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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2011. 14:05 NZ코리아포스트 (219.♡.51.194)
뉴질랜드 여행
꼬불꼬불한 산길을 계속 헤쳐 나가면 첫 번째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은 뮬러 빙하(Mueller Glacier) 하단에 위치한 전망대로, 험하기로 유명한 세프톤 산(Mt. Sefton, 3157m)과 그 밑으로 가파르게 쏟아져 내리는 빙하, 진회색 호수를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아름답다기 보다는 파괴적인 웅장함과 거친 모습이 매우 남성적으로 느껴진다.
전망대에서 시작되는 구름다리가 본격적인 산행을 예고한다. 구름다리는 마주 오는 사람과 만나면 서로 지나갈 수 없을 만큼 좁아서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라는 속담이 생각나 실없이 웃었다. 이 곳에서는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우측을 향하는 웨이크 필드 트랙(Wakefield Track)은 그동안 산사태가 자주 일어나 폐쇄되었다. 길 좌측으로는 후커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후커 강이 흐르는데 하얀색의 불투명한 느낌이 아주 이채롭다. 트랙 좌우에는 빙하에 의해 잘려 나간 어마어마한 산의 잔재가 위태롭게 서 있다. 올라가다 보니 가파른 벼랑 밑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입구 표지판에는 ‘낙석 지역이므로 중간에 정지하지 말고 계속 걸으시오’라는 안내문이 있다. 이러한 상태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커다란 쇠그물로 산을 덮어 낙석이 굴러 떨어지지 않도록 한 것이 보였다. 구름다리가 한 번 더 나왔다. 규모가 작아 더 많이 흔들리는 데다 다리 아래의 물살도 훨씬 빨라 아까 건넌 다리보다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다리를 지탱하고 있는 로프는 거대한 바위에 구멍을 뚫고 고정시켜 놓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잠시 쉬며 뮬러 빙하와 호수에 내려앉아 시끄럽게 우는 수십 마리의 기러기 떼를 지켜보았다. 쉬는 동안 물과 육포를 먹었는데, 육포는 조금씩 떼어 입에 넣고 천천히 불려서 씹으면 입 안 가득히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퍼진다. 산행 때 한 봉지씩 가지고 가면 부족한 염분과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고, 카레나 라면 등에 넣으면 생고기 부럽지 않은 풍부한 맛을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육포의 염분이 갈증을 심하게 할 수 있으니 한번에 너무 많은 양을 먹지 않는 것이 좋다.
그 다음부터는 비교적 완만하고 편안한 산길이 펼쳐진다. 습한 곳이라 군데군데 나무 합판으로 길을 내놓았다. 저 멀리서부터 콩볶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머리 위로 비비탄만 한 우박들이 쏟아진다. 눈앞에 작은 대피소가 보인다. 카메라를 가슴에 안고 대피소로 피했다. 이럴 때 대피소는 얼마나 고마운지. 그 속에서 쏟아지는 우박과 비를 보니 문짝도 없는 이 대피소가 너무나 포근하게 느껴진다. 대피소 안에는 등산객들이 남긴 낙서가 빼곡했다. 이 사람들도 우리와 비슷한 마음으로 이 속에서 산행의 평온함을 다시 찾지 않았을까? 그중에서도 한글로 된 눈에 익은 낙서를 보니 무조건 반가웠다. 외국에서는 ‘Made in Korea’ 제품이나 외국어와 나란히 있는 한글 설명서를 보기만 해도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에 뿌듯해지는데, 이런 곳에 한국인이 남긴 한글 낙서조차도 사랑스러웠다. 문이 없이 북쪽만 막혀 있는 대피소 앞으로 스토킹 스트림(Stocking Stream)이라는 조그만 개울이 흐르는데, 물이 아주 맑고 깨끗해 그냥 마셔도 될 정도다. 그 밑으로는 화장실이 있고, 커다란 드럼 위에는 각 봉우리와 산의 이름을 알 수 있는 컴퍼스 모양의 커다란 구조물이 만들어져 있다. 이곳에서 모두 배낭을 풀고 휴식을 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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