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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을 잘못 서서 집이 넘어갔다, 빚더미에 앉았다 또는 망했다더라… 이런 얘기를 종종 듣곤 한다. 물론 한국 얘기다. 한국에서 청장년기를 보내고 이민오신 분들은 보증을 한번쯤 서거나 받으신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적지 않은 분들이 보증을 잘못 서서 고충을 겪으신 경험이 있을 것이다. 독자 분들은 혹시 뉴질랜드에서 누가 보증을 잘못 서서 어떻게 되었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
아마 없으실 것이라 생각한다. 변호사로 일을 하고 있는 필자도 역시 뉴질랜드판 ‘잘못선 보증’을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뉴질랜드에서는 보증 문화가 없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필자가 변호사로서 빈번히 하는 업무 중에 하나가 보증에 관한 조언이다. 뉴질랜드에서 보증을 서게 되는 경우는:
1. 법인이나 트러스트가 법적 책임이나 채무가 있을 때 실 소유주가 이에 대한 보증을 서는 경우; 그리고
2. 동업을 하는 사람들이 채무를 같이 떠안는 경우
정도로 보면 될 듯 하다. 물론 보증이 필요한 여러 가지 다른 경우가 있지만, 교민들이 일상생활에서 경험 할 수 있는 보증은 이 정도지 않을까 싶다.
1 번의 경우의 예를 두 가지 들어보겠다. 먼저, 법인 명의로 사업을 하시는 분이 은행 융자를 받는다고 가정해보자. 여기서 사업이라 함은 ‘영업’을 하는 비즈니스 그리고 ‘임대업’을 하는 사업을 포함한다. 집을 사서 렌트를 주는 것도 엄연한 사업이니 말이다. 은행은 통상적으로 융자를 승인하기 전에 담보의 가치, 그리고 돈을 빌리는 사람이 원금의 상환과 이자의 지불을 할 능력이 되는지를 확인한다.
법인은 유한책임의 특성상 자산 대 부채의 비율이 높거나, 위험한 투자를 하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따라서 은행은 융자에 대한 보증인을 요구하게 되는데, 법인의 실 소유주인 주주(또는 이사)가 법인의 융자에 대한 보증을 서게 된다.
융자 외에도, 사업을 하기 위해서 매장이나 사무실 용도로 건물을 임차할 경우, 법인이 임차인이라면 역시 건물주 입장에서는 보증인을 요구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만약 보증인이 없다면, 임차인인 법인이 렌트비/임대료를 밀리거나 건물을 파손한 채, 회사 청산 절차를 밟을 경우 건물주는 밀린 렌트비 등을 받아낼 길이 없기 때문이다.
2 번의 예로는, 사업을 같이 하는 동업자들이 공동으로 융자를 받거나 채무를 얻게 될 때, 채권자 (혹은 융자를 해준 은행/대주)가 동업자들에게 연대 책임을 묻고자 할 경우에 보증을 요구한다. 뉴질랜드에서의 동업은 보통 회사 명의로 하는 것이 보편화 되어 있으므로, 2번의 경우는 엄밀히 보았을 때 1 번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1번의 연장선이라 보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겠다.
보증인의 책임은 보증(계약)서의 조항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뉴질랜드에서 통상적으로 요구되고 사용되는 보증을 볼 때, 같은 책임(또는 채무)에 대한 보증인이 두 명 이상인 경우, 보증인의 책임은 공동의 책임이기도 하며 각자의 책임이기도 하다. 영문으로는 ‘joint and several’이라 표현 하는데, 역시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다.
오성과 한음이라는 두 사람이 가나다 Limited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공동으로 임대업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오성과 한음은 가나다 법인에 각각 30%와 70%의 지분(주식)을 소유하고 있다. 가나다 법인은 임대업을 하기 위해 건물을 한 채 구입 했는데, 건물 구매를 위해 은행에서 백만 불을 융자를 받았고 오성과 한음이 융자에 대한 보증을 서게 된다. 임대업이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아서 건물이 경매로 매각되고, 은행에 지불해야 할 금액이 오십만 불이 남았을 때, 은행은 오성에게 오십만 불을 받아낼 수도, 그리고 한음에게 오십만 불을 받아낼 수도 있다. 즉, 소유한 회사 주식의 지분과 상관 없이, 보증인으로서의 오성과 한음의 최고 책임한도는 회사의 융자금 잔액 전부에 해당된다. 보증인이 두 명이니까, 채무를 반으로 나누어 이십오만 불씩 책임을 진다고 생각하면 큰 오판이다.
위의 예에서 은행은 물론 오성과 한음에게 각기 오십만 불씩을 받을 수는 없겠지만, 오성과 한음 둘 중에 유동 자산이 많은 사람, 즉 돈을 더 받아내기 쉬운 사람에게 회사의 부채 전액을 받을 수가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