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꽃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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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꽃이 피었습니다

room4ken
0 개 1,070 김지향

몇 달 전에 고구마 한 개를 땅에 심었는데, 그 고구마에서 제법 많은 줄기가 자라났다. 도시에서만 살았기에, 텃밭을 가꿀 줄도 모르고, 진득하니 식물을 잘 가꿀 줄도 모르는 나이다. 그저 잘라 놓은 꽃으로 꽃꽂이를 할 줄만 아는 반쪽짜리 꽃꽂이 선생이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부끄럽기 한이 없지만, 그렇다고 자기비하를 하기는 싫다. 꽃들이 모두 다 다르듯 사람들 역시 모두 다 다르기에 잘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게 정신 건강상 좋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나는 뒤늦게나마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들에 대한 애정이 늘어나고 있다. 다 나를 도와주는 친구들 덕분이다. 파, 미나리, 부추, 근대, 파슬리, 고수, 상추, 머위, 파프리카, 고추, 민트, 딸기, 호박...들을 맛보기로만 심었는데 금손인 친구 덕분에 아주 잘 자라주었다.


내 주제에 어떻게 이런 채소들을 키울 엄두를 냈겠는가? 


도시에서 태어나서 도시생활을 하기만 했었던 나에게 흙을 만지는 일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텃밭 가꾸기를 몇 번 시도하긴 했었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쉽게 살려는 게으른 마음이 앞서서였을 거다. 


어쨌건 친구들 덕분에 마음을 내어 채소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손이 많이 안 가고 혼자 잘 자라는 채소들부터 시작을 하였다. 친구가 모종을 심어 놓으니, 남편이 물을 주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친구가 와서 들여다보면서 이것저것 챙겨주어 재미가 쏠쏠하다.

  


이제부터 나는 예쁜 꽃을 피운 고구마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6년 전에 내 폐와 배에 물이 차서 병원에 입원했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나는 한동안 제대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그나마 조금이라도 먹을 수 있는 게 고구마였다. 근 한 달 내내 매일 작은 고구마 한 개씩 삶아 먹으면서 속을 달랬다. 삶은 고구마를 천천히 먹으면 속이 편했기 때문이다. 


고구마를 먹을 때마다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참 많이 났었다. 고구마는 엄마가 가장 좋아하셨던 간식거리였기 때문이다. 아마 나도 엄마를 닮아서 고구마가 몸에 잘 맞았던 거 같다. 


엄마가 자주 아프셨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가 참 외로우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신경을 써봤자 얼마나 써줄 수 있겠으며, 자식들 또한 엄마 곁을 지키면서 제대로 수발해 줄 수 있겠는가. 그저 자신스스로 견뎌내며 자신한테 맞는 음식을 찾아 먹으면서 기운을 차리는 게 상책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나는 게러지에 있는 채소 바구니 안에서 싹이 튼 고구마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고구마를 사발에 넣어 창가에 두었더니, 넝쿨들이 자랐다. 몇 개의 넝쿨이 유리창 사이로 뻗어가는 게 재미있어서 꽤 오랫동안 물을 주면서 키우고 있었다. 


속이 노란 고구마는 넝쿨이 빨리 자랐지만, 자색 고구마 넝쿨은 아주 더디게 자랐다. 그런데 자색 고구마 넝쿨이 훨씬 단단하고 튼실하면서도 아이비처럼 생긴 잎들이 매우 예뻤다. 


일 년을 넘게 부엌의 커다란 창문을 장식하면서 보기 좋게 잘 자랐다. 어쩌면 2년 정도 키웠을 수도 있었겠다. 요즘 내가 시간 가는 걸 잘 모르지만, 오래 키웠던 기억은 확실하다.


그렇게 오랫동안 키웠던 고구마가 영양가 없는 물만 줘서 그랬는지, 점점 시들시들해지면서 누렇게 떡잎이 지고 있었다. 그냥 버릴까 생각하다가 땅에 묻기로 했다. 뒤뜰에 파들을 심어 둔 옆 땅에 묻었다. 


고구마 수확을 목표로 심은 게 아니라서 그동안 관심 있게 보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고구마 잎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는 게 보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넓은 땅을 고구마 줄기와 잎이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고구마가 싹이 났을 때 버리지 못해 창가에 두었던 것인데, 창에 그림을 그리듯 줄을 그어가면서 자라더니, 땅에서는 그 이상의 번식력을 보인 것이다. 대단한 자색 고구마.


자색 고구마의 효능을 알아보니 자생력만큼이나 효능도 탁월하다.


체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혈당을 조절해주며, 혈중 콜레스테롤을 저하시켜서 동맥경화나 당뇨병을 예방하고 치료해준다고 한다. 


간염, 간경화, 급성간염, 간질환 등 간질환 개선에 효과적이며, 숙취 해소, 해독 작용, 간 세포 재생에 도움을 준단다. 눈 건강에도 좋고, 피부와 뼈 건강에도 좋으며, 다이어트 효과도 크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 몸에 유익한 자색 고구마가 꽃을 피워 나를 놀라게 한 것이다. 나는 고구마가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니 고구마 꽃을 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꽃을 보자마자 나는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고구마 꽃이 있는지부터 확인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고구마 꽃을 본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도 같았단다. 100년에 한 번 필까말까 하는 꽃이었단다. 그래서 꽃말이 ‘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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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6~7년 전까지만 해도 고구마가 꽃을 피우면 지방 신문에 날 정도였는데, 기후 변화로 요즘엔 흔한 꽃이 되어 버렸단다, 아무튼 고구마를 심은 첫 해에 나는 아주 예쁜 꽃을 보게 된 것이다.


나팔꽃 모양으로 나팔꽃보다 좀 더 작으며 앙증맞고 야무지게 생긴 꽃. 보랏빛 고구마 속살만큼이나 예쁜 보랏빛 별 문양을 머금은 모습이 신비스럽기만 한 꽃. 이 꽃이 분명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것만 같다.


이미 요즘의 난 행운의 여신이 나와 함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 여신은 우리 집 텃밭에 고구마 꽃까지 피게 해서 내 행운을 더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이상으로 하루하루를 즐겁게 지내고 있는 화가 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제 다리를 다쳐 기브스를 했다고 말했다. 보도를 걷다가 삐죽 튀어나온 보도블럭에 발이 걸려서 앞으로 꼬꾸라진 것이다. 다행이 얼굴에 큰 상처는 나지 않았고 안경에 조금 긁힌 정도였지만, 무릎과 다리가 문제였다.


다친 순간은 움직일 수 있었는데, 집에 돌아와서부터 다리가 붓고, 걸을 수도 없었다고 한다. 가까이 사는 며느리와 함께 병원에 가서 MRI 촬영을 하였는데, 다행히 인대가 찢어지지 않았고, 뼈에 금이 간 것뿐이란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하지만 다리에 기부스를 하였으니, 목발 없이는 걸을 수도 없고, 여러모로 많이 불편할 것이다. 한동안 운전하기도 힘이 들고 금이 간 뼈가 잘 붙도록 푹 쉬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그런데도 언니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밝았다. 이렇게 다친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일 거라고 말한다. 초 긍정적인 생각으로 지금 이 순간이 최상의 시간임을 인식하면서 살고 있는 언니. 긍정의 화신인 언니에게도 행운의 여신이 늘 함께하길 바란다.


  “언니! 우리 집에 고구마 꽃이 피었어. 꽃말이 행운이래. 언니한테 그 행운을 보내줄게. 얼른 회복해서 좋은 작품 많이 낳길 바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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