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을 업고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동생을 업고

0 개 1,186 수필기행

■ 정 성화


박수근의 그림 ‘아이 보는 소녀’를 보고 있다. 이마를 일직선으로 가로지른 상고머리에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의 소녀는 동생을 업은 채 해맑게 웃고 있다. 앞코가 둥그스름한 까만 고무신이 소녀가 입고 있는 무명치마와 어우러져 더욱 소박한 모습이다. 소녀는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동생을 연이어 낳아주셨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나의 동생은 넷으로 불어났다. 동생이 자꾸 생긴다는 것은 한창 놀고 싶어 하는 내 또래의 아이들에게 그리 신나는 일이 아니다. 나가 놀 수 있는 자유가 이분의 일에서 사분의 일로, 다시 팔분의 일로 줄어든다는 의미다.

 

우리 집은 아기를 길러내는 협동조합이었다. 언니는 어머니와 함께 기저귀 빨래를 했으며, 나는 아기가 목을 가눌 수 있을 때부터 아기를 업어 재우는 일을, 내 아랫동생은 기저귀를 개는 일이나 방청소를 도왔다. 아기도 어른처럼 가만히 누워서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겨 있다가 조용히 잠이 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꼭 등에 업혀서 바깥나들이를 저하고 싶은 만큼 한 다음에야 동생은 잠이 들었다.

 

업힌 자세를 투시도로 그리면 거의 앉은 자세에 가깝다. 그런데도 방바닥에 눕기보다 굳이 등에 업히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어른이 되면 아무리 잠이 온다 해도 눕지 못하고 앉은 채로 선잠을 자야할 때가 많다는 사실을, 아기가 미리 알고서 일찌감치 연습을 해 두려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등에는 방바닥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음을 아기도 본능적으로 느끼는 모양이다. 등 너머로 전해져오는 숨결과 체온에서,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의 편안함을 다시 느껴보려는 것은 아닐까.


동생을 업고 집을 나서면 갈 데가 별로 없었다. 동생의 잠을 탁발(托鉢)하러 나서는 그 일이 나에게는 꽤 힘들게 느껴졌다. 집 주위를 빙빙 돌다가 골목에 피어있는 분꽃의 개수를 헤아려보기도 하고, 옆집 옥상에 널린 빨래가 몇 개인지 세어볼 때도 있었다. 이따금 들려오는 엿장수의 가위 소리가 우리 집 골목의 정적을 더욱 깊게 하고 있었다.

 

좀 너른 공터로 나오면 친구들이 모여서 놀고 있었다.


“이 강산 침노하는 왜적의 무리를, 거북선 앞세우고 무찌르시니… ”


노래를 부르며 나풀나풀 고무줄을 넘거나, 바닥에 석필로 하얀 금을 그어놓고 사방차기(돌차기)를 하고 있었으며, 때로는 시원한 그늘에 모여 앉아 공기놀이나 소꿉놀이를 하기도 했다. 그럴 때는 동생을 재우는 것보다, 뛰어 놀고 싶은 내 마음을 재우는 것이 더 힘들었다. 내게 있어 ‘자유’란 등에 아무것도 업지 않은 홀가분함을 의미했고, 그 때 만큼 자유가 부럽고 빛나 보인 적도 없었다.

 

친구들이 어울려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으면, 등에 업힌 동생이 이내 포대기 속에서 몸을 뒤틀었다. 한 자리에 오래 서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이다. 언젠가 고무줄놀이를 너무 하고 싶어서, 옆에 있던 빈 사과상자에다 어린 동생을 담아놓고 아이들이랑 고무줄놀이를 했다가, 누군가 어머니에게 일러주는 바람에 단단히 혼이 난 적도 있다.

