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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 사막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를 때면, 거친 바람은 먼지를 일으키며 과거의 귓속말을 실어 나른다. 그 속삭임은 무너진 벽돌과 부서진 신전 기둥 사이를 스치며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누구였고, 어디로 사라졌는가?”
수메르.
도시와 기록, 법과 신화를 가장 먼저 세상 위에 올려놓은 이름.
그리고 어느 날 조용히, 아무 말도 없이 무대 뒤로 걸어 나간 문명.
이 신비로운 그림자의 실루엣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선명하다.
수천 년의 시간이 지나도, 그들의 발자국은 사막 모래 아래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강과 흙, 그리고 인간이 빚어낸 첫 도시
기원전 4천 년, 유프라테스 강가에 안개가 내려앉던 어느 새벽. 사람들은 진흙 벽돌을 쌓아 올리며 도시를 세웠다.
그 도시의 이름은 우루, 우룩, 라가시였다.
메마른 땅이었지만 그들은 물길을 내고, 운하를 만들고, 강물과 함께 살았다.
수메르인들은 흙판 위에 쐐기모양의 흔적을 남기며 기록을 시작했다.
그 작은 흔적 하나가 오늘날 우리가 읽는 ‘역사’의 출발점이 되었다.
사람들은 신전을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별자리의 흐름을 계산했다.
곡물을 세고, 세금을 정하고, 상인들에게 상품의 수량을 메모하던 그 순간부터 인류의 시스템은 수메르의 심장에서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찬란한 문명은 마치 번개처럼 짧고 강렬하게 빛난 후, 수수께끼 같은 어둠 속으로 서서히 걸어 들어갔다.
“사라진 이름”이라는 가장 오래된 미스터리
수메르 문명이 사라진 장소를 찾아가면, 그곳은 기묘하게도 한없이 조용하다.
무너진 벽돌들은 침묵하고, 폐허의 그림자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학자들은 ‘붕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사실 수메르는 폭발처럼 붕괴한 문명이 아니다.
그들은 천천히,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다.
마치 누구도 깨지 못한 깊은 잠에 빠져든 것처럼.
그 잠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아무도 확실히 말할 수 없다.
기후였을까?
전쟁이었을까?
혹은 인간 사회 내부에서 무언가가 침묵 속에 무너져 내렸던 것일까?
이 미스터리는 고대의 안개처럼 학자들 앞에 계속 머물러 있다.
모래 속 진실을 찾아가는 탐험
① 염기로 뒤덮인 땅의 절규
역사학자들이 가장 먼저 발견한 흔적은 땅의 변화였다.
유프라테스 강가의 흙을 채취해 현미경 아래에 두면, 검은 점들이 반짝인다.
그것은 ‘소금’이다.
강물을 끌어 농사를 지은 수백 년 동안, 그 소금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땅을 갉아 먹었다.
보리와 곡식은 해마다 힘을 잃었고, 사람들은 점점 메마른 땅을 떠나기 시작했다.
문명은 대체로 정치나 전쟁보다 흙의 변화에 더 먼저 무너진다.
수메르도 그랬다.
문명의 발 아래를 떠받치던 대지가 어느 날 조용히 등을 돌린 것이다.
② 사르곤의 북풍, 엘람의 동풍
어느 날, 북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아카드의 사르곤 왕은 강철 같은 군대를 이끌고 수메르 도시들을 하나씩 삼켰다.
수메르는 문화는 강했지만 군대는 약했다.
그리고 세기가 지나, 동쪽에서 다시 바람이 불어왔다.
엘람의 창끝이 우르의 성문을 두드렸고, 수메르의 마지막 왕조는 그 충격을 견디지 못했다.
도시의 불빛이 꺼지던 그 밤,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운 세계가 다른 이름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순간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③ 내부의 피로, 도시를 떠나는 사람들
폐허에서 발견된 점토판에는 짧은 기록이 남아 있다.
“사람들이 도시를 떠난다.”
아마도 지나친 세금, 계급 갈등, 전쟁과 기근이 사람들을 지치게 했을 것이다.
도시의 화려함은 늘 내부 균열을 감추기 마련이다.
수메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둘 짐을 꾸려 언젠가 더 나은 땅을 찾아 떠났다.
문명은 화려한 탑이 아니라, 그 탑을 짓던 ‘사람들’이 떠날 때 사라진다는 단순한 진실을 남기고.
④ 사라진 언어의 비밀
수메르인들의 언어는 어느 날 기록에서 자취를 감춘다.
기록은 남았지만, 말은 사라졌다.
언어가 사라지면 정체성도 흐려진다.
사람들은 자신을 더 이상 ‘수메르인’이라 부르지 않게 되었고, 그 순간 수메르 문명도 서서히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문명의 죽음은 언제나 언어의 죽음과 함께 온다.
사라졌기에 더욱 강해진 그림자
길가메시의 목소리는 여전히 세계를 돌아다닌다.
불멸을 찾아 세상을 떠돌던 길가메시 왕의 발걸음은 오늘날 영화 속 영웅들에게, 소설 속 모험가들에게 계속 이어지고 있다.
홍수 이야기, 신들의 전쟁, 우정과 비극.
수메르의 신화는 지금도 현대 문화의 혈관 속을 흐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상상한다: ‘혹시 외계 문명이…?’
문명이 너무 갑자기 등장하고, 너무 정교했다는 이유로 수메르는 종종 외계 문명 가설의 중심에 선다.
근거는 없지만, 미스터리는 늘 ‘근거 없는 이야기를 가장 잘 흡수하는 영역’이기에 사람들은 여전히 그 가능성을 즐긴다.
사라진 문명에게 우리가 듣는 마지막 질문
메소포타미아 사막에 해가 지면, 잿빛 폐허에 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그 그림자 사이를 걸으면, 수메르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가 들리는 듯하다.
문명은 영원하지 않다.
그리고 문명은 스스로 무너질 때가 가장 위험하다.
수메르의 사라짐은 과거의 비극이 아니라 미래의 경고다.
기후 변화, 도시의 과도한 성장, 내부 갈등, 자원 고갈.
이 모든 것은 오늘 우리의 도시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수메르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들이 지금 사는 문명은 정말 안전한가?”
폐허의 바람은 대답하지 않지만, 그 질문만큼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는다.
다음 세대가 우리를 돌아보며 같은 의문을 품지 않도록, 우리는 지금 이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어쩌면 수메르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지기 위해 사막 어딘가에 잠시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