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어이가리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그대 어이가리

0 개 704 조기조

내가 안 할 걱정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영화 시사회를 한다기에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그냥 보았다. ‘그대 어이가리’라는 영화인데 사전 정보 없이 보다가 서서히 이건 내 인생인데 싶다. 누가 피해가겠는가? 한 때 건배사로 인기였던 ‘99 88 234’는 99살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을 앓고는 죽자는 염원이었다. 고통 없이 살다 가는 죽음의 복을 소망하는 것이다. 큰 복이겠다.


a2440304f65412dc3d8b2453f9667691_1678737301_043.png
 

노연희씨는 건망증이 있다. 아니 치매 초기다. 노망이라고도 했고 알츠하이머라고도 하는 모양인데 정확히는 나도 잘 모른다. 다만 제정신으로 살고 싶다. 딸을 결혼시킨 뒤 부부가 조용한 시골에 와서 지내려고 한다. 이들 부부는 한 때, 어린 아들을 잃고 힘들어했었지만 그런대로 잘 참고 살아왔다. 재능이 있는 남편이 바깥 생활을 접고 시골에서 아내와 함께 지내고자 하는 것은 아내의 건강이 걱정돼서다. 여기까지는 참 보기 좋다. 누구나 안 좋은 일은 빨리 잊어버리라고 하지만 잘 안 되는 것 같다. 반면에 무엇인가를 정확히 기억하는 것도 잘 안 된다. 새로운 것을 익히고 숙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 외에는 대충 듣고 넘기는 버릇 때문에 기억하는 기능이 퇴화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듣거나 관심 있는 것만 기억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다고 기억이 망가질까?


나는 자녀들에게 말했다. 살만큼 산 나이가 되면 아플 때 연명치료는 않겠다고. 병원 말고 집에서 조용히 쉬다 가겠다고 했다. 자녀들에게 간병의 부담은 주고 싶지 않으니 시간제라도 요양보호사나 간병사를 둘 형편은 되면 좋겠다. 제 발로 화장실 가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많이 들어 알고 있다. 그러니 몸을 아끼지 말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도 운동이지 싶다. 이른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웰 비잉 못지않게 웰 다잉을 생각한다. 죽음이란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불편한 사실이다. 밥을 먹고 살면 다른 욕심은 말고 건강하게는 살다 가고 싶다.


주인공 연희씨는 기억이 이상하다는 것을 안다. 깜빡깜빡 한다는 것을 알고 메모 같은 일기를 적는다. 불편한 진실을 알고 존엄하게 죽는 것을 원한다. 당신이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할 때 어찌 될 것인지를 생각하면 불안한 일이다. 그래서 그때가 되면 안락사를 시켜달라지만 가족들은 쓸데없는 말 말라고, 말도 안 된다고 펄쩍뛴다. 그러나 현실은 고통이다. 벽에 0칠을 할 때 까지 살라고 하지만 당해보면 못할 일이다. 건강은 점점 더 나빠져 간다. 우려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요양병원에 보냈다가 퇴짜를 맞은 연희씨는 중증이다. 끝까지 아내를 집에서 돌보겠다는 남편도 지쳐간다. 거들어 줄 딸은 결혼을 했고 임신을 했다. 왜 금세 먹고 또 먹으려 할까? 냄새나는 빨래와 목욕은 감당한다고 해도 불을 내거나 가출을 하는 것은 힘들다.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어서 서로 손을 묶고 잔다. 죽일 수는 없으니 죽어주기를 바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면제를 먹여서 계속 재워야 할까? 벽에 0칠을 하는 환자는 원쑤다. 의사는 정신병동에 가두라고 조언한다. 이를 어찌할꼬?


‘그대 어이가리’는 일찌감치 제 50회 남부 영화 예술 아카데미 영화제 6관왕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51관왕이 되었다. 특히 제42회 파이브 콘티넨츠 국제영화제에서는 단일 영화 최초로 11개 전 부문에서 수상을 했다. 또한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촬영상, 사운드 디자인상 등 다양한 영역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은 만큼 ‘그대 어이가리’는 완성도가 높다. 배우들의 열연 덕분이다. 남편 동혁은 소리꾼 같다. 국내에서는 22년 4월에 열린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다. 이제 3월 8일 개봉한다. 오랜만에 피해갈 수 없는 우리들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다. 안락사, 존엄사에 대한 많은 논의를 하게 될 것 같다.