 

동생을 업어 재우는 것 못지않게 잠든 동생을 내려놓는 것도 힘들었다. 잠이 깊게 들었다 싶어서 집에 돌아와 동생을 방바닥에 살포시 내려놓는 순간,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다시 팔팔하게 되살아나는 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A/S(After service)는 전자 제품에만 있는 게 아니다. 나는 다시 동생을 업고 밖으로 나와야 했다. 그 때, 지나가던 이웃집 아주머니가 “아이고, 덩치도 작은 게 제 동생을 잘도 업어주네” 라고 했을 때, 공연히 서러움이 북받쳐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도 있다.

 

먼 데 산을 보면, 산이 산을 업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산의 등 뒤에 납작이 엎드린 산은 살풋 잠이 들었는지 아슴해 보인다. 산등성이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림 속 아기 보는 소녀의 어깨선 또한 부드러운 산의 능선을 닮은 듯하다. 그래서인지 소녀는 모든 생명체를 넉넉히 품어내는 산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동생을 업고 있으면 동생의 살 냄새, 새근거리는 숨소리, 동생의 꼼지락거림, 그리고 통통한 두 다리의 감촉 등, 그 모든 것이 나의 등에 그대로 전해져 왔다. 등에 느껴지는 체온이 여느 날 같지 않다거나 심하게 보챈다 싶으면, 대개 그 뒷날 병원에 데려갈 일이 생겼다. 바로 밑의 동생을 빼고는 다들 내 등 뒤에서 옹알이를 연습했고, 내 등에 오줌을 싸기도 했으며, 잠투정을 하느라고 내 뒷머리 가락을 쥐어뜯으면서 손아귀의 힘이 세어져 갔다. 막냇동생이 저 혼자 잘 걷게 되어 더 이상 업히지 않으려고 내 등을 밀쳐내었을 때, 나는 웬일인지 해방의 기쁨보다는 서운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동생을 업었을 때의 느낌은 나의 등에 그대로 내장(內藏)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내 아이를 낳아 처음으로 등에 업었을 때, 그 느낌은 한결 증폭되어서 내게 되돌아왔다. 아이의 숨과 나의 숨이 포개지면서 살과 살이 함께 호흡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어딜 가든지 내 아이를 업고 다녔었다.

 

서양에는 우리와는 달리 업고 업히는 문화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외국의 전쟁영화를 보면, 부상자라 해도 업어 나르는 게 아니라 들것에 싣던가 아니면 겨드랑이를 부축하여 질질 끌고 가는 수가 많다. 업는다는 것은 한 생명체의 무게를 고스란히 내가 감당하겠다는 의미이며, 한 사람의 걸음으로 둘이 나아가겠다는 뜻이다. 부모가 아이를 업어주고, 형이 아우를 업어주고, 다 큰 자식이 노모를 업는 풍습은 우리 문화에 있어 하나의 아름다운 결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를 그냥 업어주는 게 아니라고 한다. 독수리는 새끼를 등에 업고서 높은 곳으로 올라간 뒤 사정없이 아래로 떨어뜨린다고 한다. 그러면 새끼는 살기 위해 날개를 너풀거리게 되고, 어미 독수리는 새끼가 땅에 닿기 전 아래로 내려와서는 다시 업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어미의 등줄기에 엎드려 어미의 가뿐 숨결을 느낄 때, 새끼 독수리는 더 힘찬 날갯짓을 다짐하게 될 것이다.

 

아이들의 날개에 이젠 제법 힘이 올라 나의 등을 찾지 않게 되면서, 나는 자꾸만 등 언저리가 허전해져 왔다. 등이 먼저 ‘빈 둥지 증후군’을 앓는 듯 했다. 그 때 누군가 내게 문학을 공부해보라고 권했다.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감겨오는 지금의 자유를 굳이 마다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가슴이 속삭였을 때, 뒤쪽의 등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듯 했다. 문학이란 등짐을 질 때는 스스로 그만한 무게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등은 내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글 한 편을 업고 대열에 끼여서 가고 있다. 지금 업고 있는 이 글을 푹 재울 수 있을지, 그리고 방바닥에 제대로 내려놓을 수 있을지 잔뜩 걱정을 하면서.


