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마디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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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마디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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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대부분은 길어야 좋다. 수명이 길어야 좋고, 키도 가방끈도 길면 좋지 않은가? 그런데 말이 길어 좋은 경우는 없는 것 같다. “끝으로~” 하고는 5분을 끄는 교장선생님의 훈시를 귀담아 듣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말이 길다 싶으면 귀는 열려있지만 더 듣지 않고 딴 생각을 하게 된다. 뻔히 아는 이야기가 계속되면 따분해진다. 재미있지도 유익하지도 않은 긴 이야기를 듣노라면 “간단히 말해주면 좋겠어요.” 혹은 “결론이 뭐지요?”가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참느라고 이야기는 잘 못 듣는다. 사람들은 말이 길다. 나도 그렇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요지나 쟁점을 설명하기보다, 분하고 억울하다는 감정표현이 길다. 별로 관심이 없는 이야기라면 누가 듣고 싶겠는가? 참고 듣다가도 무엇을 말하려는지, 이야기가 아주 길어질 것 같으면, 자르고는 “그래서 저가 뭘 도와드리면 되죠?” 하고 묻는다.


오래도록 신입생들에게 처음 하는 말이 “말하지 말고 들어라.”였다. 귀담아 듣는 것이 경청(敬聽)이라며. 그러는 나도 그게 잘 안되어 노력하고 있다고. 그래야 듣고 배우는 것이 있지 않겠느냐고. 왜 입은 하나고 귀는 둘이겠느냐고도 물어본다. 수업시간에 안 듣고 옆 사람과 떠드는 학생은 자는 사람보다도 더 나쁘다. 친구까지 방해 하니까. 안 들으려면 왜 왔는지 모르겠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학과 교수회의 때면 혼자서 말을 다 하는 사람이 있었다. 트집과 자랑으로 채워진 그의 이야기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처럼 계속되었다. 기다리다 못해, 내가 이제 모두 한 사람씩 돌아가며 이야기를 하고, 다 듣고 나서 토론하자고 했는데 그 사이에도 끼어들고 가로채곤 했다. 콱 쥐어박고 싶은 생각이 나만 들었을까? 장손의 장손으로 태어났다는 그는 동네의 일가친척들이 대부분 조카뻘이라 우대를 받았고 장손만을 지극히 챙겨주시는 할머니의 사랑으로 자랐다고 자랑한다. 타산지석으로 삼기는 했다. 어쩌면 그 때문에 내가 미움 받지 않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말이 적은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군에서는 ‘예’와 ‘아니오,’ ‘까?’와 ‘다.’로 말하라고 배웠다. 충청도에서 온 한 부하가 보고를 한다. “저기요~ 있잖아유~” “야! 저기요~ 빼고 말해!” “네, 저기요~ 빼고 말씀드릴께유!” 이러면 혈압이 오르기 시작한다. 요점을 말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묻는 말에는 예, 아니오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나는 좀 다르게 표현하다가 모자라는 사람이 되곤 한다. “밥 먹었어요?” 라는 질문에 “단풍이 너무 아름다워 그걸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하는 식이다. 듣는 사람이 ‘아, 아직 안 먹었구나’를 생각할까? 이 사람은 감성이 풍부하구나 하고 생각할까? 예, 아니오를 못하는 사오정이구나 싶지 않을까?


처음 만난 어떤 사람이 지루했을 텐데도 아무 내색 없이 내 이야기를 잘 듣고 있었다. 내가 ‘너무 나갔구나.’ 싶어서 ‘어떻게 정리하지?’ 난감했다. 틀림없이 힘들게 듣고 있었을 것이다. ‘대단한 인내심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사람이 갑자기 좋아졌다. 모든 것을 털어 놓아도 될 사람이구나 싶었다. 내가 잘하는 말 자르기를 하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니 바보 아니면 경지에 이른 것이다. 만약 처음 만난 사람이 그토록 길게 말을 했더라면 나는 곧 집에 와서 쉬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어이없어하며...


“진짜 대화는 말하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것이더라.”는 말을 듣고는, 들으면서 무슨 말로 되받아 칠까를 생각하는 내가 헛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전에 보면 공감(共感)이란 “남의 의견·주장·감정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는 느낌이나 그런 기분”이라고 되어 있다. 실험실에서 U자로 된 막대 한 쪽을 치면 다른 쪽도 같은 소리를 냈다. 함께 울리는 소리, 공명(共鳴)이다. 여러 가지 파장을 흡수해 버리는 가슴도 어떤 소리, 어떤 이야기에는 공명한다. 밀면 밀리거나(be moved) 건드리면 닿았다(be touched)는 무브와 터치가 감동했다는 뜻이란다. 이런! 마음이 움직이고 가슴이 와 닿아, 떨리는 일이 언제였던가?


어떤 때는 또 많이 떠들었구나 싶어 후회가 된다. 남을 비방했구나, 너무 아는 체를 했구나 싶으면 개운치가 않다. 나의 경우, 아는 체를 하는 것은 아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자랑을 하는 사람은 내세울 게 그것 밖에 없어서 그럴 지도 모르겠다.


가을이라 모임이 더러 있다. 듣기만 하고 올 생각이다. 많아도 열 마디만 해야지. 그러다 보면 또 백 마디가 되겠지만, 갔다 와서는 찝찝할 테고...


* 출처 : FRANCEZ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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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기조(曺基祚 Kijo Cho)

. 경남대학교 30여년 교수직, 현 명예교수 
. Korean Times of Utah에서 오래도록 번역, 칼럼 기고 
. 최근 ‘스마트폰 100배 활용하기’출간 (공저) 
. 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비상근 이사장으로 봉사 
. kjcho@u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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