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모두 잘 살려고 한다.
더 많이 얻고, 더 높이 오르고, 더 유명해 지고, 더 행복해 지기 위해서, 여러 가지 삶의 길을 걸어가고 문을 두드린다.
어떤 사람은 원하는 것을 이루고, 어떤 사람은 평생 고생만 한다.
좋은 일, 큰일도 한번 못해보고 생활에 늘 허덕이며 살아가는 인생이 대부분이다.
늘 자신이나 남에게 겸손하고 친절하고 기뻐하고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데 우리네 삶이 어디 그런가? 늘 불만이 많고 남을 원망하며 산다. 자신은 위대하고 남은 못났다고 한다.
최고의 가치인 종교를 통해서 행복해 지는 자신을 관리하고 자업자득의 삶을 열어야 한다.
마하 까차야나 존자가 길을 걷다가 우물가에서 서럽게 울고 이는 노파를 만났다.
그 노파는 헐벗고 굶주린데다가 젊은 주인이 박대하는 것이 서러워 가난한 신세를 한탄하며 울고 있었다. 이를 알게 된 존자가 노파에게 말했다.
“할머니, 가난을 파세요”
“네! 가난을 팔라고요? 가난도 팔수 있습니까? 누가 가난을 사갈까요?”
“네, 아무도 안 사지요. 허나 제가 사겠습니다”
“음, 그러면 가난을 팔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네, 뭔가를 주시는 보시를 하셔야 합니다.”
“아이고, 스님. 그럼 그렇지, 나는 또 무슨 특별한 방법이라도 있나 했어요. 이보시오, 스님! 늙은 몸이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사는데 무얼 보시할 게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그건 그렇군요. 하지만 할머니! 저 우물에서 물 한 그릇 떠서 줄 수는 있겠지요?”
“아, 그거야 뭐 얼마든지 드리지요.”
“그렇다면 그렇게 하시지요.”
노파는 물을 떠서 존자에게 드렸다. 존자는 물 한 그릇을 다 마시고 말했다.
“할머니, 지금 할머니가 가난과 고통을 겪는 것은 과거에 남의 물건에 욕심만 낼 줄 알고 베풀어 주기를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고 마음에 욕심을 덜어내면 앞으로는 반드시 잘 사는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복을 지으려면 우선 부처님의 진리를 믿고 그 가르침대로 수행하는 스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보시라는 것은 금, 은 등의 보배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할머니께서 저에게 물 한 그릇을 주었듯이 마음에 담긴 정성을 베푸는 것입니다. 남에게 기쁨과 이로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값진 보시는 없습니다. 이렇게 정성어린 마음을 남에게 베푸는 것이 진정한 보시이며 그 마음을 베푸는 것이 바로 가난을 파는 것입니다. 지극한 마음을 남에게 베풀면 반드시 잘 사는 큰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존자의 말을 듣고 난 노파는 그제야 말 뜻을 알아듣고 합장하며 마지막 여생이라도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노파는 얼마 안 있다 죽어 도리천에 오백의 천녀를 거느린 천신으로 태어났다.
이 이야기에서 보듯이 마음으로 베풀고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보시이며 이것이 바로 가난을 파는 것이다. 스스로 가난하다고 해서 베풀기를 싫어하고 남의 것을 욕심내면 가난한 신세를 벗어날 기약이 없다. 부족한 가운데서도 형편껏 베푸는 마음을 연습해야 가난을 팔고 부자가 될 수 있다. 이른바‘구걸하는 마음이 습관화 하면 거지 종이 되고, 베푸는 마음을 습관화 하면 부자 주인이 된다’
그러므로 가난을 보시할 재물이 없을 경우 남이 보시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마음이라도 일으키면 된다. 남의 선행을 보고 기뻐하는 마음을 내는 것은 보시하는 것과 같은 공덕이 된다. 이는 아주 행하기 쉬운 일이니 누구라도 가능하다.
또한 재물이 없어도 나누고 베풀고 할 수 있는 보시가 있다.
몸으로 봉사하는 것이고, 마음으로 기뻐하는 것이고, 밝은 얼굴로 대하는 것이고, 미소를 전하는 것이고, 고운 말로 칭찬하는 것이고,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고, 집이 없는 사람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무조건 자리를 탐내거나 높은 산에 오르려고만 하지 말라!
훌륭한 일을 했다고 하는 유명한 이들 뒤에는 헤아릴 수 없는 숨은 공력과 일꾼들이 있었다. 나에게 중요한 일은 겸손하고 평화롭게 자족해 하며 잘 사는 방법을 생활화 하고 사회에 실천하는 일이다. 현재 위치에서 나누고 드릴 수 있는 일을 지극히 해 나갈 때 행복해 진다. 현재 나는 어떤지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