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코너(Blind Corner)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블라인드 코너(Blind Corner)

0 개 2,701 코리아포스트
우리는 아름다운 이 세상에 소풍을 나온 것일까? 일찍이 천상병 시인은 그의 시 '귀천(歸天)'에서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하늘로)가서, 참으로 아름다웠다고 말하겠노라, 읊조렸다.. 그 시행의 끝에는 말 줄임표가 툭툭 찍혀 있다. 가난과 고통, 격동의 모진 세월 속에서 겪은 모든 것들을 차마 필설로 표현 할 수 없어서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웠다니, 이승의 삶은 얼마나 쓸모 있는 것인지. 우리는 소풍 나와서 김밥도 먹고 계란도 까먹고 사이다도 들이키고 보물찾기도 하면서 좋은 날들을 보내기도 했다, 어쩌다가.

원래는 오뉴월 애호박처럼 여린 사람이었지만 세파를 헤치느라 강퍅해진 우리네 시선으로 보면 인생은 험준한 산길이고 가시밭길이며 늪이다. 시인의 달관은, 그래서 우리가 감히 넘보아지지 않는 것이다.

히말라야를 오르는 일이 어디 전문 산악인만이 해내는 일인가. 살아가는 일은 눈보라가 휘몰아 치는 설산(雪山)의 자일에 매달려 구조를 기다리는 일이기도 하고 동상에 걸린 손발을 잘라내는 일이기도 하다. 어떤 날은 베이스 캠프가 폭풍우에 날아가지 않도록 텐트 폴더를 부여잡고 온 밤을 새우면서, 텐트와 함께 날아갈 것인지 버틸 것인지, 눈을 부릅뜨고 삶과 죽음의 얼굴을 번갈아 보는 날들도 있다. 수 차례의 시도 끝에 정상을 정복했지만, 하산 길에 크레바스에 빠져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거나, 눈빛에 눈이 멀어 자일에 매달린 채 죽어가기도 하는 것, 그렇게 허망한 것이 인생이다.

산행은 인생과 꼭 닮아 있어서 나는 자주 산을 떠올린다. 운무(雲霧)가 내리 깔린 산의 신령스런 정기를 경외한다. 산등성이, 골짜기, 봉우리로 구비구비 이어지는 산들의 긴 맥은 징글징글한 인생살이 같아서 부여 안고 싶다. 어느 날은 인생의 정수가 응집된 시어(詩語)같은 산 사람들의 말을 음미하면서 그 치열함과 스릴과 고뇌와 허망함에 온 몸을 내던져 보기도 한다.

자일에 몸을 의지한 채 손톱 만큼이라도 튀어나온 돌 부리가 있는지 더듬더듬 찾아 헤매다가 안되어서 암벽의 틈 사이에 손이나 발을 넣어 산을 오르는 재밍(jamming). 살아가면서 이런 궁여지책의 순간과 자주 맞닥뜨린다.

"하산하면 이 에델바이스를 주면서 그녀에게 프로포즈 할 거--"

지척에서 대화를 나누던 동료가 마술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과 빙하로 덮여 위장된 천길 계곡 크레바스(crevasse)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인생에는 크레바스 식의 트릭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자일로 서로의 몸을 묶어 공동 운명체가 되어 함께 등반하는 기술은 안자일렌(anseilen)이다. 이때 누가 하나 바보처럼 굴면 다 죽는다. 크레바스의 이편과 건너편에 자일을 연결해서 크레바스를 건너는 것은 티롤리언 브리지(tyrolean bridge)다. 아! 생각만해도 아찔하고 어느 일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어쩜 한결같이, 깨어 있지 않으면 조난 당하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경고와 암시가 숨어 있는 말들이라서 나는 진저리쳤다.. '소풍'처럼 한숨 돌리게 해 줄 말을 찾던 나는 왠 걸, '블라인드 코너(blind corner)'라는 말 앞에서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블라인드 코너'는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도 짐작할 수도 없는 삶의 촌각(寸刻), 삶의 오리무중(五里霧中)이 완벽하게 집약된 말이다.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도 힘든 인생인데 눈을 감고 살아야 한다니 ---.

자일에 의지해 암벽에 매달려 있는 사람의 시야는 극히 한정되어 있다. 오로지 바위만을 대면한 채 암벽의 모퉁이를 돌기 위해 발을 옆으로 내딛는 순간, 상상해보라. 숨이 훅, 멈춰지지 않는가. 그 모퉁이를 돌아가면 무엇이 있나, 무슨 광경이 나타날까? 모퉁이를 돌아가면 낭떠러지가 나올까, 킹콩 같은 설인(雪人)이 큰 입을 벌리고 포효하고 있을까, 낙석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지나 않을까, 믿고 내딛은 발 아래 바위가 모래처럼 부스러진다면? 가시 나무가 눈을 푹 찔러 댈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모퉁이를 돌면--- 다음 모퉁이는 꼭꼭 숨어 있고, 그 모퉁이를 돌면 어떤 음모가 숨어 있을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알 수 없는 나날들을 하루하루 살 수 밖에 없는 인생들---. 우리가 정치에 의지하며 살고 있는 이유는 태생적으로 암흑일 수 밖에 없는 삶에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선각자가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는지. 그렇다면 좋은 정치란 무엇인지 답이 나왔다.

