세요. 제가 아주 작은 항아리 단지 하나를 책상 연필통으로 사용했는데 오클랜드에서 이사 온 한 분이 들고 갔어요, 새우젖 담고 싶다고.. 이곳에서도 항아리 보면서 살 수 있는 마음의 여유 꼭 간직하시길..
ygna7
은하수별님 감사합니다.
옹기, 항아리 ---그런 것들 생각하면 마음이 푸근해져요. 할머니 생각도 나고요.
할머니 치마꼬리 붙들고 다니면서 된장 고추장 간장 맛보던 어린 시절 기억이---

화양연화 (花樣年華)

댓글 3 | 조회 3,323 | 2009.12.08
나는 내 목적지가 어딘지 모른다. 나는 무시로 떠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은 수년 전부터 더욱 심해졌다. 세상의 부대낌과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이 견디기 어… 더보기

개와 늑대의 시간

댓글 4 | 조회 3,248 | 2011.11.22
하루에 두 번, 하늘에는 더블 캐스팅 된 배우처럼 해와 달이 떠오른다. 달이 퇴장하는 새벽과 해가 퇴장하는 일몰의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위험하고 불길하다. 어슴푸… 더보기

내 친구 Kitty와 Cyril

댓글 4 | 조회 3,212 | 2011.10.26
나는 가끔, 120살쯤 되는 Kitty와 Cyril을 만나러 간다. 티티랑기를 거쳐 후이아로 15분 정도 달리면 Karamatura Valley가 나온다. 그 곳… 더보기

Ebony & Ivory 그리고 Yellow

댓글 1 | 조회 3,183 | 2010.07.27
공원을 반 바퀴쯤 돌아설 무렵, 가시처럼 눈을 찌르던 햇살이 짱짱함을 잃고 서쪽 하늘에는 석양이 드리워졌다. 매일 찾아오는 시간이지만, 브라운 색 필터로 한 번 … 더보기

강북스타일

댓글 3 | 조회 3,143 | 2012.09.11
이민 생활의 방향, 성패는 뉴질랜드에 도착해 누구를 만났는지, 최초 며칠에 따라 결정된다는 속설이 있다. 제법 신빙성이 크다. 내가 하버브리지 남쪽에서 13년째 … 더보기

Summer time

댓글 4 | 조회 3,139 | 2012.01.31
엊그제, 안개 비가 보슬보슬 내리던 날, 공원에서 누가 부르는 듯 했다. 손을 허공에 내밀어보았다. 내리는 둥 마는 둥 간질간질하다. 나는 목에 스카프를 둘렀다.… 더보기

[342] 식물의 사생활(1)---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댓글 1 | 조회 3,085 | 2006.10.09
텃밭이 있는 집으로 이사하고 나는 한동안 들떠 있었다. 상추, 깻잎, 고추는 기본이고 호박, 오이, 가지, 토마토, 완두콩에 배추, 무까지 다 키워보리라. 겨우내… 더보기

지킬 박사와 하이드

댓글 1 | 조회 3,050 | 2010.02.23
인품 좋고 점잖은 신사의 나라 영국이 과거 아프리카 등 식민지에서 자행했던 일들은 악마의 짓이었다. '지킬 박사'가 약을 먹고 '하이드'로 변해 온갖 추악한 일을… 더보기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선물

댓글 2 | 조회 3,048 | 2010.07.13
우연히 들른 것인지 영역을 넓히려 온 것인지, 어느날 고양이가 우리 집에 왔다. 진한 갈색의 야성적인 무늬가 매력적인 ‘삵’처럼 생긴 녀석이었다. 첨 보는 녀석이… 더보기

현재 항아리 속 女子

댓글 4 | 조회 3,032 | 2012.05.22
#1. 한국의 전통 장(醬)들은 오래 묵으면 약이 된다. 위장병엔 묵은 간장이, 외상이나 화상에는 된장이, 감기나 어혈 푸는 데는 고추장이 특효라고 한다. 어느 … 더보기

Open Home ; 첫 번째 이야기

댓글 0 | 조회 3,030 | 2009.09.22
9월이 오는 소리,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집을 내놓기로 했다. 한국에 있을 때, 구조가 모두 똑같고 가격대도 고만고만한 아파트만 두 어 번 거래 해 … 더보기

별나라로 간 스님

댓글 2 | 조회 3,003 | 2010.03.23
법정 스님이 입적하고 난 후 두 통의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죽게 되면 말없이 죽을 것이지 무슨 구구한 이유가 따를 것인가"로 시작되는 한 통의 메일은 스님이 마… 더보기

[358] 키위새의 운명(運命)

댓글 1 | 조회 2,988 | 2007.06.12
키위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 제1회 You Tube Video Awards 에서 ‘가장 귀여운 영상’으로 뽑혔다. 키위새 한 마리가 날기 위해 천신만… 더보기

WETA를 아십니까?

