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속 부처님을 모시다 - 마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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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속 부처님을 모시다 - 마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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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긴 여로


서기 475년, 고구려 장수왕이 3만 군사를 몰고 백제의 수도 한성을 습격했다. 한성이 초토화되자 백제는 서둘러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천도했고 어느 정도 국력이 회복되자 다시 사비(지금의 부여)로 도읍을 옮기면서 백제의 마지막 사비시대(538~660)를 열게 된다.


백제는 그 지리적 여건으로 서해 건너 중국 산둥 지역의 나라들과 교류했는데, 한강 유역을 빼앗김에 따라 중국과 왕래하는 포구도 당진이나 태안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산둥 지역은 백제에 불교를 전한 동진(317~420)에 이어 북위(386~534)와 동위(534~550)가 다스렸고, 다시 북제(550~577)가 차지했다. 백제는 고구려를 견제할 목적으로 이 나라들과 교류를 이어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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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발생한 석굴사원과 마애불은 서역을 거쳐 중국에 들어왔다. 이후 둔황 석굴을 비롯해 맥적산.운강.용문.천룡산 석굴 등이 줄지어 만들어졌고 산둥 지역에도 운문산 석굴과 타산 석굴이 조성되었다. 산둥의 불교 중심지는 제남.치박.청주 지역이었는데, 제남 인근 황석애 절벽에는 520년에서 542년 사이에 조성된 마애불이 많다. 산둥의 불교문화가 백제에 들어와서 남긴 뚜렷한 유물이 바로 마애불이었고, 한반도의 마애불은 백제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런 유물 가운데 하나가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국보)이다. 보통 백화산 마애불이라 부른다.


이 마애삼존불은 두 분의 큰 부처님 사이에 작은 보살상이 서 있는 특이한 구도다. 보통은 가운데 부처님을 모시고 양쪽에 협시보살이나 협시불을 모신다. 따라서 삼존불을 모시는 약식이 성립되기 전에 모신 삼존불이라 여겨진다. 특히 새끼손가락과 약지를 구부리고 있는 곡지(曲指) 양식은 북위효문제 원년(477) 무렵부터 500년대 중반까지만 나타난 양식으로 알려져 있으며, 옷자락이 아래에서 ‘X’자로 교차하는 것도 초기 불상의 양식이다.


그렇다면 백제인들은 왜 이곳에 마애불을 새겼을까? 삼존불 주위를 둘러보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주위는 온통 바위로 둘러 싸여 있고 아래쪽에는 샘도 있다. 비록 마애불 뒤쪽으로 도로가 나 있지만 예사로운 장소가 아니다. 이는 민족 전통의 기도신단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말해 준다.


한반도는 70%가 산악지형이고 한민족의 시원도 산에서 시작된다. 산은 곧 한민족에게 신성한 성역이자 기도의 성지다. 산은 언제나 우리를 감싸고 안아 주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품이며 신령들이 머무는 세계다. 한민족은 자연스럽게 치성드리러 산에 가고 수행하기 위해서도 산에 간다. 출가하는 것도 입산 한다고 한다. 만신들의 치성터도 주로 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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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선은 동이족 문화의 특징을 “돌을 산악의 표상이라 하고 이를 통하여 태양과 하늘을 숭배함”이라고 하였다. 바위로 둘러싸인 아늑한 터에 물을 쉽게 구할 수 있다면 민족 전통의 기도신단이 된다. 필자는 태안 백화산의 마애삼존불이 바로 이러한 장소라고 추정한다. 마애불이 생기기 전부터 인근 백성들이 올라와 치성을 드리던 기도 터라고 보는 것이다.


사실 전국의 마애불을 답사하다 보면 전래의 바위 신단에 마애불이 새겨진 경우가 많다. 기도할 공간이 있고 샘이 있으면 바위에 마애불이 새겨지고 암자가 들어서면서 산중암자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백제의 미소와 마주하다


1959년 4월, 부여박물관장으로 있는 홍사준 선생은 보원사지 조사를 나왔다가 동네 사람들의 안내로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마애삼존불을 처음 찾아갔다. 뛰어난 백제의 마애불이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역사적인 날이었다.


