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 꽃들에게 물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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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 꽃들에게 물어 봐

0 개 2,153 KoreaTimes
  요즘 나는 어쩔 줄 모르겠다. 사방에서 나를 향해 프로포즈를 하는 바람에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는 말이다.

내 집 정원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고흐의 팔레트'다. 앞 정원에 노란 들국화, 빨강과 분홍 제라늄, 살구빛 데이지, 아들 방 창가에는 해충을 막아 준다고 해서 심은 보랏빛 라벤더가 여름내 피고 진다. 제라늄은 일 년 전쯤 이웃집에서 쳐낸 것을 얻어 와 심었는데 한 아름이나 퍼졌다. 가냘프고 청초한 데이지는 어느 집 담장에 기대어 나를 유혹했다. 촉촉이 비를 맞고 있는 그 꽃을 한참 바라보노라니 주인이 한줄기 꺾어 주었다. 졸지에 업둥이가 되어 낯선 땅에 심겨진 데이지는 잘 자라서 수십 송이 꽃을 피웠다. 기특한 녀석. 그늘진 뒤꼍 화단에는 보랏빛 수국이 만개해 있다. 꽃이 질 때까지 서너 번 색이 변하는 수국은 꽃계의 카멜레온이다. 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물망초를 수국과 친구하라고 가까이 심었다. 물망초는 봄에 이미 꽃이 피었다 진 터라, 풍성한 수국을 너무 부러워하는 눈치다. “물망초야, 반질반질한 네 잎도 얼마나 예쁜데.”

  해가 좋은 데크 아랫 쪽에는 부겐빌레아가 불이 난 듯 검붉게 타오르고 있다. 데크 위 화분에는 크리스마스 꽃 포인세티아가 붉게 피어 있다.

  창문에서 내려다 보면 제라늄이, 데크 위에서 빨래를 널다 보면 부겐빌레아가, 우연히 들른 아들 방 창가에는 라벤더가, 울타리 아래서는 데이지가---사방에서 나에게 정염에 불타는 눈길들을 보낸다. 아, 행복에 겨운 여름날! 선뜻, 어느 꽃다발을 받아 쥘 것인가. 선택의 여지가 너무 많아 나는 뒤돌아 앙큼하게 웃는다.

‘이쯤되면 줄리엣의 베란다에 몰래 잠입한 로미오의 프로포즈도 부럽지 않아.’

  설거지며 식 재료를 씻기 위해 오래 서 있는 주방 창가에는 얼마 전부터 넝쿨식물 클레마티스가 나와 눈맞춤을 즐기고 있다. 영국이 고향인 클레마티스의 애칭은 '귀족의 꽃'. 이사오던 해 낡은 철사 줄에 고사리처럼 말라 비틀어져 있던 클레마티스는 여지없이 확 뽑혀 나갔었다. 봄이 돌아오자 초록 줄기가 곰실곰실 기어나 오더니 잎이 돋아났다. 나는 적이 당황했다.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리 기품있는 꽃을 피울 줄이야! 나는 또 당황했었다. 미나리아재비목, 미나리아재비과라는 클레마티스가 내 야채 밭의 미나리와 조상이 같다니. 하긴 고양이와 호랑이도 친척이라지. 클레마티스는 꽃이 지면 말라 휴면 상태로 있다 가 다시 깨어난다. 사람도 힘든 때 몇 달 씩 휴면 상태로 지낼 수 있다면… 나는 설거지를 하면서 눈은 창가에 두고 그놈을 살핀다. 새해 들어 밥해 먹기의 지겨움이 내 맘을 옥죄어 오는데, 녀석이 나를 웃긴다. 나는 무명실로 만든 보드라운 노끈으로 다섯 줄의 길을 만들어 주었다. 바람이 불면 넝쿨 손이 바람 따라 허공에서 헤맨다. 줄을 매어 준 반대 방향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넝쿨 손을 나는 악수하듯 잡고 부드럽게 돌려 줄에 감아 준다. 그럼 또 줄 타고 잘 간다. 나도 잘못된 길을 가려고 할 때 누가 길잡이 해줬다면 화려하고 기품있게 피어났을까?

   바야흐로 클레마티스는 결을 잘 고른 붓처럼 생긴 망울을 수십 송이 맺었다. 성질 급한 녀석은 벌써 보랏빛 꽃잎 다섯장을 활짝 펼쳤다. 죽었다 다시 살아 내 고단한 노동에 보랏빛 낭만과 여유를 불어 넣어 주는 클레마티스---창 밖의 연인, 나의 동반자다.

“울긋불긋 촌스러워. 팜트리나 심지 그랬어?”

  미술을 전공한 지인이 말한다. 하지만 난 내 인생 만큼 유치 찬란한 꽃들의 색에 취하는 것을 좋아한다. 세상이 얼큰해져서 멋스러워지고, 확실히 나는 꽃을 보기 전보다 착한 사람이 된다. 내 속의 악마도 꽃에 반해버려 나쁜 생각을 싹 잊어버렸는지 잠잠하다. 꽃에 취해서, 술을 마셨을 때처럼 취해서 내 비밀을 털어놓을 상대를 곰곰 생각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밥이나 선물을 사 줘야겠다고 결심하기도 한다.

  꽃들이 아기였을 때 빨리 자라 풍성해지길 바랐는데, 어느덧 가지치기를 해줘야 할 정도로 버거워졌다. 내 급한 성미를 잠재우기만 한다면 세상 이치는 알아서 잘 돌아갈 것인데.

    꽃들이 좋다. 사랑하면, 관심을 가지면 속내까지도 들여다 보이는 법. 오묘한 모양과 색깔, 자라는 태가 그저 신통하고 갸륵한 꽃들. 그러나 알고 보면, 지구상에 있는 대부분의 색깔을 차지한 꽃들은 그 색 만큼이나 사연도 구구절절하다. 변덕쟁이 수국, 정열에 불타 죽을 것 같은 부겐빌레아, 짝사랑에 속 앓는 베고니아, 천진난만해서 다치기 쉬운 데이지, 아름답고 고결한 클레마티스. 사랑, 미움, 증오, 배신, 복수의 화신이 바로 꽃이다. 꽃들은 안다. 욕망을 잘 다독일수록 예쁘게 피어난다는 사실을. 그래서 묻고 싶다. 절망과 슬픔, 애증, 불안, 시기--- 마음 속 재앙 화(禍)를 어떻게 화(花)로 바꿨는지. 아무 일 없다는 듯 시침 뚝 떼고, 정해진 때 정성을 다해 생을 사는 꽃들에게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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