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그리움

0 개 901 수필기행

■ 최 민자 


전지를 갈아 끼워도 가지 않는 손목시계처럼 그는 그렇게 그녀라는 길 위에 멈추어 있다. 그녀와 관련된 기억들이 그에게는 여전히 아프고 쓰리다. 이별의 모서리는 언제나 날카로워 돌아볼 때마다 마음이 베이지만 그녀라는 모퉁이를 통과하지 않고 우회하는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다. 진한 눈썹, 둥근 이마, 상큼하면서도 허스키한 탄산수 음색이 생각나 아직도 심장이 쿵, 떨어져 내린다 하였다.


한 사람을 그리워할 때 그의 공간은 시간 속으로 압축된다. 아니 확장된다. 공간을 함께 누릴 수 없는 이들에게는 시간만이 공존의 장소가 된다. 제 안의 허깨비에 끌려다니느라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는 시간, 그리움이란 부재가 존재를 물어뜯는 상황이다. 부재하는 현존이고 현존하는 부재다. 태어나는 족족 새끼들을 삼켜버리는 신화 속 크로노스처럼 현재는 미래를 잡아먹고 과거는 현재를 끌어내리지만 시간의 지층을 뚫고 역습해 오는 과거는 현재를 일거에 돌파하고 미래까지 인질로 붙잡아 버린다.


2489fba241801ee5941b1958754892e9_1651033936_2996.png
 

그리움은 전신증후군이다. 살아 있음의 감각을 통증으로 일깨워 주는 풍크툼(punctum) 같은 그것은 기다림과 원망, 욕망과 체념의 착종 위에서 허열虛熱처럼 피고 지는 난폭한 열정이다. 손 닿지 않는 몸속 어디, 감각세포와 신경줄을 이따금씩 교란하는 존재의 빗장뼈다. 실체는 링 밖으로 진즉 걸어 나갔는데 보이지 않는 그림자를 붙들고 헛되이 스파링하는 새도 복서의 시끄러운 침묵이다.


기억과 상상 속을 종횡무진 오가며 그는 그녀의 부재를 견딘다. 어떤 대체재도 소용이 없다. 무명無明과 번뇌 속에서 일어서다 주저앉다 그렇게 반생을 건너왔다 했다. 화분에 심어둔 꽃처럼 결박당한 시간들. 그립다는 말은 서럽다는 말과 이음동의어異音同意語일까. 돌아서는 어깨가 잎 진 나무 같았다. 이미 지난 시간들이 현재의 멱살을 쥐고 발목을 걸고 넘어뜨리는, 그리움의 존재 저편의 불수의근이다. 오직 인간만이 시간의 이빨자국에 피를 흘리고 환상의 뱀에게 살이 뜯기어 나아가지 못하고 뒷걸음질 친다.




바람의 말

댓글 0 | 조회 590 | 2023.05.23
누가 왔었나?마당이 어수선하다. 담벼락으로 기어오르던 호박은 넝쿨째 떨어져 뒹굴고 텃밭 고추는 밭고랑에 드러누웠다. 휘어지게 열매를 키우던 자두나무 큰 가지도 꺾… 더보기

제 2의 나

댓글 0 | 조회 583 | 2023.01.18
두 손을 펴서 활짝 벙글어지는 꽃잎 모양을 만든다. 손톱마다 살구꽃 배꽃이 하늘거리고 푸른 냇물도 흐른다. 손톱에 꼼꼼히 그림 그리는 게 참 즐겁다. 류마티스 관… 더보기

굄대

댓글 0 | 조회 621 | 2022.09.14
■ 최 현숙군불 지핀 방안이 후끈하다. 퀴퀴한 냄새가 훈기를 더하는 아랫목에 두레상이 놓여 있다. 갓 지은 햅쌀밥에 김장김치와 청국장. 농사철이면 동동걸음을 쳐도… 더보기

행복한 고구마

댓글 0 | 조회 810 | 2022.07.12
내가 강릉영림서 진부관리소 말단 직원일 때 월급이 칠천 몇 백 원이었다. 그 돈으로 어린 애 둘과 아내와 내가 한 달을 빠듯하게 살았다. 어떤 때는 아내가 담배를… 더보기

꽃보다 할매

댓글 0 | 조회 977 | 2022.05.24
천지가 꽃으로 들썩입니다. 호들갑으로 들었던 꽃 멀미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날들입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꽃구경 나온 사람들로 몸살을 앓는 강변에 오늘은 색다… 더보기
Now

현재 그리움

댓글 0 | 조회 902 | 2022.04.27
■ 최 민자전지를 갈아 끼워도 가지 않는 손목시계처럼 그는 그렇게 그녀라는 길 위에 멈추어 있다. 그녀와 관련된 기억들이 그에게는 여전히 아프고 쓰리다. 이별의 … 더보기

첫사랑

댓글 0 | 조회 1,083 | 2022.03.09
■ 노 혜숙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손에 들고 있던 도시락을 덤불숲에 던졌다. 딸그락, 빈 도시락에서 수저가 날카로운 쇳소리를 냈다. 가슴이 콩닥거… 더보기

내가 방랑자로 떠돌 때

댓글 0 | 조회 936 | 2022.02.22
■ 장 기오젊었을 때 나는 장돌뱅이처럼 세상을 떠돌았다. 한 달에 20일 이상을 보따리를 싸들고 이 도시, 저 항구로 배회했다. 내가 그렇게 떠돌면서 느낀 절경(… 더보기

