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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주를 여행하는 사람은 대개 요세미티 공원을 방문하게 된다. 인류가 요세미티를 처음 방문한 기록은 8000년-1만 년 전 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세기 중반에 캘리포니아 일대에 골드러시가 일어나면서 요세미티 방문이 활기를 띠게 되었고 원주민들과 금을 채굴하러온 광부들 사이에 1851년 마리포사(Mariposa)전쟁이 일어나 원주민들은 억압에 시달릴게 되었다. 그 후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이 세계인들에게 알려지게 되자 관광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연이 파괴될 것을 우려한 캘리포니아 시민들의 운동으로 1864년엔 요세미티 그랜트가 제정되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자연보존과 대중이용을 위해 보호된 지역이 되었다. 이때에는 미국 남북전쟁이 끝나갈 무렵이었는데 링컨 대통령이 서명하였다. 그 후 1890년엔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요세미티를 방문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5월이 되겠다. 5월은 겨울철에 온 눈이 쌓여 있다가 봄철 들어 녹기 시작하는데 요세미티의 각종 계곡에서 품어져 나오는 폭포가 가장 장관을 이루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요세미티의 지형은 시에라네바다 지반의 화강암 바위에서 잘려 나간 것으로 절벽과 폭포가 많기로 유명하다. 요세미티의 상징물이라고 볼 수 있는 하프 돔(Half Dome)은 둥글게 깎인 거대한 바위가 하늘을 향해 우직하게 서 있는 모습이다. 이는 수천 년을 세월을 그대로 간직한 자연의 조각 같은 바위로서 처음 보는 사람들의 말문을 막히게 한다. 엘 캐피탄(El Capitan)이라는 암반 성산은 높이가 900m나 되는 수직 절벽으로 암벽 등반인과 점퍼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 지난 3월 방문 때는 산자락에 이르자 겨울에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으며 녹아내리는 중이라 길이 미끄러웠다. 온 산이 세쿼이아(Sequoia) 나무의 침엽수림으로 덥혀 있으며 산불에 탄 나무들이 그을린 채 그대로 서 있어 색다른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요세미티를 샌프란시스코에서 방문하기 위해선 자동차로 5시간을 달려야한다. 요세미티공원 입구 롯지에서 2박을 하면서 다시 한 시간을 달려 공원에 도착한 다음 하이킹 트레일(Trail)을 시작했다. 산악 암벽 등반을 좋아하는 등반 객들을 위해선 별도의 장거리 코스가 있지만 일반 하이킹 객들에겐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트레일 코스가 제공되고 있다. 이틀 동안 각 코스들을 둘러 봤지만 눈으로 덮인 자연, 키가 몇 백 미터에 달하는 키 큰 나무 숲, 수 십 미터 둘레의 수 백 년이 넘는 아름드리나무 숲, 천변만화의 계곡들의 경치에 취해 걷는데 별 무리는 없었다. 그러나 무지외반증(拇趾外反症)으로 엄지발가락이 안쪽으로 튀어나온 까닭에 앞쪽 발바닥이 넓은 신발을 신어야 되는데 등산화가 맞지 않아 발이 아파왔다. 겨우 산행은 끝냈지만 다음날에는 보행이 쉬운 트레일을 선택하리라 생각했다.
마지막 날에는 예상대로 쉬운 듯이 보이는 코스였는데 문제는 눈 덮인 길이라 미끄러웠다. 전 날 등산화로 발이 아픈 경험이 있었기에 당일에는 일반 운동화를 신고 산행을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미끄러워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운동화 뒤쪽은 많이 달아 미끄러움이 심한 상태였다. 바로 내린 눈이면 발자국이 생기면서 마찰을 어느 정도 발생해주어 미끄러움에 대처가 가능한데 녹아내리는 눈에다가 어떤 눈은 얼음상태로 남아 있어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계곡에 다가가 좋은 전망에서 감상하려고 개천 길을 올라가면서 바위 사이를 계단삼아 건너가기도 했는데 중심을 잃으면 넘어질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손자가 리더역할을 맡아 우리 부부를 안내해주었는데 내가 걸음이 느린 관계로 내 뒤에서 보좌를 해 주었다. 아내는 저 앞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데 불러도 대답을 들을 수 없을 만큼 앞서가고 있으니 은근히 겁도 났다. 이런 땐 ‘아리랑’ 노래를 열심히 불러보면 해답이 생기지 않을까?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10 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언뜻 보니 어떤 젊은 남자와 시시덕거리는 모습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의아했다. ‘아니 미국에 까지 와서 어느새 젊은 남자를 만나 저렇게 말을 통하게 될까?’ 자세히 보니 손자가 어느새 할머니 곁으로 가서 무슨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산악등반을 할 때에는 반드시 팀을 이루어 등산 리더의 지시대로 따라서 할 일이다. 무리한 도전 정신으로 개인행동을 하거나 혼자 일행으로부터 분리 되거나 하는 행위는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경우가 발생한다. 2021년 8월 요세미티 등산로에서 행방불명된 한국계 가족이 죽은 채로 발견된 사건이 발생했다. 45세와 30세의 부부, 한 살짜리 딸이 조난당한 것이다. 사고 당일 이들 가족은 총 12.9km 길이의 등산로 등반을 거의 다 마쳤지만 고온과 가파른 지형에 조난당해 사망한 것이다. 그 날 오후 사고현장 기온은 41.7-42.8도에 달했고, 휴대 전화가 불통이 되어 구조요청도 할 수 없는 곳이었다. 또한 발견당시 2.5 리터짜리 물통이 비어 있었던 점을 고려해 이들의 사망 원인이 고온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요세미티는 그야말로 장엄하고 감동적인 자연의 품이다. 깊은 계곡과 하늘 높이 솟은 바위,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를 마주하며 자연의 위대함을 절감하면서 인간 세상의 부질없음을 느끼게 되는 힐링 장소이다. 더욱이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빛을 바라보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특별한 체험을 맛볼 수도 있다. 대 자연에 몸을 통째로 맡겨 놓은 채 명상에 잠겨 있는 동안에는 시간도 멈춰 속세와 분리된 것 같은 피안의 세계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이번 샌프란시스코 2주 여행을 준비하면서 은근히 걱정되는 부분이 많았었다. 여기저기서 비행기 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어 특별히 미션(Mission)이 있는 여행도 아닌데 괜한 시도가 되지는 않을지, 혹시 사고라도 일으키거나 사고를 당하지는 않을지, 혹시 아픈데 라도 생기면 어떻게 대처하게 될지 등 나이 84세에 떠나는 먼 길 여행이라 걱정이 앞섰다. 특히 등반 사고나 비행기 사고는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2명뿐인 가족 모두가 사망해버리면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결과가 발생하게 될 터인데 그 후속조치는 어떻게 진행될지 등…….
여행을 마치고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평소에 비치를 찾아 맨발 걷기를 해왔고 짐에 나가 근육 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한 먹는 음식관리, 사회적인 일이나 취미활동 등을 통해 두뇌 훈련 등을 지속적으로 해온 결과로 생각하지만 모든 것이 절대자의 보이지 않는 손길로 보살펴준 덕택이라 여기며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