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짜기 불빛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산골짜기 불빛

0 개 2,354 뉴질랜드 코리아타임스
나는 지리산 골짜기로 토꼈습니다. 비속어를 사용해 죄송하지만 가끔은 비속어 한 마디에 내 영혼이 카페인이라도 들이킨 듯 반짝 빛납니다.

내 방 앞을 흐르는 강물은 이쪽 산과 저쪽 산을 뚝 갈라 놓습니다. 나는 방문을 열고 강물 저 편을 바라봅니다. 내가 짊어졌던 번뇌, 노여움, 근심을 모두 내려놓고, 레테의 강을 건넌 이처럼 나는 이편에서 바보처럼 실실 웃습니다. 너무 홀가분해서 내 자신이 있는지 없는지 애매모호해 졌습니다. 내 방 앞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가늘게 흐르는 강줄기와 누렇게 쇤 갈대를 보다가 눈물이 났습니다. 햇볕이 갈대 위에 하얗게 무연(無然)히 부서져 내려서, 강 건너 내려놓은 나의 번민이 가지 않고 소나무 가지에 걸려서 나를 집요하게 바라보고 있어서, 내 영혼이 독하질 못해서---

윤동주의 '자화상'처럼 우물 속에 가여운 내가 나를 빤히 보듯이, 강 건너에서 차가운 강바람을 맞으며 나를 빤히 보고 있는 번뇌는 또 다른 나였습니다. 산골짜기에 쳐 박혀 있다고 번뇌가 쉽게 날 포기하는 건 아닌가 봅니다.그래도 강 건너 번뇌는 많이 순해졌습니다. 활화산처럼 맹렬히 타오르고 용암처럼 붉게 부글부글 끓던 번뇌는 서서히 사화산이 되어 잿빛 준엄한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네요. 한 번만 눈 감아 주시면 안되나요? 애원하지만, 운명은 힘들다고, 아프다고 봐주는 법이 없지요.

누가 인간들의 폭력성을 성토하나요? 그 폭력적 가학성을 인간은 어디에서 배웠을까요? 운명으로부터 배운 것이 아닐른지요. 낭떠러지 위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등 떠밀어 도와주는 친절함에 정말 진저리가 나지 않습니까? 운명의 얄궂음을 물리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면서 힘들어 할 때 나는 더욱 얄궂은 운명의 덫에 걸린 이들이 있음을 생각하며 지친 영혼을 추스립니다.

참, 그러고 보니 며칠째 연이 언니에게 못 가 봤네요. 오늘은 항암 주사를 맞고 와서 꼼짝 못하고 골방에 누워 있는 연이 언니에게 가 봐야겠습니다. 산길을 걸어가야 하니까 옷을 든든히 입어야지요. 서울에서 지리산으로 떠날 때 엄마가 챙겨 주신 빨간 내복은 목이 죽 늘어나 있습니다. 그 핏빛 빛깔이 엄마의 허무함, 슬픔, 병약함과 꼭 같아서 나는 슬픔이 복받칩니다.

겨울 들길을 따라 갈대밭을 지나 계곡을 거슬러 가면서 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 구성지게 뽑다가 강물이 여울지는 소리를 들으며 '개여울'을 부릅니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날마다 개여울에 주저 앉아서 --- 감정은 풍부한 데 목소리가 영 안 따라주는군. 나이를 먹어 가면서 혼자 씨부렁거리고 혼자 노래하고 혼자 웃고 우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내 노래가 좋아서였는지 발 소리에 놀랐는지 둑방 밑에서 새들이 수 백 마리 뛰쳐나와 갈대밭으로 숨어듭니다. 뭔 새가 개구리같이 튀네?

연이 언니네 집에서 나는 원고를 쓰고 언니는 붓글씨를 씁니다. 오른 손이 불편한 언니는 왼손으로도 그럴 듯한 획을 만들어 냅니다.

"잘 되네! 오늘 왜 이리 잘되노?"

"내가 와서 그렇지? ㅋㅋ "

언니는 CD 플레이어를 내 귀에 꽂아 주고 나는 리처드 용재 오닐의 비올라 연주를 들으며 글을 씁니다.
해가 지기 전에 내가 묵고 있는 방으로 가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섭니다. 계곡은 물이 다 말라 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목을 쭉 내밀고 한 참 내려봐야 계곡 바닥으로 내 눈길이 닿습니다. 솟아오른 산 만큼이나 깊은 지리산 계곡, 나의 고독의 심연도 그처럼 깊습니다. 깊은 만큼 나는 명징해집니다.

