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일도 아니네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별 일도 아니네

1 2,622 코리아포스트
부부는 전생에 원수였다고 한다. 살다보면 상대방의 터럭 하나, 뒤통수, 그림자 조차 보기 싫을 만큼 오만 정(情)이 다 떨어질 때도 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속담은 심각한 내상(內傷)을 간과한 말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치유되지 않는 상처가 결혼 생활의 훈장처럼 가슴에 선명하지 않은가?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선혈이 낭자한 부부싸움이라 해도 시작은 사소하다는 것이다. 심하게 얽혀서 도저히 실마리를 찾아낼 수 없는 실타래도 처음엔 한 두 가닥의 사소한 꼬임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누가 모르랴.그럼에도 멈추지 못하고---, 엉클어뜨린다.

마이클 더글라스(올리버)와 캐서린 터너(바바라)가 부부로 등장했던 영화 '장미의 전쟁'에서도 시작은 아주 사소해 보였다. 중요한 계약서로 파리를 때려 잡는 남편의 행동에 뚜껑이 열린 아내가 선전포고를 했다. 첫 눈에 반해 열렬히 사랑하고 결혼한 올리버와 바바라. 변호사로 승승장구하는 올리버는 아이 낳고 집안에서 군내 피우며 살고 있던 바바라의 욕구와 소외감을 이해하지 못했다. 바바라와 올리버의 싸움은 자존심 대결로 치닫고, 집안은 전쟁터가 되고, 부부는 광기 어린 싸움 끝에 죽음에 이른다.

은희경의 소설에 이런 말이 나온다. 당사자들에게는 심각한 비극적 상황이 제 3자의 눈에는 희극으로 비친다고. 비극과 희극은 동전의 앞 뒷면 같고 백지 한 장 차이도 나지 않는 것, 혹은 보는 관점에 따라 비극적 상황이 희극적 상황일 수도 있기 때문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들의 심각하지만 유치하고 소모적인 싸움에 어이가 없기도 하고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가령 남편 올리버가 오븐을 열고 아내가 만들어 놓은 요리에 오줌을 싼다거나, 서로의 차를 부수어 버린다거나---. 집이 저택이라서 두 사람의 전쟁터는 넓고 요새도 많아 싸움은 점입가경, 미친 상황으로 치닫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은 도망가고 쫓기다가 높은 천정의 샹들리에에 매달리게 되고, 대롱대롱 위험하게 흔들리면서도 두 사람은 증오의 시선으로 상대를 물어뜯는다. 결국 화려한 샹들리에는 증오의 치열함을 견디지 못하고 끊어져 박살이 나고, 두 사람은 대리석 바닥에 떨어져 죽어간다. 나는 그 때 위안을 받았다. 적어도 내 집에서 저런식으로 죽어갈 일은 없겠구나. 샹들리에와 높은 천정과 대리석이 없는 오두막집이므로.

그들의 전쟁과 죽음은 너무 심각해서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지만, 관객들은 올리버와 바바라의 대리전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심지어 그렇게 한 번 막장까지 가보는 부부싸움을 희망하는 은밀한 희망이 싹트기도 했다. 그것이 감독의 의도였으리라. 분명 사랑이 식고, 가정이 파탄 나고 죽어간다는 줄거리는 비극이다. 그러나 뜨거운 사랑의 피가 식으면 자멸해야 한다는 명제를 의무적으로 실천하는 그 '어리석음'은 희극이다. 비극의 바닥은 결국 희극이라는 감독의 숨겨진 의도는 은희경의 말과도 통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경계가 묘연한 희비극은 우리 인생의 도처에 깔려 있다. 가령 여자 A가 평생 쓰지 않던 모자를 뒤집어 쓰고 왔길래 의아해 했더니,그녀는 가발, 안경 등 소품을 보여 주었다. 남편에게 젊고 연약한 애인이 생겼는데, 그 뒤를 밟기 위한 변장용이라고 했다. 어때, 못 알아 보겠지. 울화통이 터지자 열기를 뽑느라고 여자 A는 모자를 벗었다가 다시 푹 눌러 썼다.나는 푸훗 웃음이 터졌다.

- 별 일도 아니네. 그러다 돌아오겠지 뭐. 안 돌아오면 말구.-

여자 B는 밤 늦게 들어와서 라면을 끓여 달라는 남편의 요청에 살짝 짜증이 났다.

"잠자리에서 나와 손 적시고, 김치 썰랴 파 다듬으랴--- 냉장고 열었다 닫았다--- 밤에 그 번잡을 떨어야 하냐구!"

그래 맘 넓은 내가 참자. 양파, 버섯, 계란도 넣고 정성껏 끓였는데, 남편이 슬그머니 주방으로 오더니 라면 봉지를 보더란 것이다. "이거---, 유효기간 지났잖아!"

