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리 집 길목에 앞집 양 한마리가 돌담을 넘어 길가에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우두머리 양이 돌담을 넘자 다른 양들도 따라 돌담을 넘어 풀을 뜯어먹었다. 어차피 경사가 진 길가의 풀들은 깎지도 못하는데 잘됐다 싶었다. 인기척이 나면 양들은 넘어온 돌담으로 다시 넘어 가다가 돌이 굴러 떨어지기도 하는데 양들이 다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작은 새끼 양들까지도 돌을 밟고 1미터가 넘는 담을 뛰어넘는 것을 보니 참 신기하기도 하지만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앞집 폴에게 말하려하자 아내가 그냥 두라고 하였다.
“여보. 양도 좋은 풀 먹어서 좋고... 우리 집 길가도 깨끗해져서 좋고...”
“돌담이 무너지거나 양이 도망가면 어떻게 하지?”
“돌담이 무너지면 앞집 폴이 고칠 거고, 양이 도망가면 폴이 잡아올 거고, 뭔 걱정이야.”
아내의 말이 맞는 말이다. 내가 지금 남의 집 양들까지 걱정해 줄 처지인가, 우린 그냥 돌담을 넘나드는 양을 못 본 척하고 양처럼 침묵하면 되는 거지, 그 뒤로 한동안 우리 집 길가에는 제초제를 뿌리지 않아도 깔끔했다.
옆집 테리네 말 목장은 말들이 풀밭에서 맛있는 풀만 골라 뜯어 먹으면 말들을 다른 칸으로 옮겨준다. 그리고 덩치 큰 소들을 집어넣는데 소들은 듬성듬성 뜯어먹고는 다 먹었으니 다른 칸으로 옮겨달라고 무~ 무~ 하고 울어댄다. 내가 들으면 분명 소 울음소리는 음매~ 인데 뉴질랜드 사람들은 소 울음소리를 무~ 라고 부른다. 소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주면 마지막으로 설거지하라고 넣어주는 것이 바로 양들이다. 그것도 사람이 몰아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짖어대는 개에게 쫓겨 들어온다.
좋은 풀들은 먹어보지도 못하고 다른 짐승들이 먹고 난 찌꺼기 풀들만 먹게 해도 양들은 언제나 말이 없이 조용하다. 양들이 머물다 간 풀밭은 깨끗하기만 하다. 양들이 설거지해 놓은 풀밭에 연하고 맛있는 새싹이 돋아나면 또 말들에게 먹이겠지,
에이, 분노에 찬 우두머리 양이 양들을 모아놓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자, 기도나 하자고~ 주여 불쌍한 우리 양들을 굽어 살피소서.....”
그렇게 불쌍한 양을 잡았다고 목장에서 양고기를 보내왔는데 많이도 보내왔다. 고기는 부위별로 맛이 틀리겠지만 여러 고기들을 구워내 놓으면 양고기부터 먹게 된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보다도 훨씬 맛있는 게 양고기가 아닌가 싶다. 양고기를 보신탕처럼 끓여 먹어도 맛이 좋다. 오븐에 구운 양고기를 아보카도랑 같이 상추에 싸먹으면 아주 환상적이다. 생선회와 아보카도를 같이 쌈 싸먹을 때처럼 맛이 있다.
아보카도 농장을 하는 한인분이 가끔 아보카도를 보내주는데 얼마 전에는 2박스나 가져오셨다. 비싼 아보카도를 이렇게 많이 주시면 안 되는데... 너무 많아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도 많이 남았다.
그 분의 말씀이 얼마 전 나무 컨설턴트가 농장에 다녀갔는데 상태가 좀 안 좋은 나무 하나를 지적하며 아보카도도 따주고 꽃도 따주어 1년간 휴식을 취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단다. 그래서 아보카도 처분 생각을 할 사이도 없이 따기 시작했는데 10박스 이상이나 땄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아보카도가 익어버리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밤잠도 설치신다고 하였다. 하긴 우리도 깜빡 잊어 아보카도가 상해 버릴 때가 가끔 있는데 얼마나 걱정이 되었겠는가,
다른 과일나무들은 봄에 꽃피고 여름에 열매 맺고 가을부터 겨울동안 휴식기간을 갖는데 아보카도 나무는 1년 내내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고 커가니 정말 나무가 쉴 틈이 없다. 꽃과 열매에 영양분을 다 공급해주고 거죽만 남은 나무는 그저 지치고 힘겹기만 하다. 자식들 키우고 뒷설거지 하느라고 한시도 쉴 틈이 없는 우리네 어머니 같은 나무가 아보카도 나무가 아닌가 싶다. 어머니가 자식을 훌륭히 키우듯 나무도 과일 중에 영양가가 최고라는 아보카도를 키워 내는 것이다.
드라마를 보던 아내가 피곤한지 입을 벌리고 소파에서 잠들어 버렸다. 아, 여기에 또 한그루의 아보카도 나무가 불쌍하게 쓰러져있군. 나는 양손을 귀에 대고 발을 들이대며 소파에 쓰러진 나무를 진찰해 보았다.
“음... 이 나무도 한 1년 휴식기간이 필요하군, 쯧쯔, 영양분이 다 빠져나가고 거죽만 남았어. 도대체 말이야 뭔 꽃을 피우고 뭔 열매를 맺는다고 한시도 쉴 틈 없이 사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