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자 천하지대본야 (農者 天下之大本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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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자 천하지대본야 (農者 天下之大本也)

2 4,273 NZ코리아포스트
토마토 농사를 짓는 지인이 요즘 ‘미치겠다고’한다. 토마토 값이 십 수년 만에 최고로 뛰어서 도매값이 1Kg당 8불이 넘는다고. 조랑조랑 매달려 빨갛게 익어가는 토마토가 너무 어여쁘고 짜릿해서 도파민이 마구 분비된다는 얘긴데, 안 좋은 일이 있는 줄 알고 가슴이 덜컥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주 미치라’고 곱게 눈을 흘겨주었다. 그는 토마토로 술도 만들고, 소스나 주스를 만들어 주변 친구들까지 리코펜으로 떡칠을 해주었다.

얼마 전 K는 오래된 집을 사서 개보수를 했다. K는 너무 힘들었다며 진저리쳤는데, 이상하게도 입가에는 스물스물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집에는 온실이 있어요!”

농사가 취미인 K. 온실 덕분에 겨울내내 야채를 자급자족했다. 상추, 배추, 깻잎, 부추, 고추는 기본이고 율무도 두어 됫박 수확했다고. 율무까지!

말 농장 옆에 넓은 땅을 갖고 있는 Y는 주로 마늘과 콩 농사를 짓는다. 말똥 거름을 주어 키웠다는 작물은 초록빛이 진하다 못해 검은 빛이 돌 정도. 수확한 콩은 아기 이유식과 건강식으로 팔기도 하고 청국장을 만들어 나눠먹기도 했다.

어린 시절 외가에서 지낼 때, 먹거리 대부분은 집 주변의 논과 밭에서 농사지은 것들이었다. 벼가 자라는 논두렁가엔 두렁콩이, 밭에는 보리 콩 깨 고추가, 길섶에는 호박이 흐드러지게 자랐다. 소, 돼지, 닭들도 우리와 한 가족이었다. 나의 간식은 할머니가 손수 만든 고구마칩(?)이었다. 할머니는 햇볕이 좋은 날 , 얇게 썬 고구마를 한장한장 돌담 위에 빙 둘러 널었다. 고구마는 눈부신 햇살 아래 하얗게 분을 피우고, 내 마음에도 행복이 뽀얗게 피어올랐다.

이런저런 농사 얘기를 왜 늘어놨는가. 옛 말에 ‘제 먹을 것 제가 갖고 태어난다’고 했는데, 정말이지 제 밥 그릇 제가 챙겨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지구의 적정 인구는 10억 안팎이라는데, 이미 60억을 넘어섰다. 앞으로 수 십년 후에는 100억을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지구의 모든 자원은 고갈되어가고 물가는 점점 오르고, 믿었던 정부도 등을 돌렸다. 복지 국가로 이름을 날렸던 유럽 국가들은 물론 뉴질랜드도 각종 복지수당을 삭감하고 세금을 올렸다. 엎친데덮친격으로 글로벌 종자 회사나 곡물 회사는 씨앗과 식량을 장악했다. 세월이 더 흐른 뒤에는 돈을 주고도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엘빈 토플러가 ‘미래에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허물어질 것’ 이라고 예견한 것은 어쩜 당연한 수순이다. 그래서 나온 신조어가 producer과 consumer의 합성어인 prosumer. 우리 조상들이 ‘농자 천하지대본야(農者 天下之大本也)’를 삶의 근간으로 삼았던 이유도 농자는 ‘prosumer’의 시작이며 근본이기 때문 아닐까.

1차 산업 위주인 뉴질랜드는 농자로 살아가기에 더없이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다. 뒷마당에 있는 손바닥만한 텃밭도 prosumer로서의 첫발을 내딛기에 충분하다. 요즘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려는지, 지난 해 떨군 씨앗들이 벌써 고개를 내밀고 있다. 추위에 강한 보랏빛 갓이 한뼘씩 자랐다. 셀러리는 겨우내 초록 구름처럼 보글보글 피어오르고 겨자도 새잎이 돋았다. 웰빙 먹거리가 몇 발자국 안에서 푸르게 자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풍요로워지지만, 풍요 뒤안길에는 항상 전쟁 같은 노동이 숨어있다.

고백하지만 난, 오래 전 보았던 찰리 채플린의 영화 속 ‘prosumer’를 꿈꾸었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켜면 침대 옆 창문가에 젖소가 어슬렁 걸어온다. 채플린이 젖소 젖퉁이에 컵을 대면 우유가 주루룩 나온다. 아아, 감동이 밀려왔다. 젖소는 좀 부담이 되니까 젖염소를 키워서 젖을 짜먹고, 닭과 오리를 키워서 알도 먹고, 앙증맞은 당나귀를 키워서 타고 다니고,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땅에는 야채와 곡식을 키우리라.

내 꿈은 뉴질랜드에 와서 화드득 달아나버렸다. 토마토 한 알, 상추 한 포기, 우유 한잔을 생산하기 위해서, 태양과 바람 물과 사람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지. 농사에 열심인 지인들의 손은 갈퀴가 되었고 손가락 마디마다 옹이가 생겼다. 10년째 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는 지인은 우리가 가면 항상 90도로 깎듯이 인사한다. 황송하기 그지 없었는데, 사실은 토마토들을 돌보느라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 급하게 허리를 펼 수없어서였다고. 가엾은 농자들이여! 하지만 농자는 땅의 존엄함과 인간의 자존심을 지켜내는 성자들임을 기억할 것. 농사는 천하의 근본이 되는 일임을 잊지말 것. 오늘도 따뜻한 손을 대지를 향해 내밀 것.

ⓒ 뉴질랜드 코리아포스트(http://www.koreapost.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jk620
어릴땐 너무도 흔해빠져 과일(아니 야채) 축에도 못들던 토마토가 요새는 어디에 좋느니,특히 남자에게 놓느니해서 그런지 얼마나 비싼지...한국에선.

비단 과일뿐만 아니라 야채도 이미 함부로(?) 먹기엔 만만찮은 시대네요.

워낙 비싼 몸값탓에 덤으로 하나 더 달라기엔 돈을 내고 사가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차마 입이 안떨어져요.

퍼시픽 로즈며,골드 키위며 싸고 맛있게 즐겨먹던 뉴질이 정말 그립습니다.
김영나
한국 물가 많이 올랐지요.

뉴질랜드 물가도 만만치 않아요. 생활비 지출 순위로 보면 뉴질랜드가 24위, 한국이 30몇 위로 뉴질랜드가 훨씬 비싼 것으로 나와요.

수입도 같이 올라주면 좋으련만---물가랑 수입이랑 반비례로 가죠. ㅎㅎㅎ

겨울에 한국에 갔을 때, 대봉감이랑 단감, 배 많이 먹었었죠. 대봉감 정말 푸짐하고 찰지고 맛있었죠.

아, 그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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