남편은 아내를 정갈하게 고운 한복으로 차려 입히고 휠체어를 밀며 마지막 여행을 한다. 들꽃들이 다투어 핀 어느 호숫가, 아내는 후련했을 것이다. 속이 탁 트이는 너른 호수. 시원한 바람. 기억을 못해도 느꼈을 것이다. 혹시, 이런 곳이라면 죽어도 한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휠체어를 탄 채로 함께 물속으로 들어가면 어쩌나 싶어 조마조마 하다. 물이 깊지 않기를 바랐다. 낭떠러지가 아니어서 안심이다. 진도 씻김굿의 길 닦음 대목을 부르면서 ‘민살풀이춤’을 추는 남편은 애절하기만 하다. 아니 간절했을까? 살기라고는 느끼지 못했다. 우리가 많이도 들어서 아는, 한을 느끼게 하는 우리 소리다. “간다간다 나는 간다. 북망산천 나는 간다~”는 구슬픈 곡 소리에 묻히는 장면 하나. 


맛있게 먹으라고 아내에게 건네준 찹쌀떡. 기도하듯이 온 힘으로 진혼곡을 부르는 남편은 못 들었을 것이다. 찹쌀떡이 목에 걸려 켁켁거리다가 부들부들 떨며 이내 조용해 진 시간은 30초나 될까? 빌어먹을! 인생이 이건 아니잖아. 뜨거운 눈물은 왜 쏟아지는 거야. 안락사를 바라던 아내는 고마워했을까? 찹쌀떡으로 ‘미필적 고의’의 살인을 했다고 말할 사람 누군가요? 이게 남의 일인가요?


a2440304f65412dc3d8b2453f9667691_1678737368_8979.jpg
 

■ 조기조(曺基祚 Kijo Cho)


- 경남대학교 30여년 교수직, 현 명예교수 

- Korean Times of Utah에서 오래도록 번역, 칼럼 기고 

- 최근 ‘스마트폰 100배 활용하기’출간 (공저) 

- 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비상근 이사장으로 봉사 

- kjcho@uok.ac.kr  

뉴욕의 말똥 걱정, 그리고 파괴적 혁신기술

댓글 0 | 조회 287 | 2024.03.26
아내가 암으로 수술을 받고 회복중일 때에 누가 자기 혈액의 백혈구(NK세포)를 추출해 증식시켜 도로 주입하면 치유와 회복이 빠를 것이라고 해서 그걸 해 보았다. … 더보기

건양하면 다경하다고?

댓글 0 | 조회 254 | 2024.03.13
1년을 24개로 나누어 절기(節氣)를 두니 한 절기는 반 달(15일) 만에 돌아온다. 절기의 시작은 입춘(立春)이고 올해는 2월 4일이다. 입춘이 지나고 15일(… 더보기

대붕(大鵬), 관정(冠廷) 이종환

댓글 0 | 조회 297 | 2024.02.28
TV에서 장학퀴즈를 보고 다들 어찌 그리도 똑똑하고 많은 것을 아는지 그저 놀랍기만 하였다.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이 분위기를 띄워주면 “전국 고등학생들의 건전한… 더보기

평양문화어와 한류

댓글 0 | 조회 315 | 2024.02.13
북에서 한때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던 모양이다. 몇 년 전에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라고 있었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다가 아무리 돌풍이… 더보기

기계고객의 시대

댓글 0 | 조회 348 | 2024.01.16
전 세계의 90개국 이상의 기업에 컨설팅을 하는 가트너(Gartner)사는 85개의 지점에 거의 2만명 가까운 직원을 두고 있다. 직원의 대부분이 똑똑이들이라 브… 더보기

환갑을 맞은 라면

댓글 0 | 조회 586 | 2023.12.12
우리나라의 라면 역사가 오래된 줄은 알았지만 알아보니 정확히 올해로 환갑이란다. 그러니까 1963년 9월 15일에 삼양식품에서 라면을 출시했다. 북한에서는 라면(… 더보기

우즈벡 다리를 만지고

댓글 0 | 조회 428 | 2023.11.15
앞 다리인지 뒷다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우즈벡의 다리를 만져 보았다. 오래전에 배고파서 못 살겠다던 나라를 생각하면 되겠다. 대졸 사원 월급이 백만 원이면 아주 잘 … 더보기

우즈벡 겉핥기

댓글 0 | 조회 494 | 2023.10.10
우즈베키스탄에 오면서 선입견에 휘둘리지 않으려 일부러 알아보지 않고 왔다. 저녁에 공항에 내려 숙소로 오는데 상당히 놀랐다. 운전이 왜 이러지? 시내의 도로는 우… 더보기

미션 임파서블

댓글 0 | 조회 571 | 2023.07.25
최근에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되었다. 수 차례 합의가 안 되다가 표결로 결정 난 것이다. 시급 1만원을 넘기느냐로 모두들 촉각을 곤두세웠는데 넘기지는 않았다. 물… 더보기

짝사랑을 하는 이유

댓글 0 | 조회 548 | 2023.06.28
혼자 있고 싶은 때가 있다. 별로 할 말이 없기도 하지만 하고 싶지 않은 대화를 주고받아야 하는 것이 싫어서다. 오늘따라 점심으로 추어탕이 먹고 싶었다. 그런데 … 더보기