다섯 시가 조금 넘자 산길은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금세 사위는 먹물 속에 잠긴 듯 합니다. 또르륵 또르륵 소리가 요란하길래 뒤 돌아보니 어슴프레한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돌돌 셈베이 과자처럼 말린 낙엽입니다. 내가 서면 멈추고 내가 가면 또르륵 몸을 굴리며 따라옵니다. 나와 질긴 인연을 한 번 맺어 보고 싶나 봅니다.

산 골짜기마다 불빛이 반짝반짝 켜졌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들처럼 보석처럼 밝고 따스하고 아련히 빛납니다. 노래 한 줄기가 유성처럼 내 마음을 가로지르고 지나갑니다. --- 아득한 산골짝 작은 집에 아련히 등잔불 흐를 때 그리운 내 아들 돌아올 날 늙으신 어머님 기도해 산골짝에 황혼이 질 때 꿈마다 그리는 나의 집 희미한 불빛은 정다웁게 외로운 내 발길 비추네---

세모(歲暮)에 나는 축복같은 따스한 불빛을 만났습니다.

ⓒ 뉴질랜드 코리아타임스(http://www.koreatimes.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unner's High

댓글 1 | 조회 2,523 | 2009.02.10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겨울날에는 먹을 것이 귀하기 마련이다. 과일도 야채도 해산물도---. 그래서 동물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잔뜩 먹고 새로운 먹거리가 돋아나는 … 더보기

Angry Birds

댓글 4 | 조회 2,513 | 2012.04.24
시인 타고르는 한국을 ‘동방의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칭송하였다. 한국이 정적으로 묘사돼 못마땅해 하는 이도 있지만, 떠오르는 해처럼 동방… 더보기

[379] 샴 트윈(Siamese Twin)의 비극

댓글 0 | 조회 2,506 | 2008.04.22
아주 오래 전에, 그러니까 한 20년쯤이나 되었을까, 나는 신문을 읽다가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충격에 빠졌다. 1811년, 당시 태국의 이름은 '샴(sia… 더보기

이방인

댓글 1 | 조회 2,499 | 2009.10.27
카뮈의 '이방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 뫼르소는 동료의 싸움에 휘말려 불량배 한 명을 사살하게 된다. 뫼르소는 법정에서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 더보기

[346] 천국을 한 병씩 나눠 드립니다

댓글 1 | 조회 2,492 | 2006.12.11
시인 바이런이 말했던가. ‘와인과 모짜르트와 책이 있는 곳이 천국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세계적 와인 수출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곳 뉴질랜드가 천국임에 틀림없다.우… 더보기

[359] 언 발에 오줌 누기

댓글 1 | 조회 2,489 | 2007.06.25
중국에서 온 이웃집 새댁이 햇살이 내리 쬐는 벽에 몸을 기대고 하염없이 서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웃으며 햇살이 따뜻하다고 말했다. 사연인즉 전기요금… 더보기

베짱이에 관한 오해

댓글 1 | 조회 2,467 | 2009.07.15
뉴질랜드 경제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6월 26일, 정부 발표에 따르면 올 일분기(3월31까지) 실업률이 5%에 육박했다.국내 총생산(GDP)도 전 분기 대비 … 더보기

[369] 영혼의 지팡이(Ⅰ)-마두금 연주를 듣다

댓글 0 | 조회 2,456 | 2007.11.27
거짓말처럼, 어미 낙타의 눈에서는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아기 낙타를 품에 들이고 젖을 물렸다. 며칠 전, 어미 낙타는 새끼를 낳았었다. 오랜 시… 더보기

Ball Boy

댓글 1 | 조회 2,454 | 2009.11.10
봄인데 전혀 봄날 같지 않은 날씨군요. 식구들이 온돌 매트에 등 바닥을 붙이고 좀처럼 일어나지를 않네요. 따끈한 생강차에 꿀을 한 술씩 타 먹인 후 등 떠밀어서 … 더보기

[343] 식물의 사생활(2)---넌 어느 별에서 왔니?

댓글 1 | 조회 2,431 | 2006.10.24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ET를 떠올려본다. 눈이 얼굴의 전체를 차지할 만큼 크고 주름투성이인 ET가 긴 손가락을 내밀어 인간의 손가락과 조우하는 순간, 지구인들은… 더보기

시간이 없다!