여자 B, 싱크대에 라면을 확 쏟아 부어 버리고

"당신 혼자 120세까지 살아---!!!" 절규하고 버선발로 집을 나왔단다. 나는 또 피식 웃음이 나왔다.

- 별 일도 아니네 -

사방 십 리나 되는 바위에 40년 마다 선녀가 내려와 날개 옷으로 바위를 스치고, 그런 식으로 바위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1겁(刧)이고, 그런 세월을 억번이나 기다려 만난 인연이 부부의 연이다. 가정이 평안해도 타향살이에서 오는 외로움과 소슬함이 시시때때로 몰려오는데, 가정마저 쪽박처럼 깨진다면---. 원수에게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것 같지만,인연의 끈이 떨어지고 나면 억겁의 세월을 다시 떠돌아야 될 것임을, 인간의 섭리로는 도저히 이해 못할 인연의 고리를 그저 믿는 수 밖에.

내가 요즘 즐겨 던지는 화두는 '별 일도 아니네'다. '별 일도 아니네' 중얼거리면 너그러워지고 모난 부분이 동글게 다듬어지는 느낌이다.

설령 원수 같은 마누라 서방님이라고 해도 자존심, 고집, 시시비비 모두 내던지고 투항해야만 뉴질랜드에서는 행복해 질 수 있다. 오월동주(吳越同舟)의 묘책을 떠올리며, 비상시 적군과 아군이 피아(彼我)를 따지지 않고 하나가 되어 난국을 헤쳐 나가는 것처럼.

ⓒ 뉴질랜드 코리아포스트(http://www.koreapost.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쌔엠
부부는 "사랑"입니다.

증거는 "자식"입니다.

동물의 왕국을 한번만

보시면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감옥

댓글 3 | 조회 2,817 | 2010.06.22
호주 시드니의 ‘경제평화 연구소 (IEP)’는 지난 8일 ‘2010 세계 평화 지수(GPI)’를 발표했다. 전쟁이나 사회 정치적 갈등, 테러 위험, 폭력 범죄 등… 더보기

그 여자의 식탁

댓글 2 | 조회 2,815 | 2008.11.11
여행의 백미는 그 지역의 별미 음식을 맛보는 것이 아닐까? 나는 여행의 추억이 혀에 남아 있다가 주체할 수 없는 감흥으로 가끔 되살아 난다. 북경 천안문 광장 앞… 더보기

[378] 타마릴로가 익는 계절

댓글 0 | 조회 2,789 | 2008.08.13
수년 전 집을 사기 위해 발품을 팔고 다닐 때였다. Open home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어느 집에 들어서는 순간, 마당 한쪽에 붉은 열매를 조랑조랑 매달고 있… 더보기

무지개 나라

댓글 1 | 조회 2,760 | 2009.12.22
2010년 월드컵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이하 남아공)에서 개최된다. 뉴질랜드는 11월 14일, 바레인과의 예선전에서 1대 0으로 승리하면서 본선 진출이 확정됐다. … 더보기

살얼음판 위의 여자들

댓글 3 | 조회 2,740 | 2012.03.27
인간의 삶과 기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래서일까? 빙하가 녹아내리고 북극곰들은 익사하고, 우리네 삶도 살얼음판을 걷는 듯 아슬아슬하다. 얼… 더보기

도대체 누가?

댓글 0 | 조회 2,731 | 2009.03.24
그리스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여자 한 번 만나지 못하고 외롭게 지내던 중, 대리석으로 자신의 여인을 조각한다. 그는 그 조각상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 더보기

희망의 이유

댓글 0 | 조회 2,717 | 2008.10.30
침팬지의 어머니라 불리는 제인 구달(Jane Goodall)박사가 지난 18일 웰링턴 동물원에서 강연회를 가졌다. 이에 앞서 17일, TV3의 앵커맨 Campbe… 더보기

블라인드 코너(Blind Corner)

댓글 0 | 조회 2,702 | 2009.06.09
우리는 아름다운 이 세상에 소풍을 나온 것일까? 일찍이 천상병 시인은 그의 시 '귀천(歸天)'에서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하늘로)가서, 참으로 아름… 더보기

3무(無)의 나라

댓글 2 | 조회 2,700 | 2009.08.25
어느 날 거실에 걸려 있는 동그란 벽 시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초침이 정확히 60번 움직이면 분침이 어김없이 1분을 가 줄까? 사실이었다. 그런데 초침은 약간… 더보기

소통해야 성공한다

댓글 2 | 조회 2,698 | 2011.11.09
10월 21일 발표된 ‘세계은행(IBRD)기업 환경 평가’에서 뉴질랜드가 3위(183개국 중)를 차지했다. 창업 소요기간, 인허가 관련 행정… 더보기