경사가 심한 산비탈 건너 바위 벼랑 절묘한 위치에 새겨진 마애삼존불은 큰 손상이 없어 제대로 된 백제 불보살상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가운데 본존불의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여유로운 미소는 단번에 모든 사람을 매료시켰다. 양쪽 보살들의 입가에 어린 가녀린 미소 또한 종교적 위엄을 멀리 밀쳐내고 허물없는 이웃의 정답고 포근한 미소로 다가왔다. 백제인의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걸작 중의 걸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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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은 불교문화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다. 법당에 모셔진 불상은 전쟁이나 화재 등으로 자리를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훗날에는 원소장처를 알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애불은 이동이 불가하기 때문에 그 지역 불교문화를 확실히 증명하는 증거물이 된다. 백제는 비록 660년에 멸망해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백제가 남긴 서산 마애불은 백제 불교문화의 정수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공식 명칭은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이다.


한반도로 건너온 마애불은 삼국통일 이전 신라의 서라벌에도 나타났다. 그 대표적 유물이 경주 남산 북쪽 끝자락 부처골에 있는 불곡 마애여래좌상(보물)이다. 예부터 경주 사람들은 ‘부처골 할매부처’, ‘감실부처’라는 친근한 이름으로 불러왔다. 감실처럼 바위 면을 조금 파고 들어가서 조성한 부처님은 언뜻 보면 둥근 얼굴의 인자하고 온화한 할머니가 마치 한복을 입고 다소곳이 앉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두 손은 옷자락 속에 감추었고 발바닥도 한쪽만 어설프게 드러나 있다. 특히 옷자락이 대좌 아래까지 덮고 있는 초기양식임을 보여 준다. 삼국통일 이전 서라벌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조성한 마애불로 추정된다.


경주 남산의 본래 이름은 금오산으로 너비 약 4km의 바위산이 남북으로 8km에 걸쳐 누워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바위산은 기도 터로 오랫동안 이용되었다. 남산에도 선사시대 기도 터의 흔적이 남아있는 장소가 수도 없이 흩어져 있다. 당연히 삼국통일 후 남산에는 수많은 마애불이 조성된다. 이를 두고 ‘마지막 신라인’이라 불리던 윤경렬(1916~1999) 선생은 “원래 바위 속에 계시던 부처님이 백성들의 간절한 기도에 몸을 드러내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본래부터 있던 부처님을 찾아 들어가며 조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경주 남산의 마애불 중에는 윗몸은 돌출되게 조각하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희미한 선각으로 처리하여 마치 불보살님이 이제 바위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듯한 형상으로 새겨진 조상들이 있다. 남산 서쪽 삼릉계곡 마애관 음보살입상도 그렇다. 석양빛을 받으면 붉은 연지 자국이 남은 입가에 고요한 미소가 어리는 이 관세음보살상도 아래로 내려갈수록 조각 선이 약해져서 무릎 아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왼손에 쥔 정병만 도드라져서 이제 막 바위 밖으로 전신을 내미는 듯 보인다. 삼릉계곡 위쪽 마애석가여래좌상도 비슷한 구조다.


경주 남산에는 불상을 포함해 모두 118기의 조각상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마애불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칠불암 마애불상군(국보)이다. 삼존불이 새겨진 마애불 앞에는 사방에 부처님이 새겨진 네모난 돌기둥이 있는데, 모두 일곱 분이기에 암자의 이름이 되었다. 삼국통일 후 신라의 불교 조각이 최고조에 달했던 700년대에 새겨진 마애불로 보고 있다.


옛 백제권에 조성된 마애불로는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국보)이 대표적이다. 암벽을 감실처럼 조금 파내고 마애여래좌상을 앉혔는데 그 높이가 8.6m에 이르는 거대한 불상이다. 머리 위로 반원형 육계가 크게 솟았고 얼굴은 신체에 비해 큰 모습으로 근엄한 인상을 준다. 법의를 얕게 표현하여 신체의 굴곡이 다 드러났는데 옷자락이 대좌까지 내려오는 고식으로 처리하였다. 대좌 오른쪽 끝에는 연꽃을 들고 있는 듯한 작은 동자를 새겨놓아 무거운 분위기를 한결 누그러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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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산하에 퍼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옛 신라지역에 많은 마애불이 조성되었지만, 전국적으로 확대된 것은 고려시대부터다. 은진미륵이라 불리던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처럼 높이 18m의 석불을 비롯해 곳곳에 대형의 석불들이 세워진다. 국가가 안정되면서 석조 기술도 진보한 것이다. 마애불 역시 대형화되어 전국 곳곳으로 파급된다. 금강산 묘길상 마애불좌상은 앉은 모습인데도 높이가 15m에 이르고, 고창 선운사 도솔암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보물)은 고려 초기의 마애불로 좌대까지의 전체 높이가 15.7m에 달한다.


