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남자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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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옛날 남자 친구

2 3,957 NZ코리아포스트
나의 20대는 박스 안에 갇혀 있었다. 짐 정리를 하다가 나는 곰팡내 나는 눅눅한 박스 안에 들어 있던 나를 끄집어냈다. 뭐라고 되지도 않는 말들을 씨부려 놓은 원고 뭉치, 졸업 앨범, 나의 졸고가 실려 있는 교지 등이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는 순간, 나는 당혹스러웠다. 군살도 없고 반질한 피부에 그늘 없는 웃음의 저 여자가 나란 말인가? 더벅머리 남자친구들하고 살갑게 어깨 동무를 했군. 저런저런! 밤을 새며 원고지 칸칸마다 만년필로 한자한자 써넣었던 그 일도 내가 했다고? 교지 맨 뒷장 후기에는 ‘Crazy days of fall’이라면서 5백년도 더 된 명륜당의 노란 은행잎이 나를 더 미치게 만든다고 썼다. 졸업반 때 나는 사회에 내던져지는 불안감이 무척 컸었다. 누가 추억은 아련하다고 했던가. 옛날은 눈 앞에 잡힐 듯 생생했다.

녀석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때 모이기만 하면 깍두기 안주에 막걸리를 마셔댔는데, 지금 만나면 그때처럼 막걸리 한 잔 하고 서로 어깨를 걸고 고래고래 노래 부를 수 있을까. 한국에 막걸리 붐이 불고 있다는데---. 그 시절과 친구들이 가슴에 사무쳤다.

하루, 이틀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박스를 열지 말았어야 했다. 이집트 왕조의 무덤을 파헤친 이들이 하나, 둘 죽어간 미스터리가 깨달아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투탕카멘 왕이 뱀의 소굴을 지나서 불의 동굴을 뚫고 생명의 감로수가 흐르는 강에 도달해서 그 물을 마시려는 순간, 무덤이 열리고 한 줄기 빛이 왕의 눈에 화살처럼 꽂혔다. 왕은 물 그릇을 떨어뜨렸다.

“오! 나의 영생을 방해하고 비밀을 파헤치는 자 누구냐. 천벌을 내리리라.”

하지만 나의 손길은 박스를 자주 열었다. 리더십이 뛰어났던 K, 의리파 J, 위트와 재치가 넘치는 유쾌한 H 등의 사진을 보면 나는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중국집 골방에 모여 이념 서적을 몰래 읽고 토론하던 일, 입대하는 친구를 위해 함께 밤을 지새며 입영 전야를 불러주던 날들, 터덜거리는 시골 버스 바닥에 앉아서도 즐거웠고 춘천가는 기차를 타고 MT를 떠나기도 했는데---.

그렇게 매일 모여 지내다가 우리는 졸업을 했고 갑자기 헤어졌다. 녀석들은 입대 하거나 대학원엘 가고 나는 직장 생활을 하다가 결혼을 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결혼 축하 카드를 보내온 K. 나이를 먹어간다는 증거는 가정법이 늘어간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K랑 결혼했더라면---?

“옛 남친을 만나면 얘기도 잘 통하고 좋을 수도 있는데, 그 아내가 싫어할 걸?”

H언니가 말했다. 나이 먹어간다는 증거 또 하나는 우리에게 제약이 많아진다는 것.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내가 사랑해마지 않았던 영화가 참혹하게 일그러져 버렸던 사실을 깨달았다.

이태리 영화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은 나의 베스트 영화다. 인생의 꿈과 사랑, 희망을 다정하고 친밀하게 이야기 하면서 그것의 무상함도 조곤조곤 보여준 우리네 얘기다. 배경은 이탈리아 시칠리아 작은 섬, 2차 대전 직후다. 어린 토토의 아버지는 전쟁에 나갔고 토토의 엄마는 아이들을 돌보며 가난하게 살고 있다. 토토는 돈 몇 푼을 들고 아기 우유를 사러 가다가 항상 옆으로 새는데, 그곳이 낡은 극장 ‘Cinema Paradiso’다. 그곳에서 영사기를 돌리는 늙은 기사 알프레도는 토토가 귀찮기도 하지만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나이 차이를 넘어 두 사람은 우정을 쌓아가는데--- .

토토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엘레나라는 청순하고 이지적인 소녀를 사랑하게 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뉘 집 처마 밑에 서서 불 켜진 엘레나의 2층 창문을 바라보는 토토. 그러나 창문은 한 번도 열리지 않고 ---. 엘레나의 아버지는 토토를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엘레나를 데리고 마을을 떠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키스 & 키스의 파노라마다. 인간이 만들어 낸 최고의 언어이자 몸짓은 키스가 아닐까. 말이 뭐 필요한가. 그 옛날 신부님이 종을 울리면 잘라내야 했던 남녀상열지사-키스신만을 모아둔 필름이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 행복해지고 싶으면 You Tube에서 엔리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시네마 천국’ OST를 들어보라. 웃으면서 눈물 흘리는 토토처럼 나도 그렇게 울면서 웃게 된다.

나는 영화관에서 ‘시네마 천국’을 두 번 보았다. ‘시네마 천국’이 상영되고 한 두해가 지나서였던가. ‘뉴 시네마 천국’이 들어왔다. 영화사에서는 엘레나와 토토가 재회한다고 대대적으로 광고를 했다. 나는 토토를 만나러 가는 엘레나의 심정으로 허둥거리며 영화관엘 갔다. 알프레도의 장례식 때 고향을 찾은 토토가 엘레나와 재회했다. 고작 15분 정도. 이십여년 만에 만나는 토토와 엘레나는 완전 중년이었다. 두 사람은 차 안에서 반갑게 포옹도 하고 키스도 나눈다. 아, 나는 기겁했다. 쿵쾅거리던 가슴이 폭삭 무너졌다. 이제 토토와 엘레나의 번개처럼 부딪치던 애틋하고 뜨거운 눈빛을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봉인된 세월은 봉인 안에서만 생명력을 누릴 수 있는 것이련가. 사족(蛇足)은 작품을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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쌔엠
지난 건 다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youngluv
네... 저도 그래서... 옛날 사람들을 만나는게 망설여지더군요...
작가님의 투탕가멘왕의 비유와 시네마 천국의 예는 매우 적절한 이해를 돕는다고 느끼며 글을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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