끽다거 그리고 점다래

댓글 0 | 조회 2,688 | 2009.01.13
내가 지리산 자락 화개(花開)에 머무른 것은 잘한 일이었다. 화개 버스 정류소에 가면 구례, 하동, 부산, 남해, 서울 가는 버스들이 시간 맞춰 들어온다. 나는 … 더보기

[384] 제로 톨레랑스(Zero Tolerance) - Ⅰ

댓글 0 | 조회 2,686 | 2008.07.08
범죄란 '사회의 질병'이다. 질병은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만약, 어쩔 수 없이 병이 발생했다면 주저없이 완치시키고, 아예 질병이 얼씬 못하도록 체질과 환경을 … 더보기

Spring In The Box

댓글 1 | 조회 2,658 | 2009.11.24
내가 이사 간다고 하자 친구 S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치커리는 어떡하구---.” 그녀가 어디선가 얻어다가 내 집에 심어 주었던 치커리는 흔히 구할 수 있는 종… 더보기

어깨 힘 좀 빼시죠 ? - 베이징 올림픽 유감

댓글 0 | 조회 2,655 | 2008.09.10
베이징 올림픽 기간 내내 행복하셨는지? 자유, 평등, 선의의 경쟁이 만들어 내는 명승부와 진기록, 숨겨진 이야기들에 박수 치며 감동하고 눈물 흘렸는지? 나는 불편… 더보기

The Gold Rush

댓글 1 | 조회 2,626 | 2009.08.11
입안에서 딱딱하고 까슬까슬한 것이 씹혔다. 꺼내보니 금붙이였다. 이게 어디서 나왔지? 나는 입을 벌리고 거울을 보았다. 금으로 때웠던 어금니가 뻥 뚫려 있었다.7… 더보기

현재 별 일도 아니네

댓글 1 | 조회 2,623 | 2009.05.26
부부는 전생에 원수였다고 한다. 살다보면 상대방의 터럭 하나, 뒤통수, 그림자 조차 보기 싫을 만큼 오만 정(情)이 다 떨어질 때도 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 더보기

낯설지 않네, 대롱대롱 매달린 돌멩이

댓글 4 | 조회 2,607 | 2011.09.28
뉴질랜드 최초의 수도였던 Russel의 원래 이름은 ‘korora reka’. 마오리어로 korora는 펭귄, reka는 맛있다,라는 뜻. 마오리 늙은 족장은 앓… 더보기

[366] 비상 배낭 꾸리기

댓글 0 | 조회 2,603 | 2007.10.09
몇달 전, 우체통에서 'Household Emergency Checklist'라는 제목의 종이쪽지를 발견했다. 비상사태에 대비해 비상 용품을 준비해 놓으라는 것이… 더보기

[381] 행복한 밥상을 위한 투쟁 (Ⅱ)

댓글 0 | 조회 2,602 | 2008.05.27
미식 축구 선수였던O.J.Simson은 94년, 전처와 그녀의 동거남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지문, 혈흔, DNA, 발자국, 모발 등 CSI 수사의 모… 더보기

지지고 볶고 끓여주세요!

댓글 1 | 조회 2,595 | 2012.05.09
그보다 더 시끄러울 수는 없었다. 한국에 머무는 두어 달 동안 나는 왁자지껄한 소음의 소용돌이 속에 내던져졌다. 3월, 핵안보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몇날 … 더보기

존 키의 선물

댓글 1 | 조회 2,593 | 2012.04.11
거대한 버섯 모양의 구름을 형성하며 폭발하는 핵폭탄의 위용은 실로 상상을 넘어선다. 사방 수십 킬로 면적이 수십 년에서 수만 년 죽음의 땅으로 변하는 것은 물론,… 더보기

女幸 프로젝트

댓글 0 | 조회 2,588 | 2009.01.28
세상 참 많이 좋아졌구나! 한국에 와 있는 두어 달 동안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편리함, 섬세한, 친절함이 사회 구석구석에 튼실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중이었… 더보기

보물섬을 지켜라

댓글 4 | 조회 2,582 | 2011.10.11
마오리 조상 Kupe가 발견한 보물섬에서 마오리들이 수수천년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1642년 네덜란드의 아벨 타즈만은, 자기가 차린 밥상이라며 숟가락을… 더보기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울고 지내고저

댓글 1 | 조회 2,560 | 2009.02.25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 밤에 나는 깨닫는다. 나는 참 바보구나, 그리고 참 나쁜 사람이구나!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많은 사람들 가슴에 … 더보기

[351] 너나 잡수세요!

댓글 1 | 조회 2,554 | 2007.02.26
돼지 리오와 소 무피우스가 주연으로 나오는 만화 영화를 보았다. 영화 매트릭스(MATRIX)를 패러디한 미트릭스(MEATRIX)가 바로 그것. 무피우스는 리오에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