마애불 중에서도 영월 무릉리 마애여래좌상은 독특한 입지를 자랑한다. 적멸보궁의 한 곳인 법흥사 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법흥계곡과 주천강이 만나는 지점에는 우뚝 솟은 암봉이 있다. 강가에는 천연기념물인 돌개구멍이 있어 풍광도 기이하다.


암봉 위에는 물방울 모양의 거대한 바위가 하나 올라앉았는데 그 바위 동쪽 면에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누가 보아도 천혜의 기도 터다. 그런 곳에 마애불이 들어서고, 법당과 탑이 들어섰다. 이제 법당은 없어졌지만, 요선정이라는 정자가 남아있다.


고려시대에는 산중의 바위에 많은 마애불이 조성됐지만 중요도로 옆에도 세워졌다. 제비원 미륵이라 부르는 안동 이촌동 마애여래입상(보물)이 그런 경우다. 또한 배를 타고 가면서 예경할 수 있도록 강가의 암벽에도 조성됐는데 충주 창동리 마애여래상이나 여주 계신리 마애여래입상이 그러한 유물이다.


불교가 변방으로 밀려난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마애불 조성은 매우 드물어진다. 마애불은 크기가 커질수록 조성 불사에 많은 경비가 들어간다. 비계도 설치해야 하고 유능한 석공도 있어야만 한다. 돌조각은 한번 실수하면 수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고도로 숙련된 석공이 있어야만 조성할 수 있다. 마애불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드물다.


앉아있는 조선시대 마애불 중에서 명작을 꼽으라면 당연히 문경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보물)이다. 봉암사에서 계곡 상류 쪽으로 700m 떨어진 백운대에 있다. 마애불 앞쪽으로는 큰 너럭바위가 있고 다시 그 앞쪽으로 맑은 계류가 암반 사이를 돌아 흐르며 작은 폭포를 이룬다. 누가 보기에도 기도하기 좋은 장소다. 이 마애여래좌상은 환적당 의천(1603~1690) 스님이 1662년부터 이듬해까지 봉암사에 머물 때 조성했다. 부처님은 계란형의 둥글고 갸름한 얼굴이다. 콧날은 오똑하고 반개(半開)한 눈매는 부드럽다. 단정하게 다문 작은 입은 마치 선정에 들어있는 듯 정갈하고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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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조선시대의 대표작이다.


조선 말기의 마애불로는 서울 불암산 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을 손꼽을 수 있다. 높이 13.4m에 달하는 이 보살상은 명성왕후의 발원으로 1872년에 만들어졌다. 첫째 아들을 잃고 다음 해에 조성한 것인데 2년 뒤 순종이 태어났다. 조선시대 마애불로는 가장 큰 규모로 금강산 최고의 불모였던 장엽 스님이 밑그림을 그렸고 석공 5명이 함께 조각하여 완성하였다. 왕실 발원의 마애불로서 우수한 화승과 장인이 조성한 귀중한 문화재다.


이후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마애불 조성도 일본인의 손으로 넘어갔다. 나라를 빼앗기니 일본의 불교문화가 우리의 강산에 버젓이 나타난 것이다.


목포 유달산에 남아있는 홍법대사상과 부동명왕상이 바로 그러한 자취다.


한반도에는 1,000여 기에 달하는 마애불이 곳곳에 있다. 너무 흔해 의미 없이 지나칠 수도 있지만 그 연원이 만만치 않다. 더구나 한민족의 전통 신앙과도 깊은 인연이 있으니 더욱 귀중한 문화재다.


■ 노 승대

우리 문화를 향한 변함없는 열정으로, 30년 넘는 세월을 문화유산 답사와 공부에 쏟았다. 그 결과물은 <불광>, <사람과 산> 등 잡지에 기고해 왔으며, 저서로 『사찰 속 숨은 조연들』,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 등이 있다.


■ 출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템플스테이 매거진(vol.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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