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 우연(偶然)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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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 우연(偶然)의 선물

0 개 2,204 KoreaTimes
  12월이 되면 나는 두렵습니다. 엊그제 1월이 시작됐는데 벌써 12월이라니---. 나는 어린 시절 심부름을 가다가 돈을 잃어버려 망연자실 할 때처럼 당황스럽습니다. 나는 열 두 달을 어디에다 잃어버린 것이 분명합니다.구멍 난 주머니 틈으로 사라졌거나 밤손님이 날름 집어 간 것이 아닐까요?

  사람들은 삶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만든 촘촘한 그물처럼 필연(必然)적으로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밤잠을 설쳐 가며 계획을 세우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학생들은 공부하느라 골머리를 싸매고, 여자들은 악악대며 남편과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세월을 보내지요. 아 참, 남편과 아이들을 놔두고 나 홀로 여행'은 다녀오셨나요? 10Kg 감량 다이어트는요? 따님의 수능 점수는 예상대로 나왔는지요? 소홀함 없이 삶을 잘 엮었다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 당신에게도 깊은 회한은 남았겠지요. 세월은 우연히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니까요.

  물론, 우연을 믿지 않으신다는 분들도 계시겠죠. 모든 것은 어떤 섭리나 운명, 신이 정해준 행로대로 움직이는 것이라면서. 필연은 우연을 가장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신이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싶을 때 사용하는 가명 같은 것이 우연이라고도 합니다. 우연성이 남발되면 소설일지라도 3류로 전락하지요. 하지만 나는 살아갈수록 우연의 힘을 거부할 수 없게 됨을 느낍니다. 탄생의 별이 있다면 나는 아마도 '우연의 별'에서 태어난 듯 싶습니다. 나는 유산되어질 운명의 아이였습니다. 엄마가 병원을 가려는 찰나, 탁발 스님이 내 집에 왔습니다.

  "아비의 죽을 운명을 아이가 살릴 것이오."

  스님 덕분에 나는 세상의 빛을 봤고, 내 아비는 살해될 위기에서 살아났답니다. 인생의 고비고비마다 일어났던 사건들은 모두 기막힌 우연이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속앓이를 하며 좋아했던 남학생을 내 친구도 같이 좋아했어요. 그녀의 아버지는 번역가였고 그녀는 글을 잘 썼지요. 연적인 그녀를 시샘하다가 나는 우연히 문학 소녀가 되어 있었습니다.

  스무 살 때, 내 남자 친구가 종로에서 다른 여자와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어요. 그 때 나는 카사노바 같은 남자친구에게 화도 나지 않았습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기막히게 내 앞에 던져진, 드라마 같은 우연성에 압도되어 온 몸에 기운이 빠졌던 겁니다.

  아! 지금도 가끔 그리운 '그린내' 만났던 것도 우연이었어요. 출판사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가 마주쳤지요. 열세 번쯤 만나고 그는 군대를 갔습니다.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어난 것처럼 3년이 지나갈 수도 있었어요. 왜냐하면 나는 그를 만났던 그 '우연한 날'에 사로잡혀 있었으니까요. 왜 그는 그 날의 힘을 믿지 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나를 놔주고 싶었겠지요. 우연의 그물망에 씌워진 나를 풀어 훨훨 자유롭게---. 그와 내가 우연이 가진 힘을 이렇게 다르게 믿었으므로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러나 우연이 꾸미는 은밀한 계획은 얼마나 집요한지요. 나는 그리운 나의 그린내를 6년만에 지하철 역에서 만났습니다. 나는 그를 한 눈에 알아봤지요. 그는 다시 나를 잡길 원했지만, 나는 우연의 집요함이 무서웠지요. 그래서 우린 또 헤어졌어요. 어때요? 이쯤되면 당신도 '우연의 힘'에 굴복하시겠어요?

  미국 소설의 희망이자 우연성의 작가인 폴 오스터는 이렇게 말했지요.

  "삶이란 우발적인 사실들의 집합체이며, 임의적 사건의 연대기일 뿐이다."    

  민들레 홀씨는 바람에 날려 우연히 낯선 땅과 만나지요. 내 텃밭에 피는 꽃들은 우연히 들른 벌들로 수정이 되어 열매를 맺는답니다. 내 집 텃밭에서 지렁이를 파먹던 새는 마침 내 집 마당에 영역표시를 하고 있던 검은 고양이에게 목을 물려 죽었지요. 가을에 떨어진 나뭇잎은 거름이 되고 봄이 되면 나무는 예쁜 꽃을 피우지요.

  오래 전에 짐케리의 '트루먼 쇼'라는 영화를 보았어요. 태어나면서부터 트루먼의 삶은 각본에 의해 연출되지요.서른 살, 모든 것을 알아 챈 트루먼은 배의 돛 밖으로 나가 버린답니다. 그가 세트장을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갔다는 이도 있지만, 저는 바다로 떨어져 죽었다고 생각했어요. 줄인형극(puppet)의 광대로 살 바엔 죽는 게 낫지 않겠어요? 나는 이 영화를 보고 한 동안 내 주변을 살피는 습성이 생겼어요. 누군가가 카메라를 숨기고 '리얼 버라이어티 쇼'를 연출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해서 말이죠.

  요즘, 푹 빠져 있는 '태왕사신기'에서도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기하> "하늘이 인간의 일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하겠어."
<연가려> "하늘이 미리 정해 놓는다면 인간의 노력과 수고는 다 무슨 소용인가?"  

  나는 새해 계획이 없습니다. 다만, 열두 달 내내 기다리기만 한답니다. 내가 가만히 있어도 다가와 주는 기막힌 우연의 선물을! 혹시 모르지요. 남편이 킹피시를 잡고, 아들의 작품이 평론가의 눈에 띄어 전시되고, 갈매기가 내 선글래스를 낚아채 둥지를 아름답게 장식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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