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타살의 일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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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타살의 일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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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사회주의를 비판하려는 이들이 늘 집중 공격하는 것은 농업 집단화나 숙청 때와 같은 대규모 국가폭력이다. 물론 이 부분에서 스탈린주의를 변호할 수는 없다. 혁명적 열기가 식어가고 정치판이 보수화하는 가운데 초고속 공업화라는 어마어마한 과제를 안게 된 국가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총동원 체제를 구축한 것이고, 그 어떤 총동원 체제도 폭력 없이 가동될 수 없다. 물론 스탈린 사망 당시의 소련 총인구 대비 ‘수용소 군도’의 인구 비율(약 1%)은 오늘날 미국에서의 수인(囚人) 인구 비율(약 0.7%)보다 약간 높은 정도이긴 해도, 이것 역시 변명거리는 되지 못한다. 


자본주의적 야만을 근절하겠다는 체제가 결국 가장 야만적인 자본주의 국가들처럼 감옥을 하층민들의 ‘순치’와 노동착취를 위해 이용했다면, 사회주의적 간판과 이 체제의 본질이 서로 맞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 사회주의 나라들에서의 국가폭력을 이야기하자면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놓쳐선 안 된다. 북한과 같이 군사적 대립이 늘 첨예한 일부 경우만 제외하면, 대부분의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은 어느 정도 공업화에 성공한 뒤로는 민중의 불만을 인식하여 국가폭력의 남용을 자제했다. 


예컨대 소련의 경우 1987년 페레스트로이카 과정에서 일체 양심수들이 석방됐을 때 석방 대상자들은 2억7000만명 인구의 나라에서 약 280명에 불과했다. 즉, 소련은 몰락하기도 전에 대내적으로 반대자에 대한 물리적인 국가폭력의 사용을 최소화했다.


현실 사회주의의 국가폭력은 사회의 성숙과 함께 수그러들었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덜 폭력적으로 되지 않는다. 전쟁이라는 형태의 대외적인 국가폭력은 여전한데, 오히려 그것에 대한 반대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체제를 뒤엎어버릴 것 같았던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의 베트남 침략 반대 시위와, 그 존재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구미권에서의 오늘날 아프간 전쟁 반대 운동을 과연 비교라도 할 수 있을까? 



한국도 아프간에 파병한 나라 중 하나지만, 진보계 안에서조차도 침략 방조행위인 아프간 파병은 거의 관심 밖에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체제의 폭력성이란 꼭 국가의 적극적인 폭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의 직접적인 폭력보다도, 자본과 국가가 소극적으로 유기한 (또는 그 본질상 처음부터 다할 리도 없는) 사회적 책임은 더 많은 이들을 간접적으로 죽일 수 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인간이란 잉여가치 수취의 도구에 불과하다. ‘쓸모 있는’ 도구라면 국가는 그 종전의 이데올로기를 고치면서까지 배려하는 척이라도 한다. 120만명의 국내 외국계 인구는 농촌인구의 재생산이나 중소기업들의 경제성 유지에 필수불가결하니까 2000년대 초에 ‘단일민족’과 같이 오랜 이념이 정부에서 용도폐기되고 적어도 형식상으로 ‘다문화주의’로 전환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쓸모없는 도구’가 돼버린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 체제는 모든 책임을 다 유기할 뿐이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중에서는 이미 21명이 자살이나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질환으로 비명에 사망했지만, 과연 정부나 쌍용자동차 자본이 대책다운 대책을 세워본 적이라도 있었던가? 


나이가 40~50이 되고 ‘강성노조’ 이미지가 강해 취직전선에서 기피 대상 1호가 돼버린 늙고 병든 실직노동자들은 이 사회의 주류로부터 그 어떤 관심도 끌지 못한 채 그저 죽어가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노조에 가입되었던 노동자들의 죽음은 노동계 안에서라도 동감과 연대의식을 유발하지만, 어디에도 소속돼 있지 않은 ‘쓸모없는 도구’의 죽음은 아예 흔적도 없이 묻혀버리고 만다.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세계 최고이며 일본·미국의 4~5배 정도인데, 해마다 가난과 멸시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5000~6000명의 노인들에 대해서 이 사회가 약간이라도 신경 쓴 적이 있었던가?


스탈린주의 체제와도 비교될 수 없는 자본주의의 내재적 살인성은 민중의 위력적인 압력에 의해서만 어느 정도 제어될 수 있다. 계급의식과 조직성이 낮은 우리나라 민중들이 그러한 압력을 행사하지 못하기에 사람들이 계속 죽어가는 것이다.


<출처 :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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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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