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7] 나는 걷는다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명사칼럼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김도형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새움터
멜리사 리
휴람
김준
박기태
Timothy Cho
독자기고

[377] 나는 걷는다

1 2,727 KoreaTimes
  기차가 얼마나 게으름을 피웠던지,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할머니는 보따리를 이고 들고 앞장섰고, 나는 무섬증에 솜털이 보소송 일어나서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사위는 먹물 같았지만, 눈이 내린 길은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났다. 철둑길을 한참 걷다가 논둑길로 들어섰다. 나는 미끄러져 논두렁으로 굴러 떨어졌다. 할머니는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자우뚱자우뚱 태엽 감긴 인형처럼 걸어갔다. 나는 젖 먹던 힘을 다해 논두렁을 기어올라 할머니를 따라잡았다. 굴러 떨어졌다 기어오르기를 수 차례, 온 몸이 눈투성이가 된 예닐곱 살 나는 눈사람처럼 커져서 할머니를 쫓았고, 귀가 먹은 할머니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깜깜한 밤길을 그렇게 혼자 고군분투하며 걷는 것이 인생이었고 그 날 밤은 서막에 불과했다.

  장날, 할머니는 닭을 옆구리에 끼고 보따리를 이고 지고 십리 넘게 걸어 장엘 갔다. 할머니는 항상 짐이 많아서 내 손을 잡아 줄 수가 없었다. 철로길을 걷다가 기적 소리가 나자 할머니와 동네 아줌마들은 철길 옆으로 황급히 비켜 서로 껴안고 주저앉았다. 나는 멀건히 서 있었다. 위험했다.검불처럼 기차바퀴에 빨려 들어가 죽을 수도 있었다. 얼마 전 아이 하나가 그렇게 죽었다고 했다. 속절없는 인생이었다.

  이모네 집은 이십리쯤 걸어갔었다. 겨울이었지만 땀이 배어 나왔다. 논두렁가에서 쉬면서 할머니와 나는 눈을 뭉쳐 한 움큼씩 먹었다.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보니 멀리 이모네 집이 보였다. 산도 들도 나무도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서 그 위로 청명한 겨울 햇살이 빛났다. 세상은 아득했고 반짝거렸으며 나는 약간의 현기증과 함께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웃 마을에 누가 죽었다. 부영 언니가 윗마을로 시집을 갔다. 나와 할머니는 또 십리 이십리 길을 걸었다. 상가에서 '에고에고' 억지로 곡소리를 내는 상주들이 내겐 미스터리였다. 부영 언니가 연지곤지를 찍고 방에 얌전히 앉아 있던 모습은 애잔했다.

  걷고 또 걷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걸으면서 할머니와 기웃기웃 엿본 삶은 고달팠고 슬픔이 깃 들어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산길을 걷는 것이 좋았다. 열 시간도 넘게 겨울 눈산을 올랐다가 내려올 때는 엉덩이가 얼얼할 정도로 미끄럼을 탔다. 산 아래 온천에는 따뜻한 물이 샘솟았다. 정신은 산 씻김으로 말갛게 개었고, 몸은 온천물에 사르르 녹아 버렸다. 터럭 만큼도 나를 찾을 수 없었다. 세상에서 내가 온전히 사라져 자연 속에 섞여 버리는 순간이었다. 나는 가끔 그 '공(空)'이며 '무위(無爲) 의 위(爲)'였던 상태가 그립다.

  하여, 나는 속상해도 걷고 스트레스가 목 밑까지 차 올라도 걷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을 때도 걷는다. 걷다보면 내 몸 속에 살고 있던 괴물들이 스르르 빠져나간다.

  조국의 봄날, 산수유와 매화가 지천으로 흩날리는 섬진강변 지리산 자락을 내 품에 가득 안고 걷고 싶다. 지리산을 안을 수 없다면 별수없이 뉴질랜드의 가을을 안고 뒹굴어야지---. 나는 운동화 끈을 바짝 조여 신고 집 앞 공원으로 나간다. 공원 잔디가 상큼하게 잘려 있다. 내 발 아래 폭신함, 누가 내 발걸음마다 고급 양탄자를 깔아 이렇듯 호강시켜 줄 것인가. 칼라 프린터 광고에 나옴직한 초록과 빨강,원색의 앵무새도 날아다닌다. 아마 삼각 관계인 듯 세 마리가 꺅꺅거리며 쫓고 쫓는다. 쟁탈전이 얼마나 치열한 지 허공과 나무갈피마다 불이 붙는 듯 하다.