■ 정 성화 


d2bf965eb8d7abba9d035d3a489c570c_1639006561_8471.jpg
 

200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풍로초’)로 당선,

2013년 서정시학 선정 ‘2013년 한국의좋은수필’에 선정, 수필 ‘동생을 업고’와 ‘크레파스가 있었다’가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현대수필문학상’, ‘정과정문학상’, ‘윤오영수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친구의 칭구

댓글 0 | 조회 829 | 2021.12.22
페이스북을 하는 인구가 수억 명이다. 그런데 자주 찾는 사람을 친구라고 한다. 친구를 맺으면 올리는 글이나 사진, 댓글을 바로 알려준다. 친구가 무엇일까? 친구 … 더보기

뉴질랜드에서는 암호화폐에 (Cryptocurrencies) 세금이 어떻게 부과됩니…

댓글 0 | 조회 2,634 | 2021.12.22
암호화폐는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화폐로 거래를 안전하게 하기위해 암호방식을 사용합니다. 가장 많이 거래되고 잘 알려진 암호화폐 중 하… 더보기

세밑단상

댓글 0 | 조회 835 | 2021.12.22
2021년 올해도 어김없이 연말이 다가왔습니다. 이제 며칠후면 크리스마스가 되고 또 다음주엔 New years day가 기다리고 있으니 아이들은 선물에 대한 기대… 더보기

오늘 내가 먹는 것이 내일의 나를 만듭니다

댓글 0 | 조회 1,212 | 2021.12.22
선재스님은 조계종단의 첫 사찰음식 명장이다. 스물다섯에 출가한 이래 40여 년을 사찰음식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올해 초까지 지난 3년 동안은 한식진흥원 … 더보기

낙타 이야기

댓글 0 | 조회 860 | 2021.12.22
■ 최 민자까진 무릎에 갈라진 구두를 신고, 털가죽이 벗겨진 엉덩이로 고고하게 걸어가는, ‘머리는 말 같고 눈은 양 같고 꼬리는 소 같고 걸음걸이는 학 같은’ 동… 더보기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는 단체 리커넥트

댓글 0 | 조회 894 | 2021.12.22
이번 연도에도 지속되는 락다운으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리커넥트 단체는 함께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연말이 되어 … 더보기

2021 특별 영주권 최신뉴스

댓글 0 | 조회 4,517 | 2021.12.21
12월 1일의 이민부 홈페이지는 하루 종일 꽉 막혀 있어서 참으로 답답한 날이었지요. 당일 뿐 아니라 수삼일간 이런 일이 이어지면서 수많은 예비영주권자들의 원성은… 더보기

서로에게 힘이 되는 가족

댓글 0 | 조회 1,045 | 2021.12.21
상담통해 만나는 많은 분들이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가 깊이 자리잡아서 인생에 영향을 받으며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감의 결여, 자기 확신의 부족, 자책감과 자괴감 그리… 더보기

그 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댓글 0 | 조회 1,002 | 2021.12.21
시인 함민복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사글셋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달그락거리던 밥그릇들베니… 더보기

그냥 그때처럼, 오빠....

댓글 0 | 조회 1,361 | 2021.12.21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 . . .댓돌밑에 귀뚜라미 울어대는 쓸쓸한 계절도 아닌데 늙은 여동생은 주책없이 오빠 생각이 간절합니다.코스모스 출렁대고 감이 … 더보기

플랫폼 비지니스

댓글 0 | 조회 948 | 2021.12.21
예전에 골프용품으로 플랫폼 비지니스를 하겠습니다. 라고 했었다. 플랫폼 비지니스는 회원을 모아놓고 그 안에서 돈을 버는 방식으로 무조건 회원 DB가 많으면 몸값이… 더보기

허리와 골반통증까지 잡아주는 레전드 스트레칭

댓글 0 | 조회 885 | 2021.12.21
운동하기 정말 귀찮은 날 있죠? 근데 몸은 찌뿌둥하고 몸은 움직여야겠고..이런 날 부담없이 따라하기 딱인 데일리 스트레칭 동작을 소개해드릴게요.특히 현대인들이 가… 더보기

