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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감정 표현, 미적 즐거움, 소통, 그리고 심리적 및 신체적 치유 등 다양한 기능을 발휘한다. 또한 집단 정체성 확립, 사회통합, 의식 행사, 문화적 연속성 유지 등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며 이들 가치를 반영하고 전달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지난 11월 22일 오클랜드 전쟁 기념박물관(Auckland War Memorial Museum)에서 열렸던 오클랜드 한인합창단의 공연은 이민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인 뉴질랜드에서 여러 의미를 지닌 뜻깊은 행사였다고 평가된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박물관 측에서는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다문화를 체험하고 같이 즐기며, 초청된 공연단 측에게는 평소에 단련한 기능을 발휘해 방문객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공동선의 실현 기회가 제공된 것이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초청을 받아 공연에 임한 한인합창단에서는 이러한 취지에 부응하여 레퍼토리 선정 과정에서부터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뉴질랜드 인구분포는 이른바 키위라고 불리는 유럽계 백인이 약 69%, 마오리 원주민 14.6%, 아시안 9.2%, 비 마오리계 태평양제도 주민 6.9%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민족 그룹에 비해 이민 역사도 짧고 인구수로 볼 때에도 전체의 0.7% 정도에 불과한 한민족 그룹이 초청된 것도 이례적이지만 거기에 따른 부담도 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총지휘자인 이건환 작가께서 주어진 시간에 대응해 최적의 방안을 도출해 8곡을 선정하여 공연에 임하게 된 것이다.
우선 2곡의 뉴질랜드 창작곡이 있는데 ‘뉴질랜드 아리랑’은 이건환 작곡가가 뉴질랜드에 이민 와서 느낀 정서를 한민족의 전통민요인 아리랑을 모티브로 뉴질랜드 정서에 융합한 곡이었다. 가사는 한글과 영문으로 제시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곡이다. 다른 하나는 ‘내 마음의 별 하나’로 보코 콘서트 기획자인 교민 브라이언 리(Brian Lee) 작가가 한인 합창단에게 헌정한 곡으로 한국인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곡이다. 다른 2곡은 뉴질랜드 가요 ‘Hine e hine’와 ‘Now is the hour (Maori Farewell Song)’이 선정되었다. 여기에 한국의 애창가요인 ‘등대지기’와 영화 ‘The sound of music’으로 세계인의 애창곡이 된 노래 ‘Edelweiss’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가까이 다가온 점을 고려해 캐롤송 ‘White Christmas’와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를 추가해 총 8곡으로 구성된 것이다.

공연을 통해 공연자 그룹과 관객 모두가 인간 세상의 아름다움을 실감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현재 82억 명으로 추산되는 세계 인류는 기후 재난, 지역적인 갈등, 정치적인 대립, 인종/민족적인 갈등, 빈부 문제 등으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서로 나누고 정서를 공유하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면 얼마든지 살맛 나는 세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현대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공연은 박물관 관람자들이 점심시간에 가족 동반으로 토요일 오후 한때를 즐길 수 있었고 공연자 그룹 측에선 공연을 위해 노력했던 결과가 관람객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눌 수 있어 더불어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보람을 찾게 되었다. 박물관 측에선 기왕에 갖추고 있는 시설을 이용해 별다른 예산이 필요 없이 행사를 치를 수 있어 공간 상품의 새로운 효용가치를 창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에델바이스 공연은 개인적으로 젊은 시절의 추억 속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계기도 되었다. 1965년에 공개된 미국의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2차대전 중 나치를 피해 오스트리아를 떠나야 했던 폰트랩 가족합창단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노래 ‘에델바이스’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감미롭게 가슴 속에 파고들었으며 60년이 지난 지금에도 나의 뇌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결혼할 때 친구들이 결혼 기념으로 전축을 선물했는데 단칸 셋방에서 출발한 신혼 생활은 모든 것이 어쭙잖은 때였다. 그때는 음향기기가 귀할 때였고 진공관 식 제품이라 덩치는 커서 좁은 방 공간을 더욱 좁게 만든 애물단지이기도 했다. 그때 음반에서 흘러나오는 에델바이스를 따라 부르며 기뻐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의 모습도 선연한데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주연 줄리 앤드루스는 나이가 든 후에 보이스 연기 쪽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남우 주연 크리스토퍼 플러머와는 매우 친한 친구로 지냈으나 플러머가 2021년에 91세로 먼저 사망했다. 영화에 등장했던 아역 배우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 후로도 가족처럼 오랫동안 친밀하게 지냈다고 한다. 2025년에는 일부 자녀 배우들이 다시 모여 60주년 기념 모임을 가지기도 했다.
이 영화의 촬영 덕분에 유명해진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는 알프스 자락에 자리한 시골의 도시지만, 음악의 향기가 도시 전체에 가득한 곳이다. 잘츠부르크는 1756년에 태어난 모차르트의 출생지로 도시의 분위기가 모차르트와 관련된 것들로 가득 차 있으며 잘츠부르크 음악 축제가 열리고 있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이 이 도시의 문화적 분위기와 잘 어울려 지금의 ‘음악의 도시 잘츠부르크’라는 명성을 만든 것이다. 에델바이스는 알프스에서 자라는 꽃으로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 상징적인 존재이다. 이 꽃을 소재로 삼아 ‘조국을 향한 따뜻한 사랑’을 담아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민요처럼 느끼게 된 것이다. 영화에서 폰트랩 대령이 조국의 자유와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부르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고향과 순수함, 젊은 날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곡이 된 것이다.
이 영화는 단순한 뮤지컬이 아니라 가족, 희망, 그리고 사랑의 내용을 담은 작품이기도 하다. 주연을 맡은 플러머와 앤드루스는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순수함과 평화를 담고 있고, 혼란한 세상에 잠시 피난처 같은 존재’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배우들 사이에 깊은 우정과 서로에 대한 존중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이 영화가 끝난 다음에도 그들의 삶에 지속적인 의미를 준다는 증거 같아 마음이 따뜻해진다. 뉴질랜드는 지구상에서 남쪽 끝에 자리한 작은 섬나라이다. 그러나 과학 기술의 발달로 문화적, 정신적, 심리적으로는 물리적 공간을 떠나 전 세계와 소통할 수 있다. 오히려 혼탁한 물질세계와 거리를 두고 독립적인 정신문화를 향유 하기에 유리한 여건을 가지고 있는 뉴질랜드이다. 음악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여 인류와 소통할 수 있고, 서로에게 영혼의 양식을 채워주는 세상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