  풀섶에서는 풀벌레들이 가을을 노래하고, 아직 짝을 찾지 못한 매미들이 쓰르르쓰르르 애타게 여름이 가는 것을 아쉬워한다. 도랑가 풀 위에는 곤충의 알집이 하얗게 피어 있다. 무사히 2세들이 태어나길 기대하는 마음-누가 곤충을 미물이라 했는가!

  두 줄로 나란히 소나무가 서 있는 길은 내가 좋아하는 길이다. 바람이 자고 있는 날에도 그 길에서는 바람이 불었다.솔바람 길, 소나무 길에 가면 바람이 내 몸을 포옹하듯 감쌌다가 풀어 준다. 나는 몇 번이나 그 길을 왔다갔다 한다.잔디밭에 숨어 있는 쌍둥이 하얀 버섯이 눈사람 같다. 아님 애인, 부모 자식인지 꼭 붙어 있다.

  고슴도치의 주검도 보았다. 새가 물고 가다가 떨어뜨린 것인지, 해로운 먹이를 먹고 죽은 것인지 딱딱하게 굳어 있다.

  걷다보면 사물은 어떤 느낌으로 내게 다가온다. 그래서 바라보노라면 사물의 이치가 어렴풋이 깨달아진다. 격물치지(格物致知)다. 만물의 본질은 하나로 통한다. 곧 이어  한줄기 바람이 이마와 목덜미로 스쳐 지나간다. 나는 나무이고 앵무새이고 풀벌레이고 바람이며 아무 것도 아니다.
쌔엠
죽은것이 죽지 않은 것 이라면 이상하지요.

거꾸로 산것이 산게 아니라면 또 이상하구요.

살아 있는 글을 그리워합니다.

심전도(心電圖) 검사

댓글 0 | 조회 177 | 13시간전
최근 어느 모임에서 만난 지인이 부정맥(不整脈)이 있어 심전도(心電圖) 검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심혈관 질환이 증가하고 있으므로 고령자는 정… 더보기

가족 및 자원 봉사 간병인을 위한 정부 실행 계획

댓글 0 | 조회 563 | 8일전
Consultation on Action Plan to Support Carers 사회개발부(Ministry of Social Development, MSD)는 … 더보기

타마키 마카우라우 경찰 소수민족 서비스팀 수상 안전 실시

댓글 0 | 조회 300 | 9일전
지난 11월 22일, 타마키 마카우라우 경찰 소수민족 서비스팀은 피하의 바넷 홀에서 소수민족 공동체 지도자들과 함께 수상 안전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번 세미나에서… 더보기

위험한 감정의 계절: 도박과 멘탈헬스 이야기

댓글 0 | 조회 189 | 10일전
12월은 흔히 ‘축제의 달’로 불린다. 거리의 불빛은 화려하고, 사람들은 마치 잠시 현실을 잊은 듯 들뜬 기운을 뿜어낸다. 그러나 그 화려한 분위기 뒤에는 또 다… 더보기

에델바이스(Edelweiss)의 추억

댓글 0 | 조회 200 | 10일전
음악은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감정 표현, 미적 즐거움, 소통, 그리고 심리적 및 신체적 치유 등 다양한 기능을 발휘한다. 또한 집단 정체성 확립, 사회통합, … 더보기

18. 루아페후의 고독한 지혜

댓글 0 | 조회 139 | 10일전
# 산 속의 침묵루아페후 산은 뉴질랜드 북섬에서 가장 높은 화산이다. 높고 험하며 사계절 내내 눈이 덮인 이 산은 항상 침묵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모… 더보기

뉴질랜드 학생들이 국내 대학과 해외 대학 중 어느 곳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비용 …

댓글 0 | 조회 530 | 10일전
비용 효율성과 미래 발전에 대한 종합적인 비교 - 2지난호에 이어서 계속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3. 영국 및 미국 대학 유학하버드 대학교미국과 영국은 뉴질랜드 유… 더보기

그 해 여름은

댓글 0 | 조회 139 | 2025.12.10
터키의 국기처럼 큰 별 하나를 옆에 둔 상현달이 초저녁 하늘에 떠 있고, 검푸른 하늘엔 뱃전에 부딪혀 흩어지는 하얀 포말처럼 은하수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그… 더보기

어둠은 자세히 봐도 역시 어둡다

댓글 0 | 조회 134 | 2025.12.10
시인 오 규원1어둠이 내 코 앞, 내 귀 앞, 내 눈 앞에 있다어둠은 역시 자세히 봐도 어둡다 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말장난이라고 나를 욕한다그러나 어둠은 자세히 … 더보기

아주 오래된 공동체

댓글 0 | 조회 173 | 2025.12.10
처서가 지나면 물에 들어가지 말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올해는 처서가 지났는데도 더위는 꺾이지 않고 도심과 해안을 중심으로 열대야 현상이 계속되었다. ‘습식 사우… 더보기

