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린 비닐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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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버린 비닐봉투

0 개 757 조기조

명절의 시가(媤家)는 부담스럽다. 그것이 시골에 있으면 더 불편하다. 시골에서 자란 나도 불편한데 도회지에서 자란 아내는 얼마나 불편했을까? 요즈음은 전기와 수도, 가스가 들어오고 가전제품, 특히 냉장고와 에어컨, TV가 있으니 한편으로는 도심을 떠나 약간은 여행 기분이라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명절이 다가오면 아내의 눈치를 살피고 기분을 맞추어 주어야 했다. 시가에 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 시골집은 개량되지 않은 초가삼간에 지붕만 양철로 바꾼 것이었다. 화장실은 따로 떨어진 재래식이어서 냄새도 심했고 화장지도 제대로 없었다. 나무로 불을 때는 아궁이에다 펌프질을 해서 물을 퍼 올려 쓰니 머리감고 샤워는커녕 세수조차도 거북스러웠다. 그러니 거기서 나고 자란 나도 불편한데 부산에서 나고 자란 아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번 추석에 어느 시골집 맏며느리가 와서 조용히 음식을 장만하고 설거지하고 돌아가는 길에 시어머님이 음식을 바리바리 싸서 검은 비닐봉투에 담아 주시더란다. 작은 며느리는 미리 안 가져가겠다고 밝혀 훌훌 떠났고 큰 며느리는 고맙다며 받아들고 오다가 휴게소 쓰레기통에 쳐 박아버리고 말았단다. 검은 비닐 봉투에 가득 담은 음식, 이걸 언제 다 먹지? 뭐 이 까짓것을 싸 주시나...... 일 년에 서너 번은 시집가서 고생하자고 다짐하면서 남편 체면은 세워주자 마음먹은 일이었지만 며느리는 피곤하다.


집에 와서 쉬는데 시어머님의 전화가 왔더란다. 일어나기도 귀찮아 누워서 받으며 말이사 “어머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하는데 “에미야, 네가 하도 착하고 고마워서 둘째 몰래 돈을 좀 넣었다. 그걸로 몸보신하고 새 옷도 사 입어라, 고맙다.” 하시더란다. 큰돈은 아니지만..... 하시면서 500만 원쯤 넣으셨단다. 단걸음에 그 휴게소의 쓰레기통을 뒤지는데 산 같은 쓰레기 더미에서 어찌 찾겠는가. 쓰레기 더미를 뒤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노인들만 남은 농어촌, 간간이 귀농귀촌한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농어촌은 비어만 간다. 빈집이 늘고 빈터를 보자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 싶다. 마을에는 아기 울음이 그친지 오래고 어린애 구경을 하기 힘들다. 일손이 없어 가꾸지 않는 논밭도 많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없어진지 수십 년이다. 무슨 대책이랍시고 꾀를 짜내어 보지만 그게 어찌 쉽게 해결될 일인가? 그런데 이 분들은 객지에 사는 자식들 걱정이다. 소식이 궁금하고 사랑스런 손주들도 보고 싶다. 내가 가끔 어머니를 그리면서 읊조리는 시가 있다. 무슨 그런 복을 타고 나셨는지? 자식 많은 복 말이다. 9남매를 키웠으니 그 고생을 어찌 다 말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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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가 ‘바다’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받아’주기 때문이다. / ‘괜찮다.’ / 그 말 한마디로 / 어머닌 바다가 되었다.” 이렇게 시인 ‘문무학’은 어머님을 “바다”라고 읊었다. 나는 하늘이라 부르고 싶다. 그것도 목 놓아 말이다.


추석이 지나니 유난이 맑고 푸른 하늘이라 무엇을 어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걱정스런 태풍이 천지를 씻어주고 식혀주었다. 시원한 바람이 맑고 푸른 하늘에서 내려온다. 아픈 사람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물이 흐른다. 내 두발로 걷고 돌아다니는데 지장이 없어서 감사하다. 굶지 않는데 무슨 욕심을 더 낼까? 허겁지겁 쫓기는 듯 사는 무리들을 벗어나 탐스럽게 익어가는 들녘을 보는 것도 행복이다. 남은 날을 세어 보지는 않으련다. 


태국에서의 일이다. 카페 같이 아늑한 어느 절의 기둥에 붙어 있는 표를 보고 놀랐다. 살아 온 날과 살아 갈 날을 쉽게 보여주는 표다. 나이 별로 예상되는 남은 수명을 기대 여명이라 한다. 그 나라의 평균수명에서 계산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인생을 70으로 계산한다. 환갑이 된 사람은 10년인 3,650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사실, 건강하게 두발로 움직이며 남을 도우며 살 수 있는 나이가 70이라면 그리 무리는 아닐 것이다. 70을 살지 못하고 간 사람도 부지기수며, 70에 건강하지 않은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2020년의 통계를 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남자 80.5세, 여자 86.5세로 전체 평균 83.5세 정도 된다. 그 중 건강수명은 2020년 기준, 평균 66.3세다. 즉, 노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남자는 평균적으로 약 14년, 여자는 20년가량을 힘들게 살다 간단다. 이때에 돈이 많이 들지만 충분히 준비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 맞고 자식들도 또 제 자식이 있고 일이 바쁘니 아픈 부모는 짐이다.


제 발로 걸으며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화장실에만 제 발로 다녀도 좋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건강이 하루아침에 나빠지지 않는다. 성장이 멈추면 곧 노화가 시작되는 것이니 오랜 습관과 생각, 식생이 건강을 결정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안 좋으면 신호가 온다. 이때부터라도 잘 챙기면 다행이다. 건강검진도 자주하고 병은 초기에 잡는 것이 절대적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비우라는 말에 공감한다. 욕심내지 않는 것, 신세지지 않는 것, 미미하지만 재능기부를 하는 것, 이런 것들이 내가 실천하는 내려놓고 비우는 일들이다. 비우는 김에 속도 좀 비우려 한다. 몸 속, 마음 속, 지갑 속 모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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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기조(曺基祚 Kijo Cho)


- 경남대학교 30여년 교수직, 현 명예교수 

- Korean Times of Utah에서 오래도록 번역, 칼럼 기고 

- 최근‘스마트폰 100배 활용하기’출간 (공저) 

- 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비상근 이사장으로 봉사 

- kjcho@u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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