뉴질랜드의 정치는 큰 희망과 비전을 주진 않지만, 크게 절망할 일도 없는 그저 그런 상황이다. 대한민국은? 하루하루를 블라인드 코너를 향해 발을 내딛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뒤, 처음엔 믿기지 않다가 뒤늦게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관심을 좀 갖고, 그리고 나는 수 차례 눈물을 흘렸다. 운구 행렬이 국민들에게 둘러싸여 앞으로 나가지 못할 때, 내 목에서 꺽꺽 통곡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나는 오래도록 나의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새앙쥐도 먹을 것이 없어 울고 간다는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셀 수 없는 크레바스를 건넜다. 안자일렌을 하다가 배신을 당하기도 했고, 티롤리언 브리지로 남과 북을 연결하기도 했다. 휘어지기 보다는 부러지기를 자처했던 그는 바보처럼 크레바스가 있는 곳임을 알면서도 그 위를 걷기도 했다. 약지 못한 남자는 고단하고 긴 산행을 끝내고 손녀딸과 '소풍' 다니는 일을 즐겼는데, 불어 닥친 블리자드(blizzard)로 그 소풍길을 짧게 끝내야만 했다. 사람들은 그와 함께 했던 산행과 소풍길이 행복했었노라고 이제야 깨닫는 듯 싶다. 그도 하늘나라에서 '참으로 아름다웠던 소풍길' 이었다고 말하길, 선각자였던 그에게 바보들이 감히 소망한다.

ⓒ 뉴질랜드 코리아포스트(http://www.koreapost.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보이지 않는 감옥

댓글 3 | 조회 2,816 | 2010.06.22
호주 시드니의 ‘경제평화 연구소 (IEP)’는 지난 8일 ‘2010 세계 평화 지수(GPI)’를 발표했다. 전쟁이나 사회 정치적 갈등, 테러 위험, 폭력 범죄 등… 더보기

그 여자의 식탁

댓글 2 | 조회 2,813 | 2008.11.11
여행의 백미는 그 지역의 별미 음식을 맛보는 것이 아닐까? 나는 여행의 추억이 혀에 남아 있다가 주체할 수 없는 감흥으로 가끔 되살아 난다. 북경 천안문 광장 앞… 더보기

[378] 타마릴로가 익는 계절

댓글 0 | 조회 2,787 | 2008.08.13
수년 전 집을 사기 위해 발품을 팔고 다닐 때였다. Open home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어느 집에 들어서는 순간, 마당 한쪽에 붉은 열매를 조랑조랑 매달고 있… 더보기

무지개 나라

댓글 1 | 조회 2,758 | 2009.12.22
2010년 월드컵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이하 남아공)에서 개최된다. 뉴질랜드는 11월 14일, 바레인과의 예선전에서 1대 0으로 승리하면서 본선 진출이 확정됐다. … 더보기

살얼음판 위의 여자들

댓글 3 | 조회 2,738 | 2012.03.27
인간의 삶과 기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래서일까? 빙하가 녹아내리고 북극곰들은 익사하고, 우리네 삶도 살얼음판을 걷는 듯 아슬아슬하다. 얼… 더보기

도대체 누가?

댓글 0 | 조회 2,731 | 2009.03.24
그리스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여자 한 번 만나지 못하고 외롭게 지내던 중, 대리석으로 자신의 여인을 조각한다. 그는 그 조각상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 더보기

희망의 이유

댓글 0 | 조회 2,717 | 2008.10.30
침팬지의 어머니라 불리는 제인 구달(Jane Goodall)박사가 지난 18일 웰링턴 동물원에서 강연회를 가졌다. 이에 앞서 17일, TV3의 앵커맨 Campbe… 더보기

현재 블라인드 코너(Blind Corner)

댓글 0 | 조회 2,702 | 2009.06.09
우리는 아름다운 이 세상에 소풍을 나온 것일까? 일찍이 천상병 시인은 그의 시 '귀천(歸天)'에서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하늘로)가서, 참으로 아름… 더보기

3무(無)의 나라

댓글 2 | 조회 2,699 | 2009.08.25
어느 날 거실에 걸려 있는 동그란 벽 시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초침이 정확히 60번 움직이면 분침이 어김없이 1분을 가 줄까? 사실이었다. 그런데 초침은 약간… 더보기

소통해야 성공한다

댓글 2 | 조회 2,697 | 2011.11.09
10월 21일 발표된 ‘세계은행(IBRD)기업 환경 평가’에서 뉴질랜드가 3위(183개국 중)를 차지했다. 창업 소요기간, 인허가 관련 행정… 더보기