출제자의 의도

댓글 0 | 조회 558 | 2023.06.13
영어는 문장을 다 들어야 한국어로 통역을 할 수 있다. 문장구조가 한국어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말을 하는 동안에는 영어가 잘 들리지도 않는다. 너무나 빠르게 … 더보기

사랑해 메간

댓글 0 | 조회 736 | 2023.04.11
눈길을 운전하던 일가족이 교통사고를 당했고 뒷자리의 어린 딸만 살아남았다. 하나뿐인 이모가 이 아이를 키우기로 자처하고 데려오지만 눈앞이 캄캄해 진다. 육아 경험… 더보기
Now

현재 그대 어이가리

댓글 0 | 조회 705 | 2023.03.14
내가 안 할 걱정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영화 시사회를 한다기에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그냥 보았다. ‘그대 어이가리’라는 영화인데 사전 정보 없이 보다가 서서히… 더보기

전파와 소통

댓글 0 | 조회 543 | 2023.02.28
연못 같은 조용한 수면에 돌을 던져 본 적이 있는가? 빗방울이 내리는 연못을 보면 작은 동그라미들이 퍼져 나가다가 서로 부딪히는 모습이 어지럽지만 아름답다. 그 … 더보기

까꿍은 하고

댓글 0 | 조회 638 | 2023.02.15
1월 30일, 실내에서 마스크를 벗어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졌다.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거나 말거나 웬 참견이냐고 하는 말이 있는데 국가가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했고… 더보기

입 친구라니?

댓글 0 | 조회 1,044 | 2023.01.18
한국에서 오래전에 역할대행이라는 것이 유행했었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SNS에서 유료 아르바이트를 신청하는 것인데 애인의 역할을 하거나 부모, 친구의 역할을 대신해… 더보기

반도체가 되리니

댓글 0 | 조회 733 | 2022.12.21
인간이 불을 발견하고도 오랜 시간이 흘러 증기의 힘을 이용하게 되었다. 그 다음의 놀라운 발명이 전기 아닐까 싶다. 전기로 세상을 밝히고 데우고 의료기기를 만들었… 더보기

칼로 무 자르듯

댓글 0 | 조회 738 | 2022.12.07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나오고 어떤 단어들에 대해 맞춤법 표기가 바뀌어 국어시간을 끝낸 지 오래된 나로서는 가끔 어줍은 경우를 본다. 익었던 말들이 표준말이 아니라… 더보기

트리커트릿!

댓글 0 | 조회 753 | 2022.11.09
"내더우다네가가라!” 무슨 말인지 알겠는지요? “내 더위, 다 네가 가져가라!”라는 경상도 말이다. 오래전, 미국에 살았을 때 핼러윈의 장식을 처음 보고는 별걸 … 더보기

버린 비닐봉투

댓글 0 | 조회 757 | 2022.10.25
명절의 시가(媤家)는 부담스럽다. 그것이 시골에 있으면 더 불편하다. 시골에서 자란 나도 불편한데 도회지에서 자란 아내는 얼마나 불편했을까? 요즈음은 전기와 수도… 더보기

아날로그와 디지털

댓글 0 | 조회 686 | 2022.10.12
11시 59분 59초는 12시 1초전이다. 시침과 분침, 초침이 있는 아날로그 시계는 시침과 분침이 거의 12에 있다. 누가 봐도 12시다. 그런데 디지털 시계의… 더보기

절식 만사(節食 萬事)

댓글 0 | 조회 677 | 2022.09.27
내동댕이치고 멀리로 집어 던져버리고 싶은 것이 헌 신짝이다. 헌 신짝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 그간의 애증이 있다 해도 어쩌겠는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니 말… 더보기

개니프?

댓글 0 | 조회 662 | 2022.09.13
직장의 일로 강원도 태백시에 3일을 있었다. 태백산으로 익숙한 이름, 태백시는 아담하다. 높은 곳인지 한 여름에도 벌레가 없어서 의아스러웠다. 빛을 보고 몰려드는… 더보기

우영우와 조기조

댓글 0 | 조회 943 | 2022.08.23
무덥고 힘든 여름에 즐겁고 기다려지는 일이 있어서 어찌 이런 일이 있나 싶다. 자다가 떡을 얻어먹는 기분이다. 화젯거리가 풍성해 졌고 던지면 무는 낚시처럼 재미가… 더보기

메타버스라고요?

댓글 0 | 조회 943 | 2022.08.09
한국 딜로이트그룹은 6월에 ‘글로벌 메타버스 보고서’를 내었는데 메타버스 및 XR(확장현실) 산업은 2021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랐고, 각종 기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