멋 있게 사는 사람들

댓글 0 | 조회 1,141 | 2021.12.21
요즘 팬데믹으로 불편하고 때로는 위축되어 지내다 보니 바쁜 가운데서도 멋 있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마음과 영혼에 신선한 멋을 공급하며 삶을 즐겁게 살아… 더보기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접종 의무화 명령 2

댓글 0 | 조회 1,454 | 2021.12.21
뉴질랜드 정부가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막기위해 추가로 법령을 긴급 통과시키면서 지난 한달간 백신 접종 의무화 명령과 관련된 많은 업데이트가 있었습니다. 이번 칼럼… 더보기

체력을 기르는 방법

댓글 0 | 조회 1,137 | 2021.12.21
체력을 기르는 방법은 생각을 반으로 줄이는 것입니다. 너무 생각이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꼼꼼하게 따지는 것을 하지 말아 보세요. 생각을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 더보기

방역패스와 추가접종

댓글 0 | 조회 2,753 | 2021.12.18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아래 사항을 꼭 지켜주세요! 21년 11월 15일부터 정부 방역 정책으로 백신 접종을 완료하지 않으신 분은 휘트니스 이용이 불가합니다.… 더보기
Now

현재 동생을 업고

댓글 0 | 조회 1,187 | 2021.12.08
■ 정 성화박수근의 그림 ‘아이 보는 소녀’를 보고 있다. 이마를 일직선으로 가로지른 상고머리에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의 소녀는 동생을 업은 채 해맑게 웃고 있다.… 더보기

기차를 기다리며

댓글 0 | 조회 843 | 2021.12.08
시인 천 양희기차를 기다려보니 알겠다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긴 일인지얼마나 서러운 평생의 평행선인지기차를 기다려보니 알겠다기차역은 또 얼마나 긴 기차를 밀었는지철… 더보기

부자학생 가난한 학생

댓글 0 | 조회 1,887 | 2021.12.08
몇 일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한국에 체류중인 학생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원래의 진학계획을 조금 변경해 영국의 옥스포드에 지원을 하게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 더보기

크리스마스에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는 단체 리커넥트

댓글 0 | 조회 941 | 2021.12.08
리커넥트는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작고 큰 이벤트를 진행해왔다. 작년에는 록다운 이후 Western Park Village에 거주하시는 … 더보기

[포토스케치] 거듭나기

댓글 0 | 조회 836 | 2021.12.08
거듭나기

경제 유튜버 신사임당, 후원은 돈이 아깝다던 그의 생각이 바뀐 이유는?

댓글 0 | 조회 1,388 | 2021.12.08
"솔직히 후원은 돈이 아깝다고생각했어요. 한 달에 3만 원이면주식 한 주 살 수 있는 돈이 잖아요.그런데 월드비전을 통해후원 받은 친구를 만나보니,후원금의 가치를… 더보기

지옥의 끝

댓글 0 | 조회 1,056 | 2021.12.08
우리의 삶이란 참으로 신기하기만 하다. 내 의지에 의하여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죽음마저도 내 의지대로 맞이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우리 인간들은 초자연적인 상… 더보기

허리통증 예방하는 하루 딱 10분 운동

댓글 0 | 조회 1,086 | 2021.12.08
허리통증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에게 요가와 필라테스 운동을 가르치다 보면 발견하는 공통된 특징이 있는데요.첫째, 평소 자세가 바르지 않다.둘째, 하체의 근력과 유연성… 더보기

<오징어게임>의 함의

댓글 0 | 조회 913 | 2021.12.07
넷플릭스의 <오징어게임>은 <기생충>에 뒤이어 세계에다 “한국형 신자유주의”를 그 근거 자료로 삼는 또 하나의 화두를 던졌습니다. 물론 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