댓글 0 | 조회 2,985 | 2008.09.23
만약, 만약에 말이다. 60억이 넘는 지구인이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사라진다고 가정해 보자. 지구가 떠돌이 행성과 박치기를 해 한 순간에 공중분해 되거나, 지진이… 더보기

제로 섬 게임(Zero Sum Game)

댓글 2 | 조회 2,983 | 2009.04.16
예상대로 뉴질랜드 이민 문호가 다시 열릴 것이라고 한다. 별 뾰족한 수가 없지 않은가.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실업률은 증가하고, 기댈 곳이라고는 돈 싸 짊어지고 들… 더보기

무서운 돼지

댓글 0 | 조회 2,921 | 2009.06.23
<TV One 캡쳐 화면>영국의 동화 작가 Roald Dahl의 'The Pig (from Dirty Beast)' 중에 등장하는 돼지는 무지무지 똑똑… 더보기

나의 지음(知音)은 어디에?

댓글 2 | 조회 2,919 | 2012.10.24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은 가만히 있어도 서로의 마음을 읽어내는 재주들이 있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아도, 표정만 봐도 이심전심이 가능하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 더보기

여우난골에서 온 편지

댓글 9 | 조회 2,916 | 2011.08.16
옛날 옛적에, 여우가 캥캥 울어대는 골짜기(여우난골)에 사람들(여우난골 族)이 모여 살았습니다. <얼굴에 별자국(곰보)이 솜솜났지만 재주가 좋아 하루에 베 … 더보기

아파트

댓글 5 | 조회 2,905 | 2012.02.29
뉴질랜드는 서민들을 위한 주택이 부족하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주거 환경이 열악하고, 렌트비는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집… 더보기

[340] MASSAGE에 관한 진실 혹은 거짓

댓글 1 | 조회 2,884 | 2006.09.11
동서남북도 제대로 분간 못하던 이민 초자 시절에 내 눈에 제일 많이 들어왔던 건 ‘massage’라는 간판이었다. `massage’라면 목욕탕에서 때미는 아줌마가… 더보기

얼어죽을 놈의 낭만!? - 1. 겨울비

댓글 0 | 조회 2,883 | 2008.08.13
하늘에 해가 있기나 한 것인가. 이번 겨울은 참으로 수상하다. 비가 두어 달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린다. 주택가 곳곳이 침수되어 대피 소동을 벌이고 폭풍우에 쓰… 더보기

댁의 마음은 어디 계십니까?

댓글 2 | 조회 2,879 | 2012.01.17
내 영역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한정되어 있어요. 동네 슈퍼마켓에서 먹거리를 사고, 집 앞 공원을 산책하고, 가끔 산을 찾고, 한글을 가르치러 이웃 동네로 넘어… 더보기

채식주의자는 행복해!

댓글 3 | 조회 2,854 | 2012.02.15
내 아들이 채식주의자가 된 것은 5년 전 일이다. 완전 채식은 아니고 치즈와 달걀은 섭취하는 Lacto-ovo-vegetarian인데 그나마 치즈와 달걀도 줄여가… 더보기

닥터 지바고의 발자국

댓글 1 | 조회 2,853 | 2009.04.28
나이를 먹어 가면서 입꼬리가 축 처져 내리는 것은 피부가 탄력을 잃어서일까, 뉴톤의 중력 법칙이 사뭇 입꼬리에만 작용해서일까? 어린 아이들은 '까꿍' 한 번에도 … 더보기

Open Home ; 두 번째 이야기

댓글 0 | 조회 2,840 | 2009.10.13
수선화에 이어 모란과 벚꽃이 피었다. 붉은 철쭉도 피었다. 뒤란의 수국은 새 잎이 푸른 구름 모양 둥실둥실 돋아났다. 꽃들이 앞다투어 피고 지는 동안 우리도 다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