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 천국을 한 병씩 나눠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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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346] 천국을 한 병씩 나눠 드립니다

1 2,490 KoreaTimes
시인 바이런이 말했던가. ‘와인과 모짜르트와 책이 있는 곳이 천국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세계적 와인 수출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곳 뉴질랜드가 천국임에 틀림없다.우리는 천국 위를 걷고 있다. 여기저기 지하창고에서 와인이 숙성되는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가.큰 트로일러를 밀고 파킨세이브나 푸드타운을 들어갈 때, 우리는 그곳이 천국의 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즐비하게 진열된 와인들이 천국의 선반 위에서 천사의 손길이 닿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살짝 아쉬운 점은 그 많은 포도로 거의 모두 술을 담그고 먹는 포도는 수입을 하는 관행이다. 더구나 세계 와인 품평회에서 뉴질랜드 와인이 입상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하지만 이곳 생활의 지리함을 덜어줄 만한 중요한 역할을 와인이 담당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 옆집 키위 아저씨는 언제나 와인잔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와인잔이 그의 손의 일부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정원 일을 할 때도 한 손엔 가위, 한 손엔 와인이다. 전설적인 바람둥이 카사노바도 여자와 일을 도모(?)할 때 항상 와인을 애용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프랑스의 부르고뉴나  보르도 지방으로 와이너리(winery) 체험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천국의 맛을 본 사람들은 와인에 매료되어 평생을 그리워하며 찾아 헤매는  것이리라, 순수하고 짜릿한 내 생애 최초의 사랑을 찾 듯이---.

천국을 만나기 위해 수 백만원의 비용은 필요없다. 이곳에서는 아주 가까이에 천국이 있다. 단지 바닷가를 낀 서쪽의 구릉 지대로 2,30분 정도 달리기만 하면 된다. 특별히 와인에 대해 공부할 필요도 없다. 술은 자유다. 공부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틀을 만들어 가두어도 안된다. 별 계획이나 기대도 없이 우연히 맞닥뜨려 동시에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운명적인 사람처럼 그렇게 만나기를 난 갈망한다.

내가 즐겨찾는 집은 소규모의 하우스 와인 집이다. 그곳에 가면 유난히 코가 크고 항상 붉으레 취해 있는 코주부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우리네 선술집 주모처럼 옷고름 한자락 풀어헤치고 손님을 맞는 코주부 할아버지, 그가 있기에 절로 취한다. 지하 시음장으로 내려가는 어두컴컴한 층계에 서면 난 항상 가슴이 설렌다. ‘천국의 시간’들이 눈 앞에 다가오고 있으므로.

두 평 남짓한 시음장은 항상 좁다. 동네 술꾼은 아주 시음장에 늘어붙어 노닥이며 취해 있고 풀방구리처럼 들락달락이는 단골 손님들은 자기 집처럼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분주하다. 코주부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직업을 가진, 천국의 수문장답게 평화롭고 여유롭다.

우리 일행은 술꾼들 틈을 간신히 비집고 들어가 요것조것 한 잔씩 마셔보는데---, 어쩔까나! 마시는 잔마다 입에 쫘악-쫙 달라붙는다. 천국이 내게 다가온 것이다. 남편과 나는 혀끝에서 느껴지는 절절한 맛에 괜스레 서로를 사랑하는 감정이 복받친다.

“상큼하면서도 풍요로운, 첫 서리 내리던 가을과 같은!”
“달콤하면서도 진한, 모아 두고 싶은 사랑의 엑기스!”
“냉랭하면서 터프한, 매달릴 수 밖에 없는 매력 덩어리!”

무엇 하나 버릴 수 없어 남편과 나는 욕심을 낸다. 누런 종이봉투 위로 고개를 비죽이 내민 와인병을 가슴에 가득 안고 우리는 천국의 문을 나선다.

“앤드류 웨버 있잖아. 오페라의 유령, 캣츠 작곡한 사람. 50평생 1만 8천 개 와인 모았는데, 소더비 경매에서 72억원에 팔렸데.”

우리도 그렇게 천국을 수집해볼까 어쩔까 하면서 와인렉에 코주부 아저씨네 와인을 진열했다.바라만 봐도 뿌듯한 와인렉!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 마음이 변했다.

“00아빠, 매일 술 사먹는다고 와이프가 성화라는데 한 병 갖다 주자.”
“서울 가는 00도 한 병 줘야지. 시중에선 돈 주고도 못사는데---.”
“돌고 돌아온 싱글 K씨, 아이들 셋 데리고 씩씩하게 살고 있는 또순이 S씨도---”

묵은 해의 안좋은 일일랑 모두 잊어버리고 새해에는 행복하고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기원하며,한 병씩 나눠주다 보니 와인렉이 텅 비어 버렸다. 정작 내가 술이 고픈 밤에 한잔 마시고 싶은 블랙베리 와인도 동이 났다. 그런데 남편과 나는 텅빈 와인렉을 바라보며 한바탕 웃었다. 텅 비었는데 꽉 찼으므로---, 혹은 천국을 나눠주는 재미가 너무 쏠쏠해서---.
쌔엠
뉴질랜드 8년차인데요,

지금도 신기한건 바틀형보단 팩형와인입니다.

한팩을 다 마시면 인사불성이 되는 인체공학적

설계 땜에 혼나고 나선 다시는 만나지 않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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