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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교육은 오랫동안 학생들의 창의성과 독립성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춰 왔다. 단순 암기보다는 사고력, 지식의 양보다는 문제 해결 능력을 중시해 왔기 때문이다. 교육당국이 강조하는 “학습을 하기 위한 학습(Learning to learn)”은 이러한 철학을 잘 보여주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기주도 학습’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2025년 현재, 교육 현장은 큰 전환점을 맞고 있다. 몇 가지 흐름은 앞으로 뉴질랜드 교육의 방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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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EA 개편, 그리고 2028년 이후의 큰 변화
최근 진행된 NCEA 개편은 뉴질랜드 교육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모든 학생이 literacy와 numeracy 시험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즉, 단순히 여러 과목의 성취를 합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읽기, 쓰기, 수학 같은 기초 역량을 국가 자격 취득의 필수 조건으로 삼게 된 것이다.
둘째, 과목 수와 성취기준을 줄여 교과 구조를 더 단순하고 명확하게 재편했다.
이 변화는 학생들에게 더 높은 기초 역량을 요구하는 동시에, 교사와 학부모에게는 교육 방향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첫해 시행에서는 literacy, numeracy 시험 탈락자가 예상보다 많아 논란이 있었고, 기초 학력 강화의 필요성과 제도적 어려움이 동시에 드러났다.
더 큰 변화는 2028년부터 시작된다. 정부는 NCEA 레벨 1을 폐지하고 ‘Foundational Skills Award’를 도입하며, 2029년에는 ‘New Zealand Certificate of Education(NZCE)’, 2030년에는 ‘New Zealand Advanced Certificate of Education(NZACE)’를 차례로 시행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기존 NCEA의 유연성을 줄이는 대신,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더 명확한 국가 평가 체계를 마련하려는 시도다.
이 개편은 학습 부담을 줄이고 평가 과정을 투명하게 만드는 긍정적 의미를 지니지만, 준비 부족과 제도적 경직성이 새로운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결국 이는 단순한 시험 제도의 변화가 아니라, 뉴질랜드 교육의 가치와 방향을 다시 세우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AI와 디지털 교실
팬데믹을 거치며 온라인 학습과 디지털 기기 활용은 일상이 되었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생성형 AI가 교실 속으로 들어왔다. 학생들은 과제를 할 때 ChatGPT 같은 도구를 활용하고, 교사들은 Google Classroom, Microsoft Teams for Education, KAMAR 등을 통해 학생들의 학습 상태와 진도를 실시간으로 점검한다.
우려도 있다. AI에 과도하게 의존해 사고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본다면, AI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교사가 개별 지도를 강화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평가도 있다.
결국 문제는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이다. AI는 학습을 돕는 도구가 될 수도, 사고를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금지하는 것이 답일까, 아니면 책임 있는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이 답일까? 교육은 지금 그 기로에 서 있다.
교실 환경의 변화
뉴질랜드 교육 혁신의 대표 사례로 한때 주목받았던 것이 혁신적 학습 환경(Innovative Learning Environment)이다. 오픈플랜(open-plan) 구조로 여러 반이 함께 수업하는 방식은 협업과 창의성을 높이려는 시도였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소음, 집중력 저하, 교사 역할 혼란 등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2025년 교육부 장관은 완전히 열린 오픈플랜 교실은 더 이상 짓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대신 상황에 따라 열고 닫을 수 있는 유연한 공간 설계를 새로운 표준으로 삼겠다고 했다. 이는 혁신적 학습환경의 철학을 버린 것이 아니라, 학습 효과를 높이기 위한 현실적 조정이라 할 수 있다.
한 학부모의 말이 이를 잘 보여준다.
“큰 공간에서 여러 반이 함께 수업하니 아이가 산만해졌어요. 하지만 작은 그룹에서 선생님과 집중적으로 공부할 때는 훨씬 효과적이더군요.”
교실 환경은 학생들의 학습 성과와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임이 분명하다.
한국 및 국제 비교
한국은 여전히 시험 중심 교육이 강하지만, 최근에는 토론과 프로젝트 수업도 확대되고 있다. 뉴질랜드는 프로젝트형 학습과 자기주도성을 강조하지만, literacy, numeracy 강화처럼 한국식 교육의 장점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핀란드는 자율성과 프로젝트형 수업을 강조하지만 기초 학력 저하 우려가 제기되고 있고, 싱가포르는 높은 학업 성취도를 유지하면서도 경쟁 부담을 줄이려 교과와 평가 방식을 개편 중이다.
뉴질랜드 역시 같은 고민 속에 있다. 따라서 뉴질랜드 사례는 단순한 국가 정책 변화가 아니라, 세계 교육이 나아갈 길을 보여주는 중요한 실험이라 할 수 있다.
교육이 길러야 할 힘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지식의 양이 아니라 지식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다. 정보가 넘쳐나는 지금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주어진 지식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실제로 활용하며, 나아가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뉴질랜드 교육부는 이를 위해 Key Competencies(핵심 역량)를 교육과정 전반에 강조한다.
핵심 역량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다.
● 비판적 사고(Thinking): 문제를 분석하고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힘
● 언어와 기호 활용(Using language, symbols, and texts): 다양한 언어와 기호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능력
● 자기 관리(Managing self): 목표를 세우고 책임감 있게 학습을 이어가는 태도
● 관계 형성(Relating to others): 다양한 사람과 협력하고 공감하며 존중하는 태도
● 참여와 기여(Participating and contributing): 공동체에 적극 참여하고 기여하는 자세
이 역량은 교과 수업에서 따로 가르치는 과목이 아니라 수업 활동, 동아리, 지역사회 프로젝트 등 일상적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길러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맺음말
뉴질랜드 교육은 지금 거대한 실험대 위에 서 있다. 기초 학력 강화, AI 시대의 학습, 교실 구조 변화 등 방향은 분명하지만, 실행 과정에서는 여전히 논쟁이 많다. 그러나 사회가 빠르게 변하는 만큼 교육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적응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미래를 살아갈 힘을 키우도록 돕는 것이다. 학부모, 교사, 학생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변화를 받아들이고 함께 협력해야 한다. 변화 속에서도 아이들이 배움의 즐거움과 자신감을 잃지 않게 지켜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뉴질랜드 교육이 지켜야 할 가치일 것이다.
전정훈 원장
Edu-Kingdom College, North Shore
newcan11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