끽다거 그리고 점다래

댓글 0 | 조회 2,687 | 2009.01.13
내가 지리산 자락 화개(花開)에 머무른 것은 잘한 일이었다. 화개 버스 정류소에 가면 구례, 하동, 부산, 남해, 서울 가는 버스들이 시간 맞춰 들어온다. 나는 … 더보기

[384] 제로 톨레랑스(Zero Tolerance) - Ⅰ

댓글 0 | 조회 2,686 | 2008.07.08
범죄란 '사회의 질병'이다. 질병은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만약, 어쩔 수 없이 병이 발생했다면 주저없이 완치시키고, 아예 질병이 얼씬 못하도록 체질과 환경을 … 더보기

Spring In The Box

댓글 1 | 조회 2,658 | 2009.11.24
내가 이사 간다고 하자 친구 S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치커리는 어떡하구---.” 그녀가 어디선가 얻어다가 내 집에 심어 주었던 치커리는 흔히 구할 수 있는 종… 더보기

어깨 힘 좀 빼시죠 ? - 베이징 올림픽 유감

댓글 0 | 조회 2,655 | 2008.09.10
베이징 올림픽 기간 내내 행복하셨는지? 자유, 평등, 선의의 경쟁이 만들어 내는 명승부와 진기록, 숨겨진 이야기들에 박수 치며 감동하고 눈물 흘렸는지? 나는 불편… 더보기

The Gold Rush

댓글 1 | 조회 2,625 | 2009.08.11
입안에서 딱딱하고 까슬까슬한 것이 씹혔다. 꺼내보니 금붙이였다. 이게 어디서 나왔지? 나는 입을 벌리고 거울을 보았다. 금으로 때웠던 어금니가 뻥 뚫려 있었다.7… 더보기

별 일도 아니네

댓글 1 | 조회 2,622 | 2009.05.26
부부는 전생에 원수였다고 한다. 살다보면 상대방의 터럭 하나, 뒤통수, 그림자 조차 보기 싫을 만큼 오만 정(情)이 다 떨어질 때도 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 더보기

낯설지 않네, 대롱대롱 매달린 돌멩이

댓글 4 | 조회 2,605 | 2011.09.28
뉴질랜드 최초의 수도였던 Russel의 원래 이름은 ‘korora reka’. 마오리어로 korora는 펭귄, reka는 맛있다,라는 뜻. 마오리 늙은 족장은 앓… 더보기

[366] 비상 배낭 꾸리기

댓글 0 | 조회 2,603 | 2007.10.09
몇달 전, 우체통에서 'Household Emergency Checklist'라는 제목의 종이쪽지를 발견했다. 비상사태에 대비해 비상 용품을 준비해 놓으라는 것이… 더보기

[381] 행복한 밥상을 위한 투쟁 (Ⅱ)

댓글 0 | 조회 2,601 | 2008.05.27
미식 축구 선수였던O.J.Simson은 94년, 전처와 그녀의 동거남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지문, 혈흔, DNA, 발자국, 모발 등 CSI 수사의 모… 더보기

지지고 볶고 끓여주세요!

댓글 1 | 조회 2,594 | 2012.05.09
그보다 더 시끄러울 수는 없었다. 한국에 머무는 두어 달 동안 나는 왁자지껄한 소음의 소용돌이 속에 내던져졌다. 3월, 핵안보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몇날 … 더보기

존 키의 선물

댓글 1 | 조회 2,593 | 2012.04.11
거대한 버섯 모양의 구름을 형성하며 폭발하는 핵폭탄의 위용은 실로 상상을 넘어선다. 사방 수십 킬로 면적이 수십 년에서 수만 년 죽음의 땅으로 변하는 것은 물론,… 더보기

女幸 프로젝트

댓글 0 | 조회 2,586 | 2009.01.28
세상 참 많이 좋아졌구나! 한국에 와 있는 두어 달 동안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편리함, 섬세한, 친절함이 사회 구석구석에 튼실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중이었… 더보기

보물섬을 지켜라

댓글 4 | 조회 2,579 | 2011.10.11
마오리 조상 Kupe가 발견한 보물섬에서 마오리들이 수수천년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1642년 네덜란드의 아벨 타즈만은, 자기가 차린 밥상이라며 숟가락을… 더보기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울고 지내고저

댓글 1 | 조회 2,558 | 2009.02.25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 밤에 나는 깨닫는다. 나는 참 바보구나, 그리고 참 나쁜 사람이구나!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많은 사람들 가슴에 … 더보기

[351] 너나 잡수세요!

댓글 1 | 조회 2,554 | 2007.02.26
돼지 리오와 소 무피우스가 주연으로 나오는 만화 영화를 보았다. 영화 매트릭스(MATRIX)를 패러디한 미트릭스(MEATRIX)가 바로 그것. 무피우스는 리오에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