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거북이가 행복하다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때론 거북이가 행복하다

0 개 1,819 동진스님
현대 문화를 한마디의 말로 표현하라면 속도의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나 정보화 시대를 지향하는 지금, 속도는 누구에게나 풀어야 할 과제이며 화두로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아는 것만 가지고는 제대로 행세할 수 없다. 알되 누구보다 먼저 알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기계적인 아날로그 시대에서 전자적인 디지털 시대로 바뀌어 가면서 정보의 힘은 더욱 강조 되고 있다. 누가 정보를 더 많이, 더 정확하게 가지고 있느냐가 권력의 향방을 좌우한다. 근대의 역사를 보아도 정보에서 권력이 나온다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 더욱 중요한 것이 “속도”이다.
 
더 많이, 더 정확하게 아는 것은 이미 기본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누구보다 빨리”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키 포인트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속도의 경쟁은 문화 정보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일상생활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편리함”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비정한 속도의 전쟁 속에 휘말리게 되었고 심지어 어느 정도는 그것을 즐기는 경향도 나타나게 되었다. 마치 속도라는 마약의 수렁에 점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이런 우리들의 속도 지향적 성향은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인터넷 인프라 국가로 만들었고 국민 전체가 속도의 편리함이라는 단물에 푹 젖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사실 한국인들은 다른 민족에 비해 너무 조급하고 경쟁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생각 된다. 나 역시 한국인이므로 이러한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여기 뉴질랜드에서 다른 민족들을 볼 때 내 자신을 뒤 돌아 볼 때가 많다. 은행에서 일을 본다던가 혹은 여러 사람이 모인 행사장의 출입구에서 이 곳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줄을 서서 느긋하게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모습에서 한국에서의 우리들의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러한 국민적 성향은 여러 가지 오랜 역사적, 문화적 차이로 인해 생기는 것이어서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고 또한 한국인도 나름대로 긍정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외국인들이 부러워할만한 국민적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속도 지향적 성향은 지나친 면이 있다. 세계 최고의 교통사고율, 세계 최고의 이혼율, 세계 최고의 자살율….. 아무리 1등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이런 것으로 세계의 1등을 차지 하는 것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지 않을까? 이러한 문제의 근본에 바로 “우리의 속도 지향적 성향”을 두지 않을 수 없다. 물질적, 경제적 측면에서 속도는 분명히 중요한 요소이다. 수많은 외적의 침입으로 생명을 위협 받았고 좁은 땅덩어리에서 여러 사람과 부대끼면서 생존해 나가려면 어쩔 수 없이 남 보다 빨리 생각하고 남보다 빨리 판단해야 했으며, 남 보다 빨리 행동 해야 했던 우리들의 삶이 지금 우리의 모습을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와 같은 나이든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알고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국어책에 나오는 아주 간단한 내용의 우화 이지만 이 것이 그 시대를 살아 온 우리들에게는 가슴 깊은 곳에 상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속도 빠르게 달리는 토끼보다는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한발한발 걷는 거북이에게 더욱 마음이 가고 그래서 더 믿음을 주고 나아가 거북이가 정의(正義) 라는 상식의 결론을 내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정작 현실에서는 거북이가 설 자리가 아예 없었다. 그저 각자의 양심 깊은 곳에 감춰진 빛 바랜 일기장 같아서 누가 볼 까봐 자꾸만 숨기기에 급급한 약점(weak point)일 뿐이었다. 이렇게 우리들로부터 거북이가 멀어진 대신 영악하고 재빠른 토끼가 우리들의 삶 전체를 지배하고, 우리 모두를 달리기 경주판으로 내 몰아 그저 앞으로 앞으로만 내 닫는, 오로지 1등만이 축하 받고 대접받는 비정한 세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우리의 이런 속도 지향적 성향은 경제적으로는 세계가 괄목할 정도의 긍정적 발전을 가져 온 것도 사실이지만 이와 반대로 경쟁에서 소외되고 뒤쳐진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가져다 주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결코 멈추지 않는 속도의 전쟁 속에서 지치고 다친 이들을 돌보아 줄 사회적 안전장치가 아직은 너무 부족하고, 경주에서 승리한 소수의 권력, 자본엘리트들은 자기 도취감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 한국의 솔직한 모습일 것이다. 지금 한국의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부분의 사회병리 현상은 이러한 무한 속도경쟁의 그늘이며 시급하게 처방되고 치료 되어야 할 우리의 아픈 곳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럴 때 종교의 본래 기능과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아주 유효한 치료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들어 “힐링(Healing)”이라는 단어가 한국사회에 널리 회자되고 있는 모양이다. 이말은 상처 받은 사람들이 그 만큼 많다는 이야기일 텐데 이렇게 많은 이들이 아파하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 역시 마음을 이해하고 마음을 위로 할 수 있는 종교와 종교인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된다. 마음 치유 명상으로 유명한 틱낫한 스님이 이끄는 프랑스의 “플럼 빌리지”에는 곳곳에 종이 설치 되어 있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이 이 종을 치게 되면 그 종소리를 듣는 모든 이는 가던 길,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고개 숙여 자기를 뒤 돌아보며 지금 나의 존재를 인식하는 수행을 한다고 한다. 속도는 우리에게 편리함은 가져다 줄지 모르지만 절대로 행복에 이르는 길로 인도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예외 없이 죽음에 다다를 것이다. 굳이 시간을 재촉해서 그 죽음에 일찍 이르러야 할 이유가 당신에게 정말 있는지 묻고 싶다. “멈추면 비로서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정말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멈추어서 되돌아보자 거기에 우리의 참 행복이 있다.
 
게시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