댓글 0 | 조회 2,401 | 2009.03.10
일본의 거장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은 자신이 꾸었던 꿈을 소재로 '꿈(こんな 夢を 見た)'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8편의 단편 영화로 이루어진 '꿈'은 저마다 인상… 더보기

[373] 무진기행(霧津紀行)

댓글 0 | 조회 2,398 | 2008.01.30
무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Ⅰ. 스무살 무렵,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을 만났다. 주인공 윤희중, 그는 산업화가 막 시작된 1960년대의 전형적 인물이다. … 더보기

[377] 나는 걷는다

댓글 1 | 조회 2,382 | 2008.03.26
기차가 얼마나 게으름을 피웠던지,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할머니는 보따리를 이고 들고 앞장섰고, 나는 무섬증에 솜털이 보소송 일어나서 그 뒤를 … 더보기

[374] 남 섬에서 만난 세 남자

댓글 0 | 조회 2,380 | 2008.08.13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머리카락, 호방한 웃음, 그가 오른 산 만큼이나 우뚝한 콧날---뉴질랜드 지폐 5달러짜리에 인쇄된 남자, 에드먼드 힐러리경이다. 그는 1953… 더보기

당신을 희망의 메신저로 임명합니다

댓글 3 | 조회 2,372 | 2012.06.12
---- 코리아 포스트 창간 20주년에 부쳐 지구 밖 6천Km 상공에서 찍은 우주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구는 진애(塵埃)에 불과했지요. 마치 햇살 좋은 날… 더보기

측은지심이 으뜸

댓글 0 | 조회 2,371 | 2008.11.25
나의 친정 엄마는 '불쌍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교통 사고로 아들을 앞세워 보낸 외삼촌도 불쌍해 죽겠고, 천식으로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데 개미새끼 한 마… 더보기

현재 산골짜기 불빛

댓글 0 | 조회 2,355 | 2008.12.23
나는 지리산 골짜기로 토꼈습니다. 비속어를 사용해 죄송하지만 가끔은 비속어 한 마디에 내 영혼이 카페인이라도 들이킨 듯 반짝 빛납니다. 내 방 앞을 흐르는 강물은… 더보기

[368] 하버브리지

댓글 0 | 조회 2,347 | 2007.11.12
오클랜드 하버브리지의 안전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2006 베카 엔지니어링의 보고서는 클립온(바깥 상하행 2개 차선)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Transit … 더보기

[348] 향기(香氣)를 찾아서 - 기억(Ⅰ)

댓글 1 | 조회 2,344 | 2007.01.15
향기는 언제나 내 주변에 가득하다. 바람 따라 허공의 이곳 저곳을 떠돌기도 하고 가라앉아 있기도 하다가 소용돌이 치다가 내 코 속으로 기어드는 것이다. 우연히, … 더보기

누가 더 똑똑할까?

댓글 5 | 조회 2,340 | 2011.09.13
내 친구 농장에는 염소가 두 마리 있다. 수놈은 염식이, 암놈은 염순이다. “염식아, 염순아아---!”여기저기 둘러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들판. 퍼져나가는 친… 더보기

[363] 아! 버나드 쇼

댓글 0 | 조회 2,336 | 2007.08.28
간절한 소원이 하나 있다. 아일랜드 태생의 작가인 죠지 버나드 쇼를 꼭 한 번 만나는 일이다. 깡마른 몸에 희고 긴 수염, 지팡이가 트래이드 마크인 쇼. 형형한 … 더보기

[382] 행복한 밥상을 위한 투쟁 (Ⅲ)

댓글 0 | 조회 2,332 | 2008.06.10
세계 제3차 대전은 식량 전쟁이다. 대한민국은 그 전쟁 중에 이미 핵폭탄을 두어 방 맞았다. 미국산 쇠고기로 한방 맞고, 5월 1일, 미국산 유전자 변형(GM)옥… 더보기

[376] Sparkling과 100% Pure

댓글 1 | 조회 2,318 | 2008.03.11
한국 관광 홍보 영상 '코리아 스파클링'이 1월 31일, 세계 3대 영상제인 '뉴욕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양방언씨의 모던 한 가야금 연주에 전통과 현대… 더보기

좋은 일, 나쁜 일, 이상한 일

댓글 0 | 조회 2,317 | 2012.09.25
수십 년 영화를 만들었고, 거장이라 불렸지만 영화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고백했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김기덕 감독도 ‘아리랑’에서 &lsq… 더보기

길 위에서 만나다

댓글 0 | 조회 2,309 | 2008.12.10
잘 살고 있어? 헤어진 옛 애인이 전화를 걸어와 괜스레 안부를 물으면 여자는 '그저 그래' 라고 대답하는 샹송이 있다. 슬픔이 촉촉히 베어 있는 음성으로 노래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