명태에 관한 추억

댓글 0 | 조회 781 | 2022.02.09
늦가을이나 초겨울이면 우리집 부엌 기둥에 명태 한 코가 걸려 있었다. 산골 그을음투성이의 초가집 부엌 기둥에 한 코로 걸린, 다소곳한 명태 한 쌍의 모습은 ‘천생… 더보기

바둑이

댓글 0 | 조회 989 | 2022.01.27
■ 최 현숙내 방 벽에는 그림 한 점이 걸려 있다. 이사를 해도 같은 위치에서 눈을 맞추는 사십 년 지기 룸메이트다. 검정 바탕에 배와 목덜미로 하얀 털빛이 조화… 더보기

누비처네

댓글 0 | 조회 769 | 2022.01.11
■ 목 성균아내가 이불장을 정리하다 오래된 누비처네를 찾아냈다. 한편은 초록색, 한편은 주황색 천을 맞대고 얇게 솜을 놓아서 누빈 것으로 첫애 진숙이를 낳고 산 … 더보기

낙타 이야기

댓글 0 | 조회 844 | 2021.12.22
■ 최 민자까진 무릎에 갈라진 구두를 신고, 털가죽이 벗겨진 엉덩이로 고고하게 걸어가는, ‘머리는 말 같고 눈은 양 같고 꼬리는 소 같고 걸음걸이는 학 같은’ 동… 더보기

동생을 업고

댓글 0 | 조회 1,169 | 2021.12.08
■ 정 성화박수근의 그림 ‘아이 보는 소녀’를 보고 있다. 이마를 일직선으로 가로지른 상고머리에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의 소녀는 동생을 업은 채 해맑게 웃고 있다.… 더보기

먼길

댓글 0 | 조회 934 | 2021.11.23
■ 노 혜숙나는 물과 불처럼 서로 다른 부모님 사이에서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를 닮아 지극히 내성적이었고, 어머니를 닮아 감성이 넘쳤다. 밴댕이처럼 좁은 속은 … 더보기

겨울 편지

댓글 0 | 조회 1,041 | 2021.11.10
​■ 반 숙자방금 우체부가 다녀 갔다. 요즘 부쩍 늘어난 우편물에 우체부는 영문 모를 의아한 눈길을 보낸다. 오늘로서 편지는 65통을 채웠다. 9월, 10월 두 … 더보기

그대 뒷모습

댓글 0 | 조회 915 | 2021.10.27
■ 반 숙자서녘 하늘에 별이 돋는다. 마음이 잔잔해야 보이는 초저녁별, 실눈을 뜨고 별 속에 아는 얼굴이 있나 찾아본다.지난겨울에는 눈이 자주 많이 내렸다. 눈이… 더보기

사라지는 것은 시간이 아니다, 우리다

댓글 0 | 조회 968 | 2021.10.12
■ 장 기오요즘도 나는 수시로 발 앞꿈치의 굳은살을 면도날로 베어 낸다.이렇게 안 하면 발바닥이 아프다.함께 일하는 연출진이라고는 달랑 연출, 조연출 둘 뿐이었던… 더보기

『유년 기행』 자전거

댓글 0 | 조회 777 | 2021.08.24
여느 때처럼 맴생이 두 마리를 끌고 들로 나왔다. 얼마 전 아버지가 암컷 맴생이 한 마리를 사와 맴생이 친구가 하나 더 늘었다. 산과 들이 기지개를 펴고 응달 진… 더보기

돼지불알

댓글 0 | 조회 1,460 | 2021.08.11
■ 목 성균상달 저녁 때, 사랑에 군불을 지피고 앉아서 쇠죽솥의 여물 익는 냄새를 맞으면 잔잔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잘 마른 장작이 거침없이 불타는 평화로… 더보기

콩 심은데 콩 나고

댓글 0 | 조회 984 | 2021.07.28
■ 반 숙자미명(未明)이다. 가만히 뜨락을 내려 밭으로 나선다. 우리집 과수원은 뽀얀 안개 숲을 헤엄쳐 나오느라 수런수런하고 있다. 가슴을 펴고 폐부 깊숙이 싱그… 더보기

유년 기행

댓글 0 | 조회 805 | 2021.06.22
■ 이 한옥동녘이 열푸름히 열리고 희끗희끗한 서리가 엷어지고 있었다. 나는 아침 새를 쫓으러 논으로 향했다. 추수를 앞둔 즈음의 새쫓기는 내가 맡은 임무였다. 옷… 더보기

말하고 싶은 눈

댓글 0 | 조회 910 | 2021.06.10
■ 반 숙자우리 집 파수꾼 미세스 짜루는 해마다 한 번씩 출산(出産)을 한다. 정월 대보름쯤이면 휘영청 찬 달빛 아래 연인을 찾아온 미스터 견(犬)공들이 여기저기… 더보기

소풍

댓글 0 | 조회 828 | 2021.05.25
■ 이 한옥소풍 가는 날은 기분이 붕붕 떴다. 다른 날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 나설 차비를 했다. 어머니는 벌써 하얀 쌀밥 도시락을 준비했다. 멸치볶음, 콩자반, … 더보기

사진첩

댓글 0 | 조회 1,050 | 2021.05.12
■ 최 현숙‘똑똑, 택배입니다.’아들이 보냈군요. 큼지막한 두 개의 상자가 사진첩으로 빼곡하네요. 웬만한 것은 버린다더니 추억까지 버릴 수는 없었던 모양이지요. … 더보기

가을 탓인가?

댓글 0 | 조회 972 | 2021.04.29
하늘은 눈물이 날 만큼 투명했다.태풍 ‘산바’가 지나간 며칠 후부터 그랬다. 아침마다 안개가 자욱이 산허리를 감아 피어오르고 나무들은 비릿한 냄새를 풍겼다.마당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