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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논어 첫 문장에서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고 했다. 배움 자체가 인생의 의미가 되던 시대의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인생의 기쁨이나 의미를 어디에 두고 있을까? 그리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독서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할까?
변화된 독서 환경과 새로운 문제의식
근대 이전, 지식과 독서는 극소수 지배 계층의 자산이었다. 인쇄술의 발명과 산업 혁명 이후, 사회가 요구하는 질 높은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문맹 퇴치가 이루어지면서 독서는 비로소 대중화되었다. 적어도 우리 세대까지는 독서를 전문 지식을 익히고 사고력을 키우는 데 꼭 필요한 활동으로 받아들였으며, 그것이 미래의 성공을 준비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계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환경 속에 살고 있다. 인류가 만들어 내는 지식의 양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인공지능(AI)은 그 지식을 생성하고 가공하는 속도에서 인간의 이해 능력을 이미 앞지르고 있다. 단순히 많은 지식을 보유한 사람이 능력있는 엘리트가 되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핵심 문제는 지식의 양이 늘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지식이 급증하는 속도를 인간의 처리 능력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정보 과부하가 일상화되고, 그 사이 깊은 사고가 지속되지 못한 채 파편화되는 사고의 단편화가 점점 더 두드러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AI는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우리가 직접 책을 읽지 않아도 방대한 내용을 빠르게 요약하고 정리해 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독서가 본래 요구하던 이해하고, 비교하고, 연결하는 사고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생략됨으로써 새로운 정보와 기존 지식을 능동적으로 엮어 하나의 전체적인 구조로 재구성하는 능력이 점점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스마트폰 시대의 청소년들은 숏폼 콘텐츠와 알고리즘 기반의 정보가 제공하는 즉각적 만족감에 익숙해져 있다. 이는 긴 호흡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독서 활동을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만들며, 복잡한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능력을 저해한다.
게다가 정보의 양이 너무 많아지면서, 정보의 출처를 비판적으로 확인하고 신뢰도를 판단하는 정보 문해력(Information Literacy)이 독서 능력만큼이나 중요한 미래 역량이 되고 있다.
독서로 키우는 통찰력, 미래의 가장 강력한 무기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독서가 여전히 중요한 이유는, 독서는 AI로 대신할 수 없는 인간만의 능력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독서는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아니라, 복잡한 내용을 스스로 이해하고, 서로 다른 정보를 연결해 하나의 생각으로 구성하는 능력을 기르는 활동이다. 다시 말해, 독서는 우리가 불확실한 미래를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사고의 기반을 만들어 주는 일이며,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사고력은 AI가 제공하는 요약 정보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능력이다.
독서는 논리적 순서와 짜임새 있는 구성을 가지고 있어, 독자에게 복잡한 아이디어를 분석하고 추론하며, 단편적인 지식들을 하나의 맥락 속에서 통합하도록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길러지는 깊은 사고력(Deep Thinking)은 AI가 제공한 요약 정보를 비판적으로 판단하고 새로운 통찰로 전환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또한 AI는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답변의 깊이가 달라지기 때문에, 폭넓은 배경지식을 갖춘 사람일수록 AI에게 더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단순한 사실 확인을 넘어,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가?”, “다른 관점에서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더 나은 방법이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만이 복잡한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으며, 결국 변화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통찰을 가질 수가 있다.
마지막으로,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간 고유의 공감 능력과 정서적 지능(EQ)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소설이나 인문학적 독서는 타인의 삶과 감정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며, 인간의 본질과 윤리적 문제에 대한 깊은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이다..
독서를 즐거운 경험으로, 그리고 능동적인 활동으로
독서를 성적 향상의 도구로만 인식하면 흥미를 잃기 쉽다. 독서를 자신의 호기심을 해결하는 즐거운 과정으로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관심 있는 주제라면 만화, 전자책, 오디오북 등 매체의 형태를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접근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책 한 권을 완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읽었는가’이다. 책의 내용을 단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작가의 주장이 타당한가?”, “논리적인 모순은 없는가?”, “나의 생각은 무엇이며, 어떻게 다른가?”와 같이 작가와 대화하듯 비판적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AI는 독서를 방해하는 도구가 아니라 독서를 심화시키는 조력자로 활용할 수 있다. 예를들어, 책 속 개념을 AI에게 “이 주장에 대한 반론을 찾아줘”라고 요청하면 다양한 관점에 접근할 수 있고, 이해의 폭을 확장할 수 있다.
독서는 이제 단순히 지식을 담아 두는 그릇이 아니다. 쏟아지는 지식과 정보 속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고, 서로 다른 내용을 연결해 스스로 생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러한 능력은 불확실한 시대를 헤쳐 나가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이야말로 독서를 삶의 즐거운 경험으로 되살리고, 미래를 준비하는 핵심 전략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이다.
전정훈 원장
Edu-Kingdom College, North Sh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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