이삿짐을 싸며

댓글 0 | 조회 568 | 2025.12.09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하루에 조금씩만이삿짐을 꾸렸습니다그래야 헤어짐이늦게 올 것 같았습니다차곡차곡 넣고구석구석 채웠습니다그래야 천천히 올 것 같았습니다짐 드러낸 … 더보기

뉴질랜드 학생에게 독서가 특별히 중요한 이유

댓글 0 | 조회 532 | 2025.12.09
우리는 뉴질랜드라는 다문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영어로 배우고 말하고 평가받지만, 단순한 영어 실력만으로는 뉴질랜드 교육에서 깊이 있는 성취를 보… 더보기

깔끔하게 요약해 본 파트너쉽 비자

댓글 0 | 조회 337 | 2025.12.09
뉴질랜드에서 배우자 또는 파트너로 체류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사실혼(파트너쉽) 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신청할 수 있는 영주권 비자와 비영주권 비자가 … 더보기

2026 의대 진학을 위한 연말 전략: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댓글 0 | 조회 225 | 2025.12.09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안녕하세요? 뉴질랜드, 호주 의치약대 입시 및 고등학교 내신관리 전문 컨설턴트 크리스틴입니다. 2026년 뉴질랜드 및 호… 더보기

시큰둥 심드렁

댓글 0 | 조회 108 | 2025.12.09
어떤 사람이 SNS에 적은 글에 뜨끔한 적이 있었다. “눈팅만 말고 ‘좋아요’ 좀 누르면 안 되나요?” 마치 눈팅만 했던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발이 저려서… 더보기

언론가처분, 신상 정보 공개 금지 및 국민들의 알 권리

댓글 0 | 조회 224 | 2025.12.09
지난 9월 8월, 본인의 자녀들을 수년간 납치해서 숨어 살았던 톰 필립스 (Tom Phillips)가 경찰에 발견되었고 결국 총격전 끝에 사망했습니다. 그 소식 … 더보기

고대 수메르 문명은 왜 사라졌는가

댓글 0 | 조회 146 | 2025.12.09
메소포타미아 사막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를 때면, 거친 바람은 먼지를 일으키며 과거의 귓속말을 실어 나른다. 그 속삭임은 무너진 벽돌과 부서진 신전 기둥 사이를 스… 더보기

스코어카드와 인생의 기록 –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

댓글 0 | 조회 113 | 2025.12.09
골프를 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코어카드를 손에 쥐고 라운드를 시작한다. 한 홀 한 홀마다 몇 타에 공을 넣었는지를 적어 내려가며, 18홀을 돌고 나면 총합이 자… 더보기

나도 의대 들어갈 수 있을까 : 의대 경쟁률 10:1 그 진실은?

댓글 0 | 조회 315 | 2025.12.07
출처: https://www.istockphoto.com/kr/%EC%9D%BC%EB%9F%AC%EC%8A%A4%ED%8A% B8/%EC%9D%98%EA%B3%B… 더보기

‘인공 방광’이란

댓글 0 | 조회 287 | 2025.12.06
국민보험공단이 발표한 ‘2024 지역별 의료 이용 통계 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병원에서 진료받은 6대 주요 암 환자 중 유방암 환자가 인구 10만명당 52… 더보기

수공하는 법

댓글 0 | 조회 165 | 2025.12.06
수공(收功)은 기운을 거두어들이는 동작으로서, 명상을 하면서 자신의 주변에 형성된 기운을 거두어 단전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다.명상 중 급한 용무로 명상을 멈추어야 … 더보기

AI 시대의 독서: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독서가 필요한 이유

댓글 0 | 조회 623 | 2025.12.01
공자는 논어 첫 문장에서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고 했다. 배움 자체가 인생의 의미가 되던 시대의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더보기

AI 시대의 새로운 교육 방향: AI와 함께 생각하는 힘

댓글 0 | 조회 559 | 2025.11.28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교육의 변화를 이끌어 왔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의 등장은 그 속도와 영향력에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전환점을 만들어 내고 있… 더보기

무료 유방암 검진 연령 확대

댓글 0 | 조회 333 | 2025.11.26
무료 유방암 검진 연령이 74세까지 전면 확대된다.

에이전시 (대리인) 관련 법

댓글 0 | 조회 228 | 2025.11.26
우리는 어려서부터 누군가를 ‘대신’ 해주는 걸 자연스럽게 배우면서 자랍니다. 친구가 멀리 던진 공으로부터 내가 더 가까우면 친구 대신 공을 주워서 던져주기도 하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